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시장 ‘Big Buyer’에서 '글로벌 프로바이더'로 변신 할 터”
국내 가스 산업 한계 봉착...액화기술력 확보 통해 도입연계형 LNG 사업 집중

“한국은 일본과 함께 세계 최대 LNG수입국으로서 국제시장에서 ‘Big Buyer’로 불려 왔습니다. 국내 가스 수요의 94%를 책임지는 가스공사의 경우 설립목적 자체가 천연가스의 안전·안정적 공급인데다, 중(액화)·상류(탐사·개발) 부문의 기술력이 부족하다보니 공급자가 비싸게 팔아도 어쩔 수 없이 구매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더 이상 국제시장에서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물론 가스공사는 내실 있는 해외자원개발사업을 위해 에너지 공기업 기능조정방안대로 신규 투자를 최소화할 것이지만, 글로벌 에너지 기업에게 중·상류 기술력을 배우고 지분을 확보하는 데는 지속적으로 투자해 나갈 계획입니다. 그래야 글로벌 프로바이더로 역할을 변신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7월 2일 한국가스공사 15대 사장에 취임해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승훈 사장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질문 하나하나에 대해 에둘러 말하지 않고 본인의 소신을 거침없이 내놨다.

지난 6월 29일 가스공사 대구 본사에서 만나 지난 1년간의 소회부터 현재 가스공사의 최대현안, 경영평가에서 D등급을 받게 된 배경, 에너지 공기업 기능조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취임 1주년을 맞으셨습니다. 지난 1년간의 소회를 밝히신다면.

“지난 40년 가까이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만 했으니 기업 경영은 처음입니다. 제가 기업을 경영하리라고는 저조차 상상을 못했죠. 주변에서도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사장으로 와서 직원들에게 휘둘릴 것이라는 우려를 많이 했습니다. 실제 취임 후 6개월 정도는 헛다리를 많이 짚었어요. 나름대로 제가 가진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 기강을 잡으려고 했다가 맥을 잘못 짚은 거죠. 하지만 우리 임직원들이 사장인 저를 믿고 많이 도와줘서 이제는 가스공사의 확실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내부 직원들이 문제로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내 고쳐보고자 초기 몇 개월은 CEO가 아니라 한 명의 시민이자 학자로서 회사를 바라보고 경영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30년 동안 엄청나게 조직과 업무영역이 커지기는 했지만, 마스터플랜에 따라 회사규모를 키운 게 아니어서 역량도 부족하고 잘못된 관행이 회사 곳곳에 그대로 남아 타성처럼 젖어있었던 것을 일부 발견할 수 있었죠. 따라서 앞으로 남은 2년은 새롭게 틀을 짜고 체질을 개선하는 데 집중할 것입니다.”

▶가스공사는 올해 1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하고, 부채비율을 대폭 낮추는 등 경영지표가 개선됐습니다. 그 비결을 말씀해 주신다면.

“지표만 놓고 보면 제가 취임한 후 경영성과가 좋아진 것처럼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저유가로 인해 미수금을 회수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입니다. 가스공사의 업무는 가스배관망 설치와 가스 도입·판매로 대변되는 규제업무와 해외자원개발(탐사, 개발) 관련 비규제업무가 있는데, 규제 업무 분야는 정부 정책에 영향을 크게 받거든요. 사실 가스공사의 부채가 몇 년간 늘어난 이유 중 하나도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손실보다는 고유가 시절 가스가격이 동결되면서 미수금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경영성과는 좋아졌는데, 정부 경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이유는 정부 경영평가 지표가 너무 경직적인데다, 평가 연도의 경영상태만을 평가하는 게 아니고 전년도와 비교해 개선도를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해외사업의 경우 수익성을 놓고 평가하는데 당장은 돈만 투자되고, 실제 투자금 회수는 2018년 이후에나 가능한 상황이어서 암울하게도 그때까지는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 것으로 전망되죠. 이 지표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투자를 안 하는 게 최상인데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성과연봉제 도입이 늦어지는 등 노사관계가 악화된 것도 하나의 요인입니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 발전용 LNG수요는 계속해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천연가스 수요 확대를 위한 대책이 있으시다면.

“천연가스 수요는 2014년 3600만t에서 2015년 3100만t으로 500만t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경기 위축도 하나의 요인이지만, 발전용 LNG소비가 줄어든 게 가장 큰 원인이죠. 장기천연가스 수요전망에 있어서도 2029년까지 연평균 0.34%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요. 때문에 도입계약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착지 제한조항 등 불공정한 계약내용은 폐지하고, 실효적 감량권 확보 등의 계약 유연성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또 연료전지, LNG추진선박(벙커링), 야드트렉터 등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나갈 것입니다.”

▶정부가 자원개발 추진체계 개선방안을 내놓았습니다. 가스공사도 구조조정을 해야 할 텐데 앞으로 해외자원개발 정책 방향은.

“다른 자원공기업에 비해 가스공사가 해외사업에서 큰 손실을 입은 것은 아닙니다. 자체적으로 사업을 수행하기보다는 선진국이 수행하는 프로젝트에 10~15% 정도 지분 투자 형식으로 참여했기 때문이죠. 다만 국제 유가 하락으로 현재 자산 가치가 떨어진 것은 분명합니다. 때문에 전체 26개 해외투자사업(22개 자원개발사업, 4개 하류사업)을 수익성과 전략적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해 총 11개 사업을 대상으로 투자계획을 조정하거나 단계적 자산매각, 프로젝트 펀드 유치 및 유동화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특히 향후에도 사업성이 전혀 없는 캐나다의 일부 사업은 정리할 계획이죠.”

▶에너지 공기업 기능조정의 일환으로 가스도매 시장 개방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론자여서 시장 개방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2025년까지는 가스공사의 장기계약물량이 남아 있어서 그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보죠. 저는 개인적으로 공정한 시장경쟁구도가 형성되려면 우선 2026년 이후의 수요량을 정확히 예측한 후 그 수요량만큼만 도입을 허용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스공사든 민간사업자든 도입단가가 낮은 순서대로 도입을 허용하고 물량을 제한하면, 공급물량이 남을 우려도 없죠.”

▶가스공사의 미래 연구개발 계획을 밝히신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LNG 저장탱크 등 하류기술 부문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탐사·개발·생산을 수행하는 상류부문은 선진국 대비 70% 수준, 액화공정 등 중류 부문은 40%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사실입니다. 가스를 직접 파이프로 공급받는 나라에서는 액화기술이 필요 없지만, 우리나라처럼 멀리서 배로 가스를 들여와야 하는 나라는 액화기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가스공사는 액화기술의 핵심인 극저온 관련 기술개발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액화기술이 확보되면 해외에서 생산된 가스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해외로 수출도 가능하고, 국제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위상도 높아질 수 있거든요. 특히 극저온 기술은 가스 액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응용이 가능해 국가적인 연구개발도 요구됩니다. 가스공사는 또 미래에너지 선점을 위해 수소 인프라 기술과 선박에 LNG를 공급하는 벙커링 기술 등에 주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친환경 자동차 기술, 산업용 이용기술 등 미래에너지 관련 기술개발에도 나설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과 사회공헌 전략은.

“우선 글로벌 에너지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가스공사의 기틀이라 할 수 있는 대구 경북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본사 이전 후 대구경북지역 중소·여성기업들을 대상으로 구매상담회를 개최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중소기업 동반성장에 일조하고 있고, 앞으로도 중소기업들이 지역을 넘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가스공사의 글로벌 역량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지원을 펼쳐나갈 예정입니다. 사회공헌도 지역사회 이슈와 니즈에 부응하는 사업을 통해 존경받는 ‘국민의 KOGAS’를 구현해 나갈 것입니다.”

이승훈 사장은...

1945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전공을 경제학으로 바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았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시절인 지난 1990년대 중반, 한전을 비롯한 5대 공기업의 경영진단에 관한 정부용역을 맡았으며, 이후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결국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그 인연으로 산업부 전기위원회 초대위원장직을 맡기도 했다. 학계 활동도 왕성해 한국계량경제학회 회장과 한국산업조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국무총리 소속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7월 가스공사 사장에 선임됐다. 올 4월부터는 해외자원개발협회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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