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사업자들이 더 작은 영세사업자들을 대상으로 불공정행위를 하면서 정부에 무조건적 보호를 요청하는 것은 모순이지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3일 중소·소상공인 단체 회장 및 임원진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소기업이 영세기업에 횡포를 부리는 ‘을의 갑질’ 화두를 꺼내 들었다.

얼핏 보기엔 말이 안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경제구조의 부끄러운 민낯을 이보다 잘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발언이다.

우리말 중에 가진 자의 횡포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말로 ‘갑질’보다 직접적인 표현이 있을까 싶다. 흔히들 갑질을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부리는 횡포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 영세기업으로 이어지는 경제구조 속에서 ‘갑질’은 대물림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약한 위치에 있는 기업을 돕겠다며 중소·소상공인을 만난 김 위원장이 작심하고 꺼내든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김 위원장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안에도 갑과 을을 넘어 병, 정이 모두 존재하고 있다”면서 갑질의 대물림을 경계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여기에 공정위 활동에 대한 자기반성까지 더해지면서 그의 말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김 위원장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얼마 전 자칭 ‘정’의 자리에 있는 한 지인이 했던 말이 오버랩된다.

“지독하게 굴던 거래업체 담당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업무상으로 연락하는 것도 짜증이 날 때가 많아. 그런데 제일 화가 나는 건 이 사람의 개인메신저 프로필이야. 가족의 제일 예쁜 모습이 담긴 사진과 세상 좋은 말들을 올려둔 걸 보면 누군가에겐 정말 좋은 사람일텐데 나한테는 왜 이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에 더욱 속이 상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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