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형원전·SMR 건설계획 속속 발표
미국, 차세대원자로 앞세워 미래시장 겨냥
한국, 대선 앞두고 원자력 강화 목소리↑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운영하는 시보(Civaux) 원전 냉각탑에서 증기가 솟아나오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동유럽 국가는 대형원전 건설과 함께 SMR 기술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제공=연합뉴스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운영하는 시보(Civaux) 원전 냉각탑에서 증기가 솟아나오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동유럽 국가는 대형원전 건설과 함께 SMR 기술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제공=연합뉴스

[전기신문 정세영 기자]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차세대 원자로 개발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을 일제히 내놓으면서 탄소중립 시대에 원자력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주요국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대형원전 건설을 위한 자금지원과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계획을 밝히고, 미래 에너지믹스에 원자력이 포함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청정에너지원 개념을 도입해 원자력을 새롭게 분류하려는 시도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지난해 10월 확정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원전 비중을 6%로 한정하고,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서 원전을 배제했다. 대선국면과 맞물려 차기 정부의 에너지정책 구상에 원자력이 어떻게 포함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원자력 놓고 갈라진 유럽…에너지위기에 ‘원자력 유턴’ 속출

지난해 하반기 북해 해상풍력 발전기가 멈춰서면서 촉발된 유럽발 에너지수급 위기는 원자력의 필요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유발했다.

앞서 지난 2020년 1월 EU는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발표했다. 당초 원자력 관련 기술은 유럽 그린딜의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에너지위기가 불거지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EU 집행위원회가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할지에 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페인, 아일랜드,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등 7개의 반(反)원전파 국가를 제외한 대다수의 EU 국가가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규 대형원전 수요가 높은 동유럽 국가와 노후 원전에 대한 교체 수요가 높은 영국, 프랑스의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다.

영국은 오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 전략을 담은 넷제로 전략(Net Zero Strategy)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영국은 의회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24년 5월까지 대형원전 1기에 대한 최종투자결정을 내리는 한편 대형원전과 SMR, 첨단모듈원자로(AMR) 등 추가 원전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여부를 차기 의회 임기 동안에 내린다.

마찬가지로 프랑스는 300억유로(약 40조3497억원) 규모의 ‘프랑스2030 투자 계획’을 통해 SMR 개발과 원자력을 활용한 수소 생산에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그동안 SMR 투자에 망설였던 프랑스가 SMR 개발에 뛰어든 것을 두고 본격적인 SMR 개발 경쟁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는 신규 원전을 건설해 석탄과 가스 의존도를 낮추고자 한다. 이밖에 탈원전을 선언했던 스웨덴은 원전에 세금을 부과해 자연스레 시장에서 퇴출되도록 유도한 정책을 철폐하고 원전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미국 뉴스케일 SMR 조감도. 뉴스케일은 지난 2020년 8월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표준설계인가(SDA)를 발급 받은 데 이어 설계인증(DC) 발급을 앞두고 있다.
미국 뉴스케일 SMR 조감도. 뉴스케일은 지난 2020년 8월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표준설계인가(SDA)를 발급 받은 데 이어 설계인증(DC) 발급을 앞두고 있다.

◆차세대 원자로 개발하는 미국…미래 원전시장 정조준

미국은 지난해 4월 2005년 대비 50~52%의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신규 NDC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전력부문에서는 원자력과 CCS를 최대한 활용한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무탄소전원에 원자력을 포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태양광, 풍력과 함께 원자력을 청정에너지(Clean Energy)로 인정했다.

미 에너지부(DOE)가 지난해 발표한 ‘Nuclear Energy Strategic Vision’에 따르면 운전 중인 대형원전은 유지하되 차세대 원자로를 개발해 미국의 원자력 리더십을 유지한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지난 1979년 스리마일 섬(Three Mile Island) 사고 이후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한 미국은 차세대 원자로를 통해 원전시장의 패권을 되찾겠다는 전략을 내놓은 셈이다.

미국은 또 원전을 통한 수소 생산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과 함께 노후 석탄발전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 SMR의 연구개발과 인허가를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용윰염원자로, 고온가스로 등 4세대 SMR에 향후 7년간 최대 32억달러(약 3조8000억원)를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의회와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합심해 원자력혁신역량법(NEICA), 원자력혁신현대화법(NEIMA) 등 규제개선에 적극 나서 SMR 연구개발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뉴스케일은 앞선 기술력으로 지난 2020년 8월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표준설계인가(SDA)를 발급 받은 데 이어 설계인증(DC) 발급을 앞두고 있다.

빌 게이츠도 지난 2008년 테라파워(TerraPower)를 설립하고 차세대 SMR 개발에 나섰다. 현재 테라파워는 미국 워싱턴주 벤뷰시에 슈퍼컴퓨터 실험실을 만들고 서로 다른 원자로 설계를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이밖에 엑스-에너지는 지난 2020년 10월 미 에너지부가 내놓은 ‘차세대 원자로 실증 프로그램(ARDP)’에 선정, 초기 지원금으로 8천만달러(약 950억원)를 지원받고 고온가스로 SMR 개발·실증에 들어간다. 앞서 엑스-에너지는 미국 원전 운영사인 에너지 노스웨스트(Energy Northwest) 등과 함께 워싱턴 주에 Xe-100을 건설하기 위한 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신한울 3, 4호기 부지 전경. 2030 NDC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미 부지가 확보된 신한울 3, 4호기의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여야 대선주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원자력의 필욧엉에 공감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신한울 3, 4호기 부지 전경. 2030 NDC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미 부지가 확보된 신한울 3, 4호기의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여야 대선주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원자력의 필욧엉에 공감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대선 코앞에 둔 한국, 차기정부 에너지정책 시사점은

미국과 유럽이 원자력을 포함한 에너지정책을 내놓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10월 확정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원전 발전량 비중을 현재의 20%대 중반에서 6%대로 대폭 줄이기로 결정했다.

특히 2030 NDC는 40% 감축으로 상향돼 국제사회에 공언한대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원자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일 나오고 있다.

9차 전력수급계획에서 폐로하기로 결정한 10기의 원전 운영허가를 연장하는 한편 신한울 3, 4호기를 재개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주장이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오는 2030년까지 폐로 예정인 원전 10기(8.45GW)의 운영허가를 모두 연장하면 최소 12~27%의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하다”며 “이는 이용률 15%를 기준으로 태양광 45.1GW 또는 육상풍력 29.4GW에 해당하는 온실가스 감축량”이라고 밝혔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전체 발전비중의 65%를 차지하는 화석연료 발전 퇴출에 따른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 차기정부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2030 NDC 목표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한 재검토를 촉구했다.

여야 대선주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원자력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현 정부에서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 4호기와 관련해 “국민 여론과 경제 현황, 에너지전환 상황 등을 고려해 다시 한번 숙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공사 재개 여지를 남겼다. 다만 “이미 가동 중인 원전을 설계수명까지 사용하고, 신규 원전을 새로 짓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도 신한울 3, 4호기의 건설 재개와 함께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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