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풍력으로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전’, 공급망 육성 본격화
재생에너지 100GW 보급 목표, 발전허가 20GW 육상풍력 ‘재조명’ 안보점수 신설…외산 장악한 육상풍력 터빈 시장 국산화 신호탄 상한가 내리자 입찰 참여 의지도 꺾여, 흥행 실패 우려 “의무만 부과하고 제도 지원 없는 입찰 제도 개선 필요”
대규모 재생에너지 보급을 선언한 정부가 부침을 겪고 있는 해상풍력 대신 육상풍력을 먼저 키우는 것으로 정책 노선을 정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은 17일 ‘2025년 하반기 풍력 설비 고정가격계약 경쟁입찰’을 공고하고 230MW 내외의 육상풍력 입찰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상한가는 지난해 KWh당 165.14원보다 1.294원 낮은 163.846원으로 제시됐다.
정부는 지난 10일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2035 NDC)를 발표하면서 전력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최대 75%까지 줄인다는 비전을 내놨다. 이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100GW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당초 정부는 태양광과 육상풍력 대비 대규모 재생에너지 보급이 가능한 해상풍력에 힘을 주기 위해 지난 3월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 특별법(해상풍력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제도를 정비해 왔다. 그러나 최근 군 작전성, 주민수용성 등 문제가 붉어지면서 해상풍력 보급에 제동이 걸리자 숨 고르기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대신 20GW 넘게 발전사업허가 용량을 보유한 육상풍력을 대안으로 점찍고 입지 선정, 공급망 육성, 이격거리 해소, 인허가 간소화 등 제도 보완에 나섰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업계 및 지자체와 잇따라 간담회를 열고 육상풍력 보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업계 및 지자체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번 하반기 풍력 입찰에서 예정돼 있던 부유식 해상풍력 입찰 및 고정식 해상풍력 입찰을 제외하고 육상풍력 입찰만 공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대부분 해역은 어민들과 국방부에 의해 선점돼 있어 해상풍력 사업을 입찰에 선정했다가 추진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육상풍력 입찰만 공고함으로서 국방부 협의를 위한 시간을 번 것으로 풀이된다.
▶육상풍력에 안보 점수 도입, 터빈 국산화 신호탄
특히 이번 육상풍력 입찰에서는 해상풍력에만 적용되던 안보 지표(6점)가 신설됐다. 상반기 해상풍력 입찰에서 국산 터빈을 사용하지 않은 현장이 모두 탈락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번 육상풍력 입찰에서 국내 공급망을 키우겠다는 정부의 메시지를 업계에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보 점수는 ‘국가 자원안보 특별법’에 따라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와 유지보수 계획 등을 우대하는 정책으로 현지공급망조달(LCR ; Local Content Requirement) 비율을 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평가 지표다.
육상풍력 업계에서는 제품 신뢰성을 이유로 국내 터빈인 유니슨보다 지멘스가메사, 베스타스, 엔비전, 벤시스 등 외산 터빈을 선호해 왔다. 그러나 이번 입찰부터 안보 점수가 신설된 만큼 국내 터빈 선호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육상풍력에 (해상풍력처럼) 안보지표를 강화한 것은 국내 풍력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려는 강한 의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줄어드는 입찰 공고‧선정 물량, 업계선 부담 가중
다만 점차 줄어드는 육상풍력 입찰 물량과 입찰 상한가는 허들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22년 시작된 풍력 입찰에서 육상풍력은 ▲2022년 550MW(육·해상 포함) 공고 273.4MW 선정 ▲2023년 400MW 공고 152MW 선정 ▲2024년 300MW 공고 199.4MW 선정 ▲2025년 230MW 공고에 그쳤다.
입찰 물량 공고 전 에너지공단은 업계에 입찰 참여 사전 수요조사를 실시한다. 해가 갈수록 입찰 공고 물량이 줄어드는 것은 그만큼 입찰에 참여하려는 육상풍력 물량이 함께 줄어들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육상풍력 누적용량은 20GW가 넘지만 환경영향평가를 받고 입찰 참여자격을 갖춘 곳은 400~500MW 수준이다. 발전사업허가 이후 입찰에 필요한 인허가를 받기 위해선 20~30억원의 투자금이 소요되지만 사업 환경이 좋지 않아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실제로 첫 입찰이었던 지난 2022년 KWh 당 169.5원이었던 상한가는 2023년 167.78원, 2024년 165.14원, 2025년 163.846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특히 올해는 안보점수가 신설됐음에도 상한가가 하락했다는 점에서 업계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정부의 의중은 지속적으로 균등화발전단가(LCOE)가 하락한 유럽처럼 입찰 상한가를 낮춰 전력구매단가를 지속적으로 낮춘다는 방침이다. 유럽의 경우 육상풍력의 LCOE는 40~60원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내에선 아직 육상풍력의 발전단가를 지속적으로 낮추기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을 위한 모든 비용이 오르고 있는데 입찰 상한가가 지속적으로 줄어들면서 사실상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려면 입찰가를 조정하거나 업계를 위한 지원 제도가 나와야 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안보 점수 만들었으면 상한가는 올렸어야
해상풍력의 경우 올해 상반기 입찰에서 안보점수가 신설되면서 입찰 상한가가 사실상 상향됐다. 지난해 KWh 당 176.565원이었던 상한가를 올해 그대로 유지한 데다 공공주도형 입찰 참여 사업에 3.660/KWh원, 정부 R&D 실증 제품 활용 사업에 27.840의 우대가격을 제공하면서 31원이 넘는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이같은 사례를 봤을 때 안보점수 신설은 제품 국산화라는 정부 의지가 담겼기 때문에 외산 대비 효율이 낮은 국산 터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상한가를 올려주어야 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당장 올해 상반기 해상풍력 입찰에서 외산 터빈과 함께 참여한 현장이 모두 떨어진 만큼 업계에 국산 제품 의무만 부과하고 낮은 상한가를 유지한 것은 입찰 흥행 실패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업계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입찰에서 해외 터빈 제작사들이 모두 입찰에 선정됐다. 국내 산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환율과 물가가 크게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한가가 지난해 대비 낮아진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