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정지한 고리1호기의 해체사업이 윤곽을 드러내고,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외국 원전해체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원전해체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른 국내 원전산업의 위축을 우려해 원전수출과 함께 해외 원전해체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방침이다. 당면과제로 떠오른 고리1호기 해체사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해체산업 육성을 위한 첫 단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원전해체는 영구정지한 원전의 관련 시설과 부지를 철거하거나 방사성오염을 제거하는 활동으로 즉시해체(15년 내외 소요)와 지연해체(60년 내외 소요) 등 두 방식이 있다. 우리나라는 연구용 원전해체를 제외하면 원전해체 경험이 아직 없다.

◆세계 원전해체 시장 급성장 전망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원전 612기를 건설했고, 448기가 가동 중이다. 이중 164기가 영구정지됐으며, 해체가 완료된 원전은 19기에 불과하다. 나머지 145기는 해체 준비 또는 진행 중이다.

향후 세계 원전해체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적으로 가동연수가 30년 이상인 노후원전은 288기로 전체 가동원전의 64.3%를 차지하고 있으며, 1960~1980년대 건설한 원전의 사용기한이 임박함에 따라 2020년대 이후 해체에 들어가는 원전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세계 원전해체시장규모는 440조원으로 추산된다.

또 국내 원전해체 시장규모도 총 19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전기술에 따르면, 초기(2017년~2021년)에는 연간 430억원 시장이 발생하고, 성숙기(2029년~2040년)에는 10기가 동시에 해체작업에 들어가면서 연간 4920억~5820억원 시장으로 성장한다. 휴지기(2070년~2075년)에는 해체시장이 발생하지 않으며, 신고리 3·4호기 이후 원전이 해체되는 후기(2079년~2090년)에는 연간 1788억원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에 발목

한수원은 고리1호기 해체사업으로 사업실적을 조기에 확보해 해외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등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한수원의 고리1호기 해체사업 계획에 따르면 2022년 6월까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해체작업에 돌입한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장소를 선정하지 못하면 방사성 계통과 구조물을 제염(오염제거)·철거하는 등 본격적인 해체작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정부는 올해 재공론화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지만,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할 때 의견을 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장기화된다면 그만큼 해체작업도 미뤄진다.

일각에서는 고리1호기 해체실적과 별개로 해외 원전해체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러시아 등 5개국이 전체 원전해체시장의 58%를 차지하는데, 이들 국가의 해체사업을 유치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또 건설기술보다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아 수주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수원 관계자는 “고리1호기 해체완료와 관계없이 공정별로 실적을 쌓을 수 있도록 공정별 분리발주를 할 계획”이라며 “고리1호기 해체공정을 마친 기업은 개별적으로 해외 해체시장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권원전해체센터 유치경쟁 과열 우려

해체산업 육성을 위한 동남권원전해체센터도 지역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자체 간 경쟁이 과열양상을 보이면서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동남권에 원전해체센터를 설립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또 지난해 10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건설재개 권고안을 받아들이면서 동남권원전해체센터 설립을 재차 확인했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의 지자체 간 유치경쟁이 치열하다. 부산시, 경남도, 경주시, 울산시 울주군, 경북도 등에서 유치위원회와 서명운동을 벌이고, 정부에 부지제공 등 혜택을 제안하는 등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동남권 원전해체센터는 국비 3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사업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단순 경제성보다는 지역균형발전과 해당 지자체의 준비·관심도가 평가 기준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종운 동국대 교수는 “동남권 원전해체센터는 알려진 만큼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고, 일자리 창출, 기술개발 외에는 파급효과도 적다”며 “사업규모가 과장되면서 지역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