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월드뷰) 미국 정부의 셧다운
이 글이 지면에 실리는 때쯤에는 끝났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난 10월 1일 시작된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Shutdown)은 이미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셧다운은 말 그대로 정부가 문을 닫는다는 뜻이다. 필수적이지 않은 부처의 행정 기능은 중단됐고, 국가안보와 공공안전 등과 관련된 필수 인력을 제외한 상당수가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전체 연방 공무원의 3분의 1 정도인 75만 명 정도가 월급을 받지 못했다.
국립공원과 박물관 400여 곳은 폐쇄됐고, 비자나 여권 발급은 지연됐으며 공항을 움직여야 하는 항공관제사 1만 3천 명은 필수 인력이라는 이유로 급여는 받지 못하면서 근무해야 했다. 셧다운은 2025회계연도 최종일인 지난 9월 30일 자정까지 의회에서 예산안은 물론 임시 예산안도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미국 정부의 셧다운은 미국의 독특한 예산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미국은 예산안의 심의와 의결은 물론이고 편성권까지 의회가 쥐고 있다. 회계연도 개시 시점까지 의회가 새 예산안이나 임시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정부는 새로운 지출을 하기 위한 법적 권한이 사라져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 제도의 기본 정신은 1790년대 미국 건국 초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연방정부의 자의적인 재정 운용을 견제하기 위해 채권 발행은 의회가 목적과 금액을 직접 승인하는 방식으로 엄격히 통제했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제도가 완화되고, 이 과정에서 의회가 행정부에 일정한 한도 안에서는 자율적으로 국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일부 권한을 넘겨주기는 했다. 하지만, 그 한도를 넘어서는 추가 차입에는 반드시 다시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번 사태의 표면적 이유는 각 정당의 이념을 앞세운 재정정책 방향이다. 민주당은 저소득층 지원과 의료, 교육 등에서의 복지 지출 확대를, 공화당은 지출 억제와 감세를 주장했다. 핵심 쟁점은 공공의료보험인 '오바마케어' 보조금의 연장 문제였다.
민주당은 당연히 보조금 연장을 요구했고, 공화당은 나중에 논의하자며 버텼다. 정치적으로 결국 타협을 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미국 경제가 감내하기 힘든 수준으로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구조적 재정수지는 연간 2조 달러 적자로 GDP 대비 6.7%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올해 37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돼 GDP 대비 비율은 122%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점은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에 심각한 타격은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미국 정부와 정치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 셧다운에도 불구하고 세계 금융시장이 비교적 안정을 유지해 온 이유일 것이다.
미국 정부의 셧다운은 이제 예상할 수 없는 비상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불안을 메우기 위해 연준이 유동성을 공급해 줄 것이라는 기대 덕분이기도 하다. 물론 연방정부의 셧다운이 장기화하면 경제적 충격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되지 않아도 정부가 필수 경비를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할 수 있도록 헌법에 준예산 조항이 들어가 있어서 셧다운이 발생할 수 없는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