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연료 농축·재처리 족쇄 드디어 풀리나…원전 정책 정합성이 관건
미국이 한국의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힌 가운데 상용원전 분야의 농축·재처리 수요 창출이 확고한 컨트롤타워의 조율 속에 수행돼야 한다는 점이 관건으로 꼽힌다.
한미 양국이 지난 14일 공개한 공동 팩트시트(설명자료)에는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고 적혀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팩트시트 발표 후 브리핑에서 “농축·재처리는 순전히 경제적·산업적인 목적에서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수용이 아닌 민수용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핵잠재력·핵무장론과 연계 주장에 선을 그은 것이다.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는 2015년 발효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정부의 목표는 현재 미 정부의 ‘개별 허가’ 대상인 농축·재처리를 일본과 같은 수준인 ‘포괄적 사전동의’ 대상으로 격상하는 데 있다. 20년간 유효한 현행 원자력협정은 2035년까지 유지된다.
팩트시트에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방침이 명문화되지 않았으나 조만간 한국의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를 둘러싼 후속 협의가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위 실장도 후속 협의 일정에 대해 “협의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실무 협의를 조속히 하려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국의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먼저 국내 핵연료주기 정책의 정합성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농축·재처리가 민수용이라는 점을 강조해도 상용원전 확대 방침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군수용으로 의심받을 소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후속 협의를 시작하기 전에 원전 운영계획과 농축우라늄 수요 등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미국에 제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비핵 3원칙’을 선언한 일본은 이후 완전한 비핵화 정체성에 대한 미국의 신뢰를 얻어내며 20년 만에 농축·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농축·재처리 자율권을 갖는 대신 미국의 핵물질 관리 체계하에 들어서겠다는 점을 천명해 정치·외교적인 특례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