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김무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캐롤린 파크허스트의 소설 <바벨의 개>는 사과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아내 렉시의 사망에 대한 비밀을 풀기 위해 남편 폴이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애완견에게 말을 가르치려고 하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서 결국 애완견은 말을 배우지 못하지만, 폴은 아내와의 추억을 애완견의 행동과 표정 등을 통해 '말'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이의 소통은 말이 아닌 마음임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리라.

랜디 올슨은 하버드대학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뉴햄프셔대학에서 해양생물학 교수로 일했지만 정년 보장의 교수직을 그만두고 영화계로 진출해 과학 다큐멘터리를 제작 연출했고, 미국 전역을 돌며 100차례 이상 과학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그가 쓴 『말문 트인 과학자』는 대중과 소통하는 과학이 주제다. 과학은 진실을 탐구하는 학문이지만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그는 인류의 미래는 과학자들의 지식이 아니라 그들의 의사소통 능력에 달려 있는데도 과학자들의 의사소통 능력은 ‘한심하기 그지없는 수준’이라고 비꼬고 있다.

과거 과학은 주로 자연 현상에 대한 축적된 지식 체계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과학 기술이 사회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중요해졌다. 더 이상 과학은 과학 그 자체만의 폐쇄성으로는 존재하기 힘들어졌다. 인간 배아 복제, 유전자변형식물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자들이 개발해내는 기술은 단순한 탐구적 차원의 지식이 아니다. 사회와 그 구성원인 대중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과학이 과학자 집단만의 지식 체계와 지적 호기심만을 위한 학문이었다면 이제는 사회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학문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자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의 요구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되고, 하나의 과학지식 발달을 위한 필요한 자원, 인력 배분 등이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된다. 광우병처럼 위험 의제가 사회 전체를 휘감기도 하며,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과학기술이 인류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과학은 실험실 속의 탐구뿐만 아니라 대중과의 신뢰에서 생존과 필요의 가치와 동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과학은 이미 동시대 사회 문화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십년동안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역설돼왔고 과학과 대중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과학자들의 수가 늘어났음에도 과학자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신통치 못하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이 잘 모르는 대중에게 과학지식을 알려주면 충분히 이해해줄 것이라고 착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과학자와 일반 대중은 관심과 사전 지식의 수준이 전혀 다르므로 대중과의 소통은 과학자 사회 내에서의 소통과는 전혀 달라야함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상대로 데이터와 전문용어들로 소통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미리 백신을 맞아 항체를 형성하면 병에 면역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리 약한 설득으로 면역을 만들면 강한 설득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 접종이론(inoculation theory)이다.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어렵고도 설득력이 약한 메시지에 노출된 적이 있었던 대중은 나중에 제대로 된 메시지가 제공되어도 신뢰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과거 미국 과학진흥협회 회장 길버트 오멘은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답하는 것”이라고 했다. 접종이론의 울타리를 벗어나려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라고 덮어버릴 것이 아니라 <바벨의 개>에서처럼 마음으로 소통해야 한다.

뉴턴의 제2법칙인 F=ma(힘=질량x가속도)는 가속도 법칙이다. 가속도는 가해지는 힘에 비례하고 물체의 질량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과거 잘못된 과학커뮤니케이션에 면역체가 형성돼 있는 대중을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장에서 보다 빨리 만나기 위한 가속도는 더 가까이에서 귀 기울이고 더 진실한 목소리로 답을 하는 과학자들의 노력밖엔 없을 것이다.

과학자에게 소통은 단지 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인 옵션 같은 것이 아니다. 사회와 원활히 교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와 정보는 물론, 과학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고, 과학기술과 연관된 사회 문제들을 환기하며, 궁극적으로는 과학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통하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야만 우리의 사회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과학기술 자체도 세상과 벽을 쌓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과학기술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안전한 원자력기술 역시 결국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기술이기에 더욱 사회화가 되어야 한다. 대중과의 소통과 공감 없이 시대와 공존하는 과학기술이 없음을 되새기며, 원자력기술의 안전성을 다지며 대중과의 접점도 넓혀나갈 더 많은 말문 트인 과학자들을 기대해 본다.

김무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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