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20년 걸린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

2025-11-20     정세영 기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취임한 후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 국방비를 늘리고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일본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능력은 의미심장하다. 핵무장 직전의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의 핵무장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완전 준수 등이 명시된 미일 원자력협정을 위반하는 일이어서다.

일본은 전 세계 비(非) 핵보유국 가운데 유일하게 민수용 농축·재처리 공장을 갖춘 국가다. 이는 일본만이 누리는 정치·외교적인 특례이기도 하다.

일본은 어떻게 이런 특례를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었을까. 그 이면에는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들여오지도 않는다”는 ‘비핵(非核) 3원칙’이 있다. 사토 에이사쿠 전 일본 총리가 1967년 중의원에서 처음 선언한 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바통을 이어받아 1982년부터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얻어낸 결과다. 일본이 미국에 철저한 핵비확산 의지를 천명해 신뢰를 얻어낸 게 주효했다.

롯카쇼 재처리시설과 고속증식로인 몬주원전은 상업 운전이 매번 연기된 이력 탓에 일본 핵연료주기 정책의 실패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2035년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농축·재처리 권한을 얻기 위한 출발점에 있는 한국에 시사점을 준다.

일본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추출한 플루토늄으로 MOX 연료를 만들어 몬주원전을 가동해 전기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수립해 농축·재처리 권한을 철저히 민수용에 국한하겠다는 점을 미국에 강조할 수 있었다. 즉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는 상용원전 확대와 연계돼야 완결성을 갖춘다는 뜻이다.

한미 양국이 지난 14일 공개한 공동 팩트시트엔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고 돼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팩트시트 발표 후 브리핑에서 “농축·재처리는 순전히 경제적·산업적인 목적에서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과 비슷한 접근법을 따르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과거 일본이 그랬듯 상용원전 확대와 연계된 정합성을 갖춘 후속 협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