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보다는 문이 더 좋습니다. 창문이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현장으로 열리는 실천의 시작입니다. 창문이 먼 곳을 바라보는 명상의 양지라면 문은 결연히 문 열고 온몸이 나아가는 진보 그 자체입니다.”

진보지식인 故 신영복 선생의 ‘창과 문’이라는 글이다. 어느덧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건만 그의 글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생기가 넘친다. 지난 1월 15일 별세한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산문집 ‘처음처럼’을 통해 다시 돌아왔다. 이 책은 신영복 선생이 평생 그리고 쓴 잠언 모음집이다.

책의 부제목인 ‘신영복의 언약’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신영복 선생이 전하는 말[言]과 약속[約]이다. 선생은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무기수의 옥중 서간이라면, ‘처음처럼’은 다시 쓰고 싶은 편지라고 밝혔다. 공들여 다시 쓴 편지에는 글은 물론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선생의 그림도 함께 담겼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벼워 보이지 않는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그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이 책은 ‘신영복 서화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지난 2007년에 출간돼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거의 10년 만에 다시 펴내면서 내용과 구성이 제법 달라졌다. 2015년 11월, 신영복 선생은 새로 추린 ‘처음처럼’ 원고를 편집자에게 전했다. 초판본에 실리지 않은 새로운 글과 그림을 대폭 추가한 원고였다. 그 당시 이미 선생의 병환은 위중한 상태여서 더 이상 집필이 어려운 상태였지만 그는 병환 중에도 원고를 놓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생전 선생이 마지막까지 손수 정리한 유작이나 마찬가지다.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생각하면 모든 텍스트는 언제나 다시 읽히는 것이 옳습니다. 필자는 죽고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필자는 세상을 떠났지만 남아있는 텍스트는 앞으로 다시 읽힐 것이고, 새로운 독자가 탄생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또 다른 의미에서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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