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는 위험은 No, 원전 정책 민주적 토론 거쳐야"

국내 반핵 운동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한 건 2003년 전북 부안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사태 이후부터였다. 당시 부안군민들의 시위에는 절실함이 담겼고, 극단적이고 전투적인 양상으로 치달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반핵 운동도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단순한 반원전 운동이 아니라 에너지정책운동으로 변화했다. 이미 정책이 결정된 뒤에 지역에서 막는 건 늦기 때문에 민간 거버넌스를 갖춰 대응에 나선 것이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팀 처장은 모든 과정을 현장에서 겪으면서 반핵 운동의 체계를 닦아온 인물이다. 부안, 경주, 영덕, 울진 등 원전 갈등 현장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런데 원전에 대한 양이 처장의 생각은 예상과 달랐다.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하자는 게 아니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원전을 가동하되 철저하게 과정과 원칙을 지키고 공개할 것. 이 정도도 보장하지 않으면서 원전을 계속 확대하는 것만큼은 막고 싶다는 게 양이 처장의 의지다. 반핵 운동 진영은 무조건 원전을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 반핵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95년 스물다섯에 반핵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 당시 가장 힘들 것 같은 싸움 중 하나가 바로 반핵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거대한 자본, 소수의 권력자들과 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참여정부 시절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시되면서 지역 주민운동을 넘어 정부 모니터링, 의견제시, 정보 공유 등 역할이 커지기 시작했다.”

- 근본적인 물음부터 던지자면, 원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른이 된다는 건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걸 의미한다. 실패든 성공이든 책임을 져야 하는데 원전은 통제할 수 없고, 사고가 났을 때 그 누구도 책임을 질 수 없다. 과학에 100%는 없다. 기술을 다루는 건 인간이기 때문이다.”

- 다소 추상적인데.

“우리나라는 원전을 감당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원전 가동을 결정하고, 규제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성 문제, 원전 납품비리, 일방적인 재가동, 신규 원전 가동 결정 등 과정부터가 문제다. 원전은 시민사회의 통제하에 운영돼야 하지만 현실은 밀실에서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책임은 우리가 져야하지 않나. 원안위를 독립적인 기구로 개편하고, 원자력안전기술원의 검증능력을 키우고, 민주적인 토론을 거쳐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원전을 운영하자는 것이다.”

- 100%는 아니지만 국내 원전에서 중대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판도라’를 두고 과장이 심하다는 의견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대형 지진이 일어나면 도로도 파괴되고, 소방차도 진입이 어려워 혼란은 가중된다. 울산에 있는 산업단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2차 사고까지 감안하지 않았는데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건 기술과 과학을 지나치게 맹신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 그런 사고를 우려해 경주 지진 이후 원전 내진설계를 강화하는 것 아닌가.

“체르노빌 사고, 후쿠시마 사고는 모두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다.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가 없다. 정부는 원전 내진성능을 보강한다고 하는데 일부 설비에만 적용된다. 지진이 특정 설비에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신고리 5,6호기는 지금이라도 건설을 중단하고 지진 안전성, 다수호기 안전성 평가를 비교해서 최종 결정해야 한다.”

- 원전 안전성을 어느 수준까지 강화해야 안심할 수 있나.

“프랑스나 캐나다가 이전 세대의 원전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는 기존 원전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재가동하고 있다. 월성 1호기도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 없이 수명을 연장했다. 최신 안전성 기준을 적용하고 평가한 뒤에야 수명을 연장하는 해외 원전 국가들과는 다른 점이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심사과정에서 최신안전기준인 R-7을 적용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증기발생기튜브가 새거나 깨졌을 때 방사능이 외부로 바로 유출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수원 입장에선 고정자산인 발전소를 문 닫으면 타격이 크기 때문에 무리해서 수명을 연장하는 것 같은데 적어도 중수로형 원전인 월성 1~4호기 만큼은 가동을 중단하는 게 맞다고 본다.”

- 기존 원전의 안전성을 보강하면 괜찮다는 건 신규 원전 건설도 문제 없다는 의미인가.

“그건 아니다. 위험요소를 더 늘릴 필요는 없다. 다만 무조건 원전 가동을 중단할 수 없으니 점차 줄여나가자는 것이다. 원자력 산업은 수많은 종사자들이 근무하는 우리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29년까지원전 비중을 28.2%(현재는 22.1%)까지 높인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신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고, 노후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면 10%까지 낮출 수 있다고 본다.”

- 현재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원전과 관련된 부지조사, 안전성 평가, 운영 등 모든 분야에서 정보 공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개된 자료에서조차 조작된 것을 확인하면서 신뢰는 더 하락했다. 정말 떳떳하다면 원안위가 모든 걸 평가하고 결정하도록 둘 게 아니라 독일처럼 제3자가 동시에 검증하고 나중에 비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로만 소통을 강화한다고 하는데 실질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