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컨퍼런스)‘수요자 인센티브’와 ‘시장 활성화’ 사이...고심 깊어지는 PPA 시장
수요 기업 “고객사 RE100 요구 속도, 국가 목표와 불일치...높은 비용 부담” “PPA 가격, 산업용 요금 연동돼 LCOE 하락 혜택 차단” 구조적 문제 지적 재생E 전력 두고 공공재 vs 상품 시각차...수요자 세액공제 등 대안 제시
국내 기업들의 RE100 이행이 생존 과제로 부상한 가운데 현재의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 시장이 높은 비용과 경직성으로 인해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RE100 이행 기업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수요자 지원과 송전망 투자를 촉구한 반면, 공급 사업자는 시장 원리에 기반한 규제 완화를 우선 과제로 꼽았다.
13일 서울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2025년 한국RE100 컨퍼런스’ 토론회에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 수요기업과 한화신한테라와트아워·현대건설 등 공급사업자, 하나은행 등 금융권 관계자들이 모여PPA 시장의 현안과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우선 수요기업들은 고객사의 요구 속도와 국가의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 간의 불일치를 가장 큰 고충으로 토로했다. 글로벌 기업의 RE100 달성 요구는 강화되는데, 정부의 넷제로 목표는 이와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시장 여건 조성이 늦어지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더 높은 비용을 내면서 재생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정부 지원의 초점은 수요기업이 아닌 발전사에 맞춰져 있지만, 정작 지원의 결과는 높은 PPA 단가라는 문제의식도 공유됐다.
높은 비용의 원인으로는 경직된 PPA 가격 구조가 지목됐다.
김용성 SK하이닉스 팀장은 “현재 PPA 가격은 한전의 산업용 전기요금에 거의 완전히 연동돼 있다”며 “태양광 발전의 균등화발전원가(LCOE)가 아무리 떨어져도 그 혜택을 수요기업이 누릴 수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어 “전기는 비싸다고 안 쓸 수 없는 공공재의 특성을 갖고 있다. 수요가 높다고 시장 논리에만 맡겨 가격이 상승하도록 방치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도한 삼성전자 파트장 역시 수요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인센티브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 파트장은 “미국에서 재생에너지 투자세액 공제(IRA)로 총 사용료의 30% 정도를 지원했던 사업이 보급의 폭발적인 동력이 됐다”며 “국내에서도 사용자를 위한 정책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수요기업들이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공공재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한 반면, 공급 사업자는 RE100 전기를 특정 수요에 맞춘 ‘시장 상품’으로 규정하며 정부가 규제 완화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기섭 현대건설 책임은 “이제 사용자들은 재생에너지 인증이 있는 전기와 없는 전기를 구분하기 시작했다”며 “이는 전력 시장이 바뀐 것이지, 100% 공공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송 책임은 “PPA 가격이 높아진 본질적인 이유는 산업용 요금 이전에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사업(RPS) 시장과 현물시장이 충돌했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대규모 공급을 약속할 것이 아니라 인허가 등 제약을 풀고 기업들이 공정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큰 틀을 만드는 시장 조성자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급을 가로막는 핵심 병목이 부지가 아닌 송전망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김도한 파트장은 “현재로선 재생에너지를 공급할 부지보다는 망의 부족 문제가 더욱 크다”며 “한전의 재정난으로 송전망 투자가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전이 송전 부문을 재정적으로 독립시키거나 분리회계를 사용해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새만금 RE100 산단에 입주한 L&F의 박원영 팀장은 더 구체적인 현장의 목소리를 냈다.
박 팀장은 “새만금 입주 당시 RE100은 주 고려사항이 아니었고, 저렴한 땅값과 보조금, 2차전지 특화단지 혜택이 주효했다”며 “RE100 산단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산업단지 안에 공용 ESS를 구축해 야간 전력을 주간에 활용하는 방안과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한 전기요금 우대 요금제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한편, 시장이 성숙하기 위한 금융 및 인력 인프라의 중요성도 언급됐다.
최재영 하나은행 팀장은 “과거 RPS 시절에는 금융권이 정책 변동의 불안감을 컸지만, PPA로 넘어오면서 정부 지원 없이도 시장 메커니즘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PPA 기반 PF(프로젝트 파이낸싱)를 활발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대규모 해상풍력 등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정작 RE100에 필요한 소규모 태양광 사업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좌장을 맡은 고성훈 한화신한테라와트아워 대표는 “과거에는 재생에너지 ‘양’을 늘리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저렴한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으로 정책 목표가 날카로워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시장을 만들어 놨지만 거래 활성화가 안 되는 것이 문제다. 거래를 저해하는 정책들을 개선하고 시장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