“원자력계-국민 공감소통 최대 단서는 ‘안전’”
“원전산업 전(全)주기 활성화, 선·후행 주기 균형 유지 전제조건”
“‘에너지믹스’ 위해 他 에너지 학회와 융화하며 소통 범위 넓힐 것”

민병주 한국원자력학회 제32대 학회장.
민병주 한국원자력학회 제32대 학회장.

“원자력학회에서 제 중점 사안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전문가들의 입장 대변만이 아닌 국민의 의견 수렴을 통한 해결방안 모색입니다.”

한국원자력학회 제32대 학회장으로 취임한 민병주 학회장은 사상 첫 여성 원자력학회장이라는 선례를 남기는 데도 성공했다. 민 학회장은 원자력계가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으로 뒤숭숭한 가운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적임자라는 평 또한 받고 있다.

민 학회장은 지난 5월 수석부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미래비전 2050’과 ‘7가지 핵심가치’ 등을 선포한 바 있다. 전자는 원자력이슈위원회를 통해 2050년을 목표 시점으로 원자력의 새로운 미래와 국민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원자력 에너지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다. 7가지 핵심가치는 ▲안전 ▲혁신 ▲융합 ▲소통·신뢰 ▲교류·협력 ▲인력양성 ▲지속성 등을 일컫는다.

그는 이 비전과 가치를 원자력학회와 원자력계가 나아갈 방향으로 설정하고 특히 안전을 강조해 국민에게 인정받는 에너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본지는 민 학회장은 만나 소통 부족과 정치적 이해관계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원자력계에서의 본인의 역할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원전산업 선행주기와 후행주기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믹스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지금까지의 원자력계를 돌아보고 부족한 점은 보완하며 ‘미래비전 2050’과 ‘7대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원자력계의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원자력학회장에 취임한 것을 축하드린다. 첫 여성 학회장이자 여성 과학자로 연구계·정계 등에서 의미가 특별하다. 학회장 취임 소감과 더불어 앞으로 학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시작해 연구원 연수원장을 거쳐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을 경험했고 현재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원자력계와 학회의 발전을 위해 비판의 목소리도 객관적으로 함께 경청하면서 7대 핵심가치가 원자력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어려운 시기에 학회장을 맡게 돼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지만, 작은 힘이나마 우리나라 원자력과 원자력학회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다.

▶현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펼치면서 국내 원자력계는 빙하기를 맞았다고 평가된다. 수출형 원전 APR1400이 미국 원자력규제기관인 NRC로부터 설계인증(DC)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핵종분석 오류, 원전의 절차서 미준수, 원전 운전자의 조작 미숙 등의 문제로 비난을 받고 있다. 지금의 원자력계 상황을 진단한다면.

- 우리는 2009년 요르단 연구로 수출과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을 통해 우리의 원자력기술을 세계와 공유하고 세계적인 기술을 인정 받았다. 반세기 동안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나라 원자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되기까지는 우리 정부와 국민 그리고 원자력계 종사자가 삼위일체 됐기에 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이뤄낸 성과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관행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원자력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국민의 생각을 수용하고 안전 보장과 소통을 통해 공감의 폭을 넓혀 나가야 한다.

▶특히 ‘탈원전’ 정책으로 열악한 분위기에서도 원전산업의 전(全)주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신규원전 건설, 운전, 정비 등 선행주기에 초점을 뒀던 것과 달리 앞으로 해체, 사용후핵연료 처리, 부지 복원 등 후행주기에 기술적·정책적으로 집중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과연 ‘원자력빙하기’ 탈출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 에너지는 국가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정책의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다만 현 정부정책에 이견이 있다면 원자력에 대한 속도 조절과 안전성 향상, 재생에너지의 기술개발에 관한 것인데, 앞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믹스를 추진하려면 더 안전한 원자력과 더 경쟁력 있는 재생에너지 기술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원자력학회 ‘미래비전 2050’과 ‘7대 핵심가치’는 앞으로 원자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논쟁, 신규원전 건설재개 갈등,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 등 국내 원자력계 당면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원자력학회가 원자력계의 구심점으로서 역할을 할 때다. 어떤 역할을 기대할 수 있나.

- ‘미래비전 2050’과 ‘7대 핵심가치’의 적극적인 실행을 통해 전문성·투명성을 가지고 비정치, 비영리 학술단체로 거듭남으로써 원자력이 국가의 에너지 정책에 기여하고 국가 환경문제를 해결하며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아울러 다른 학회와 융합을 통해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고 정부·국회 등과 소통하기 위한 교량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로 원자력산업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원자력 사업자와 연구자들이 말하는 대한민국 원자력의 공학적 안전성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 우리나라 원자력의 공학적 안전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원자력 선진국들의 모임인 OECD 원자력기구(NEA; Nuclear Energy Agency)에서도 우리나라는 원자력 안전, 특히 중대사고 등 안전 관련해서는 주도국가다. 미국, 러시아, 일본에서 발생한 원전사고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사고 또한 우리는 경험하지 않았다. 비록 원전 설비 중 일부 문제가 된 시공이나 부품의 사례는 있었지만, 이는 원자력의 안전이라는 큰 명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질 정도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한치의 오차도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높은 기준과 도덕성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

▶지난 9월 취임사를 통해 “원자력학회가 사회적 갈등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오로지 과학적·공학적 사실에 근거해 행동하며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강조했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인가.

- 원자력학회가 원자력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란 상당히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원자력계가 다른 분야와 융합을 통해 통섭적인 지혜를 모을 수는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다양하고 활발한 토론의 장을 만들 것을 기대한다. 원자력은 정치와는 무관했으며 지금까지 원자력의 힘은 오로지 정부와 국민에게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원자력은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은 안전을 기반으로 인류의 번영을 위해 수행돼야 한다. 진보·보수를 떠나 오로지 과학적이고 공학적인 사실에 근거해 수행돼야 할 것이다.

◆She is...

민병주 학회장은 이화여대 물리학 전공, 일본 규슈대 원자핵물리학 박사취득 후 1991년 한국원자력연구원 여성 최초 해외 유치 과학자로 원자력계에 입문했다. 원자력연구원 연구위원,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 원자력연구원 연수원장을 역임했으며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펼쳤다. 현재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초빙교수,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어머니안전지도자 중앙회 회장, 한국여성의정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원자력학회에서는 제19대 총무이사, 제30대 고급정책연구소장을 역임했고 지난 1년간 제31대 수석부회장직 겸 원자력이슈위원회 위원장직을 수행했으며 지난 9월 제32대 원자력학회장이자 원자력학회 역사상 첫 여성학회장으로 선출됐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