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선)행정의 책임은 기록으로 남고 정책의 진정성은 실행으로 증명된다

2025-11-20     윤재현 기자

기장 해수담수화시설이 환경부에서 부산시로 이관된 지 한 달이 지났다.

행정의 주체는 바뀌었지만 정책의 속도는 여전히 멈춰 있다.

11년 만의 이관이지만, 외형만 남았을 뿐 그 안에는 비전도 철학도 보이지 않는다.

겉모습은 달라졌으나 내용은 그대로이고, 바뀐 것은 책임의 주체일 뿐 움직이지 않는 구조는 여전하다.

부산시는 제1계열을 ‘그린수소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기술 로드맵도 예산 계획도 마련돼 있지 않다.

부처 간 협의 기록조차 남지 않았다.

지난 9월 주민설명회에서 제시됐던 ‘그린수소 생산’과 ‘염도차 발전’의 구상은 불과 한 달 뒤 보도자료에서 자취를 감췄고 대신 ‘해수담수화 실증시설’이라는 행정적 표현만 남았다.

정책의 문장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바뀐다는 것은 방향이 아니라 의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부산시 관계자는 “현재는 담수화 공정의 실증이 우선이며, 에너지 실증은 이후 단계의 문제”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미 생산된 물이 시청 민원인과 각종 행사에 음용수로 제공돼 왔는데 이제 와서 담수화 실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담당 부서인 맑은물정책과에는 에너지 전문 인력이 없다.

전문 인력이 없다면 타 부서의 협조를 구해야 하고 협조가 어렵다면 최소한 TF라도 꾸려야 한다.

그런데도 부산시 관계자는 “수소를 담당하는 미래에너지산업과와 전화로 의견을 나눈 적은 있지만, 문서로 기록을 남겨놓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기록이 없다면 협의의 실체도, 실행의 근거도 없다.

결국 행정의 책임은 기록으로 남고 정책의 진정성은 실행으로 증명되지만, 지금의 대응으로는 그마저도 의심스럽다.

정책은 결국 ‘사람과 시스템’의 문제다.

아무리 좋은 비전이라도 이를 뒷받침할 구조와 기록이 없다면 그것은 모래 위의 설계도에 불과하다.

특히 에너지 정책은 기술의 정합성과 실증의 투명성이 신뢰의 근본이다.

그린수소를 외치면서 정작 수전해 방식이나 실증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행정의 한계가 아니라 의지의 결핍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린수소’가 또다시 정치의 언어로만 소비되는 것은 아닌가.

공약의 언어가 현실의 기술보다 앞설 때 시민의 신뢰는 멀어진다.

그린수소는 선거의 수사가 아니라 도시의 생존 전략이어야 한다.

지금 행정이 보여줘야 할 것은 새로운 약속이 아니라 이행의 증거다.

정책은 선언이 아니라 누적된 실행의 결과이며 그 흔적은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셰익스피어 ‘템페스트’에서 마법사 프로스페로는 자신이 만든 환상을 거두며 현실로 돌아간다.

베토벤이 그 제목을 빌려 쓴 소나타처럼, 이제 행정도 말의 악보가 아닌 실행의 연주로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