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객석)“전기차 산업의 제2의 캐즘 – 경제성과 생태계 신뢰 확보
전기차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확장 중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전세계 전기차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약 35% 증가했으며, 전기차가 전체 자동차 판매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출처: IEA, Global EV Outlook 2025)
그러나 국내 시장을 보면, 보급 확대에도 불구하고 전기차가 대중화 단계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지 못하는 ‘캐즘(Chasm)’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 캐즘은 이미 충전인프라에서 다뤘다. 이번에는 그 연장선상에서 ‘제2의 캐즘’, 즉 전기차가 대중 시장으로 완전히 안착하기 위해 넘어야 할 경제성과 생태계 신뢰의 벽에 주목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1)중고차 시장·잔존가치 2)배터리 수명·리사이클링 3)인증·제도 체계 4)산업 생태계 구조 변화 등을 중심으로 본다.
1) 중고차 시장과 잔존가치 리스크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는 ‘구매 후 잔존 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중고 전기차 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데다, 배터리 상태와 교체 비용이 소비자에게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한다.
국내 중고 전기차 판매대수는 2025년 1분기 1만 832대에 이르며 전년 동기 대비 47.4 % 증가했지만, 이는 시장 확대라기보다는 예비 소비자의 리스크 회피심리를 반영한 측면이 있다. (출처: 조선비즈, 2025.06.09.)
또한, 글로벌 기준으로도 중고 전기차 가격이 연간 소폭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배터리 상태·보증 여부 등이 구매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연구가 있다. (출처: Automotive Fleet, 2025.05)
이런 맥락에서, 전기차 생태계가 진정한 확장을 이루려면 ‘첫차 전기차 구매에서 전기차 중고차 시장 전환’까지 전체 수명주기에 대한 신뢰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2) 배터리 수명 및 리사이클링 생태계
전기차의 핵심이자 가장 큰 비용요소인 배터리의 신뢰성도 중요한 관문이다. 국내에서는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및 재사용 효과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며, 사용 후 배터리의 시장가치는 kWh당 약 15달러에서 27달러 수준으로 전망된다.(출처: 한국지속가능에너지학회지, 2025)
정부는 또한 배터리 안전·품질 인증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예컨대, 국내에서 2025년 2월부터 배터리 정보 공개 및 인증제도가 시행되었고, 각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의 출처·용량·성능 등이 제조사에 의해 공개될 예정이다. (출처: The Korea Times, 2024.09.06.)
이처럼 배터리의 생산→사용→재활용까지 전 주기 신뢰성(Trust & Traceability)이 확보되어야만 전기차 생태계는 지속 가능한 궤도로 진입할 수 있다.
3) 인증·제도 체계 강화
신뢰 확보를 위한 또 다른 축은 인증과 제도다. 국내에서는 배터리 화재 등 안전 이슈가 제기되면서 로이터 보도에 따라 배터리 인증 제도가 앞당겨 시행된 바 있다. (출처: Reuters, 2024.08.25.) 이와 더불어 충전기·차량·부품 등 시스템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한 통합 인증체계, 고장률·품질관리지표 기반 지원 정책이 산업 전환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즉, 보조금·설치 중심의 과거 정책을 넘어 ‘품질·신뢰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4) 산업 생태계 구조의 변화
전기차 산업의 확장은 단순히 차량 판매 증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배터리·충전기·소프트웨어·리사이클링 등 생태계 플레이어 간 신뢰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이때 핵심은 산업 전체가 축적해야 할 ‘신뢰자산(Credibility Asset)’이다.
‘신뢰자산(Credibility Asset)’은 소비자·정부·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신뢰를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구축되는 기술적·제도적·사회적 역량의 총합을 뜻한다. 다시 말해, 신뢰자산은 단순한 평판(reputation)을 넘어, 배터리 안전성·품질 데이터 투명성·공공 인증체계 등 신뢰를 구조적으로 재생산하는 기반이다. 이러한 자산이 축적될수록 산업 전반의 내구성과 글로벌 경쟁력은 더욱 강화된다.
예컨대,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글로벌 점유율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재 및 공급망 측면에서 리스크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출처: The Korea Times, 2025.08.04.)
이런 맥락에서, 전기차 산업의 ‘제2의 캐즘’을 극복하려면 산업 전반에 걸친 신뢰자산(Credibility Asset)이 구축되어야 한다. 이것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다.
결론적으로, 전기차 대중화의 다음 단계는 ‘차량 + 충전기’ 인프라만이 아니다. 전기차 산업의 핵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을 수 있는 생애주기 기반 신뢰”에 있다. 중고 → 재사용 → 재활용까지 이어지는 신뢰의 사슬이 놓일 때, 전기차 산업은 캐즘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에서 선도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바로 산업 신뢰자산을 축적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할 전환의 시점이다.
<신외경 한국자동차연구원 모빌리티충전산업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단장(공학박사)/대한기계학회 신뢰성부문 회장(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