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안위 신뢰 무너져…중립성 강화・신뢰 회복 계기 삼아야
월성 1호기, 중수로 채택 등 他원전과 특성 달라…영향 크지 않을 듯

법원이 7일 월성원전 1호기의 재가동 승인 취소 판결을 하면서 향후 국내 원자력계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점쳐진다. 원전을 둘러싸고 치열한 쟁점이 오고 간 재판에서 사법부가 탈핵 진영의 손을 들어 준 건 사실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원전 1기를 멈추는 데 국한되는 게 아닌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인식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재가동 취소 배경은?

월성 1호기 수명연장 논란은 2009년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 당시 약 6000억원을 들여 월성 1호기의 압력관을 교체했기 때문이다. 1983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월성 1호기의 수명은 2012년 11월까지인데 수명연장 심의를 하기도 전에 미리 수천억원을 투입한 것을 두고 탈핵진영에서는 “재가동에 대한 부담을 키우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이후 월성 1호기는 2012년 11월 가동을 중단했고, 2015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 심의를 거쳐 재가동이 승인됐다. 월성 1호기는 2022년 11월까지 수명이 연장됐다. 하지만 핵없는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수명연장허가 과정에서 원안위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2015년 5월 18일 원안위를 대상으로 ‘월성1호기 수명연장허가 무효 국민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약 한 달간 원전 지역주민, 일반 시민 등 2166명이 소송에 참여했다.

소장 접수 이후 2015년 10월 2일 첫 변론재판을 시작했고 최종변론 기일이었던 지난달 4일까지 재판은 총 12번 열렸다.

원고 변호인단은 이번 재판에서 취소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건 증인으로 참석한 전 원안위원, 원자력 전문가 등의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재판에는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심의 당시 원안위원이었던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와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장을 비롯해 박종운 동국대 교수, 하정구 캐나다 원자력공사 수명연장 담당 실무자, 오창환 전북대 교수 등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원고 변호인단 부단장을 맡고 있는 김호철 변호사는 “원자력 전문가들의 증언이 없었다면 심의 과정의 문제점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안위에 대한 국민 신뢰 무너져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원전을 20~30년씩 연장하기도 한다. 한국이 기껏해야 10년을 더 늘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미국과 캐나다의 원자력 안전규제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재가동 심의를 철저하게 진행해 안전을 담보한다면 10년이 아니라 20년, 30년까지도 운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반면 원안위는 이번 재판 결과로 인해 원자력 규제기관으로서 자존심을 구겼다. 특히 신뢰와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가 어렵게 됐다. 국민들은 원안위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신규 원전건설을 허가하고, 가동 원전의 재가동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가 이번 판결에서 이은철 당시 원안위원장과 조성경 원안위원이 각각 한수원의 원자력정책자문위원, 원전 부지선정위원으로 활동했던 이력을 문제 삼은 것도 원안위의 중립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시민단체는 그동안 친원전 성향의 원안위원이 많다는 이유로 원안위의 중립성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2015년 2월 26일 월성 1호기 계속운전 허가(안)을 심의할 때에도 재허가에 반대하는 위원 2명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이 강행되면서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당시 표결에 참가한 원안위원 7명 전원이 재가동에 찬성했다.

모 원전 전문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원안위의 중립성을 강화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신규 원전 건설, 재가동 심의 등이 앞으로 진행될텐데 원안위의 결정을 누가 신뢰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다른 원전에 미칠 영향은 적을 듯

월성 1호기 수명연장허가 취소 판결이 다른 원전에 영향을 줄 가능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하지만 월성 1호기의 특성이 다른 원전과 달라서 직접적인 파급효과는 적을 것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월성 1호기는 다른 원전과 다른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취소됐다고 해서 다른 원전의 수명연장이 안 될 거라고 보지 않는다”며 “시민사회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재가동할뻔 했던 월성 1호기에 제동을 걸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월성 1~4호기는 국내 가동 중인 25기 원전 중 유일하게 캐나다의 캔두(CANDU) 노형 원자로를 채택한 중수로형 원전이다. 중수로형 원자로는 일반적으로 경수로형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도 수명연장 사례가 적다.

이번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종운 동국대 교수도 “중수로는 경수로와 달리 농축도가 낮아서 핵반응을 높이기 위한 압력관이 380개에 달하고, 증기발생기도 경수로는 2개, 중수로는 4개다”라며 “압력관이 많다보니 부식이 잘돼고, 가동 후 20~25년이 지나면 관이 처지기 때문에 6000억원을 들여 압력관을 교체 해야 하는 등 안전과 경제성 둘다 부족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게다가 월성 1호기는 2~4호기에 비해 안전검증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원안위가 다소 무리하게 월성 1호기 재가동 심의를 밀어붙인 것도 그만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심의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월성 1호기는 재가동하지 않는 게 맞다는 것. 실제로 월성 2~4호기에는 적용한 캐나다의 원전 규제기준 R-7은 1호기에만 적용되지 않았다. R-7은 원자로가 냉각이 안되면 폭발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안전장치를 강화하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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