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시작된 발전정비 경쟁 도입, 2017년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에 ‘올 스톱’
두 정책 ‘정면충돌’...정부 “발전정비 정규직화 노·사·전 협의체가 결정”
노·사·전 협의체 이달 ‘킥오프’...논쟁 종결 ‘초읽기’

(왼쪽부터) 강희찬 인천대학교 교수, 남태섭 한국노총 공공노련 정책실장, 김현표 한국중부발전 처장,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김병한 E&C코리아 대표, 박진표 태평양 변호사, 윤요한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과장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공부문의 합리적 정규직화를 위한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희찬 인천대학교 교수, 남태섭 한국노총 공공노련 정책실장, 김현표 한국중부발전 처장,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김병한 E&C코리아 대표, 박진표 태평양 변호사, 윤요한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과장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공부문의 합리적 정규직화를 위한 토론’을 하고 있다.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부문의 합리적 정규직화를 위한 토론회’는 발전정비시장에 경쟁 도입을 추진한 1994년부터 시작된 ‘25년 논쟁’의 연장선이다.

1994년 한전KPS(당시 한전기공) 파업으로 인해 발전정비에 공백이 생긴 뒤 정부는 발전정비 시장에서의 독점 문제를 인식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진통 끝에 한전KPS가 민간정비회사를 육성하는 방안에 2002년 합의에 이르렀고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육성이 이뤄졌다.

정부는 2005년 실태조사 결과 당초 목표였던 2007년 경쟁체제 도입이 무리라고 판단해 이를 2009년으로 미루고 육성의 주체도 한전KPS에서 발전공기업으로 이관했다.

경쟁체제 도입은 2009년에 재차 연기됐고, 2013년과 2018년으로 나눠 단계적 경쟁체제 도입을 결정했다.

2013년 1단계 경쟁체제가 도입된 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국정과제로 추진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발전정비 분야에서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이 기존에 진행해오던 경쟁체제 도입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 3월 “두 정책이 충돌하는 것은 맞다”며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용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종합적으로 판단해 정부 입장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는 2018년 시행될 예정이었던 2단계 경쟁체제 도입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정부가 민간위탁 분야의 정규직화를 ‘소관 부처 등 책임있는 기관’이 결정하도록 함에 따라 공은 ‘통합 노·사·전 협의체’로 넘어온 상황이다.

이달 중으로 첫 회의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2단계 경쟁체제 도입이든 발전정비 인력의 정규직화든 ‘25년 논쟁’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1단계 경쟁체제 ‘긍정적 vs 부정적’ 엇갈려

이날 토론회에서는 2013년에 도입된 1단계 경쟁체제에 대한 평가가 엇갈려 눈길을 끌었다.

김현표 한국중부발전 처장은 “경쟁을 도입함으로써 한전KPS 독점구조를 탈피하고 정비시장 체질이 개선됐다”며 “경쟁을 통해 한전KPS와 민간정비회사의 역량이 함께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각종 비상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발전설비를 운영하는 데 있어 안정성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김 처장은 이어 “민간정비회사가 연구·개발(R&D) 투자비율을 한전KPS와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기술 역량이 상향평준화됐다”며 “발전5사 고장 건수가 2013년 95건에서 2018년 41건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남태섭 한국노총 공공노련 정책실장은 기술 역량이 강화됐는지 불분명하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남 실장은 “2008년 산업부(당시 지식경제부) 자료에 따르면 한전KPS와 금화PSC, 일진파워를 제외하면 수행능력이 높지 않았다”며 “그런데 2018년에 한전KPS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민간정비업체 중 금화PSC만 500㎿ 규모 이상 설비에 대한 정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주요 정비업체 7개 중 3개 기업이 칼리스타캐피탈의 지배를 받는 점을 지적하며 민간업체에 의한 독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남 실장은 따라서 발전정비산업의 민간경쟁 확대정책을 폐지하고 한전KPS 중심으로 발전정비시장을 개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큰 틀에서 바라볼 필요성 제기

김병한 E&C코리아 대표가 3일 ‘발전 정비시장의 경쟁력 강화 방안과 정책적 지원’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병한 E&C코리아 대표가 3일 ‘발전 정비시장의 경쟁력 강화 방안과 정책적 지원’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병한 E&C코리아 대표와 토론에 참여한 강희찬 인천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이 주제와 관련해 논의의 폭을 넓힐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 대표는 “발전정비 산업도 하나의 시장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국내 정비시장의 규모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해외경쟁력을 갖춰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비업체가 주기기와 경상정비 등 많은 기술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국내 발전정비업체 고유 모델’이 발전했고 이를 잘 활용하면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제작사보다 우위를 점해 기술력이 부족한 국가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발전정비시장의 경쟁력 강화방안으로 ▲민간정비업체 육성·경쟁 ▲국내 발전정비업체 고유 모델 유지 ▲무결함, 무재해를 위한 관련 교육 제도화 등을 제시했으며 이를 위해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강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전력시장 구조의 변화 방향에 따라 해당 문제를 달리 접근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재생에너지 발전과 중소형 가스발전이 늘어나면 더 많은 플레이어가 전력시장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며 “발전시장이 민간사업자 중심으로 재편된다면 민간발전사들은 당연히 민간정비업체를 선호할 것이기 때문에 공공 정비인력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부가 현재의 ‘제한적 발전 경쟁’을 유지하는 경우에는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의미 있겠지만 비생산적인 일에 자원을 낭비하는 ‘지대추구 행위’에 따른 비효율이 발생함으로써 혁신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업자들 지금은 눈치 보고 있지만...”

박진표 태평양 변호사가 3일 ‘전력산업 공공부문 민간위탁근로자 정규직화의 법적 문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박진표 태평양 변호사가 3일 ‘전력산업 공공부문 민간위탁근로자 정규직화의 법적 문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두 번째 발제를 맡은 박진표 태평양 변호사는 “공공부문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의 실행은 대한민국의 자유·법치·경쟁의 위기를 초래할 소지가 있다”며 “정부 정책이라는 포장지만 뜯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박 변호사는 해당 가이드라인이 ▲헌법상 비례원칙 위반에 의한 기본권(재산권·기업활동의 자유) 침해 ▲헌법 제23조 제3항(재산권 공용침해에 대한 법률적 근거와 손실보상 요구) 위반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사업활동 방해·거래거절 등의 불공정거래행위 ▲전기사업법 목적 위배 ▲자유무역협정(FTA)의 공정·공평 대우 위반 등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법적인 문제가 반드시 불거질 것이라고 주장한 박 변호사는 “전력, 재산권, 헌법적 가치, 시장질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했다면 이런 정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토론에 참석한 윤요한 산업부 전력산업과장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발전정비 분야의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있다”며 “노·사·전 협의체를 통해서 건설적인 방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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