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전기분야 ‘첫 발’…30여년 경력 기술사로 ‘승승장구’
한국 대중음악 100년사 담은 박물관 관장 ‘제 2 인생’ 도전

최근 한 케이블방송에서 ‘대중음악박물관’이 소개된 적이 있다. 한국 대중음악 100년사를 시대별로 테마별로 살펴볼 수 있는 이곳은 ‘K-pop’을 사랑하는 외국인들에게 순례지가 됐다. 놀랍게도 이 박물관은 음악과는 거리가 먼 ‘전기엔지니어’가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유충희 건축전기설비 기술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어떻게 대중음악박물관의 관장이 됐을까. 음악 열정 가득한 유 기술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난 유충희 기술사는 공업고등학교 전기과에 진학하며 전기계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가 학창시절을 보낸 1970년대는 유신 정권의 서슬이 시퍼랬다. ‘전기’보다는 ‘음악’에서 돌파구를 찾은 청년 유충희는 대중가요와 팝음악을 들으며 미래를 꿈꿨다.

“어릴 때부터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었습니다. 유신 정권 시대에는 대중가요에 대한 억압이 심했죠. 대신 샹송, 팝송 등 해외음악에 빠져들었습니다. 음악에 관심이 생기다보니 앨범을 모으기 시작했죠.”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당시 부산에 지역 기반을 둔 대기업인 국제그룹에 입사했다. 그룹 계열사 동력부에서 ‘전기밥’을 먹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악기를 연주해 음악인으로 살기보단 취미 생활로 ‘음악을 듣고 음반을 모으는’ 길을 선택했다.

청년 유충희의 20·30대는 오직 음악과 전기로 대변된 시기였다. 이후 여러 회사로 옮겨 다니며 전기 업무를 담당했고, 전문성을 키워나갔다.

“전봇대를 만드는 일도 했고, 20대 때는 엔지니어링업체를 통해 해외 건설시장도 경험했습니다. 이란에 비료공장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로, 젊은 나이에 전기설계 담당자가 됐죠. 지금이야 전기전공자들이 넘쳐나지만 당시만 해도 젊고 숙련된 기술자는 많지 않았어요.”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전기공사업체에 들어갔다. 30대는 온전히 전기공부에 매달렸다는 게 유 기술사의 전언이다. 틈틈이 음반을 모으는 일도 계속했다.

그는 “전기공사업체에서 송·변·배전을 경험하면서 전기 지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야간대학을 다니며 전기기사, 전기공사기사 등을 취득했고, 이후 박사학위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도전하게 된 게 건축전기설비 기술사다. 4~5년간 회사일과 병행한 끝에 1992년 합격의 기쁨을 맛봤다.

“합격한 순간의 기쁨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시험에 붙기 위해 주말에는 부산-서울을 오가며 전기학원을 다녔습니다. 당시는 건축전기기술사 시험을 연간 1번만 치렀고, 합격자도 1~2명뿐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기술고시’였죠.”

1993년 그는 부산에서 3번째로 기술사사무소를 열게 된다. 현재 유 기술사가 대표로 있는 한국코아엔지니어링의 전신인 셈이다. 1인 창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규모 면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전기설계·감리업체로 성장했다.

“당시 나보다 먼저 기술사사무소를 개업한 두 곳 중 현재는 단 1곳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산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전기엔지니어링업체가 됐어요. 직원만 150여명에 이릅니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유 기술사는 2000년에 전기철도 기술사도 획득하게 된다. 당시는 정부 주도로 경부고속철도 건설이 한창이었다. 대구-울산 노선을 비롯해 광주지하철 1호선 등을 감리하며 전기철도 분야에서도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순탄한 전기인생과는 다르게 ‘취미생활’에서는 어려움이 많았다.

“희귀음반이나 오래된 축음기, 오디오 등 음악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모으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전시물을 모았죠. 과거 오디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웨스턴 일렉트릭의 음향시스템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습니다. 그렇게 30년 동안 한 점 한 점 모은 게 6만여점에 이릅니다.”

처음에는 음악다방을 열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음반자료가 늘어나면서 박물관을 기획하게 됐다. 2015년 4월 25일, 비로소 경북 경주 보문관광단지에 국내 사설박물관으로서는 최대 규모의 대중음악박물관이 문을 연 것이다.

“박물관에는 6만여점 중 단 10%만이 전시돼 있습니다. 규모가 커질수록 유지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한계 때문이죠. 그래서 1년에 두 번씩 기획전을 통해 나머지 작품들도 전시를 합니다. 전국의 100만 전기인들이 꼭 한 번 들러서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역사를 짚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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