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대한민국 에너지 고속도로, 전력망의 미래를 꿈꾸며

2025-09-22     이철휴 한국전력공사 인재개발원장
이철휴 한국전력공사 인재개발원장

대한민국은 지금 ‘에너지 고속도로’를 본격적으로 건설해야 하는 시대적 전환점에 서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 전기차 보급 확대는 전력망이 더 강하고 똑똑해지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단순히 송전선을 더 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앞으로의 전력망은 튼튼해야 하고, 똑똑해야 하며, 이웃 산업과 상생하여 시너지를 내야 한다. 이것이 향후 우리가 지향해야 할 3S(Super Grid, Smart Grid, Synergistic Grid)의 핵심 키워드이다.

슈퍼 그리드(Super Grid)는 튼튼한 전력망이다. 국가와 권역을 잇는 대용량 연계망은 전력의 대동맥으로서, 한쪽 지역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다른 지역으로 공급하고, 대규모 정전 위험을 예방한다. 유럽 ENTSO-E 분석에 따르면 국경 간 송전망 투자만으로도 연간 50억~90억 유로의 발전비 절감 효과가 추정되었고, 텍사스 재생에너지 특화지역(CREZ) 송전 프로젝트는 풍력발전 출력제어율을 당시 17%에서 지난해 4%대로 줄이며 연간 17억 달러의 비용을 아꼈다. 우리 역시 수도권과 서남해 해상풍력, 동남권 산업지대를 잇는 에너지 고속도로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이웃 국가간 상생과 평화를 진작하기 위한 계통연계의 초석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는 똑똑한 전력망이다. 분산형 자원을 실시간으로 통합 관리하고 인공지능·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계통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미국 RTO/ISO는 수요반응만으로도 33GW, 전체 피크의 6.5%를 조정하고 있고, 영국 DFS(수요반응) 제도는 겨울철 피크를 수천 MWh 낮춰 소비자 요금 안정을 이끌었다. 우리도 AI와 접목되는 전력망 운영체제 혁신과 빅데이터 플랫폼을 확충하고, 전기차 V2G나 데이터센터의 UPS 등 백업설비를 시장에 참여시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시너지스틱 그리드(Synergistic Grid)는 이웃 산업과 상생하는 전력망이다. 덴마크 오덴세에서는 데이터센터 폐열을 활용해 약 1만 가구 난방을 공급하고 있고, 코펜하겐은 탄소포집(CCUS) 과정에서 발생하는 잉여열을 지역난방으로 전환하여 난방 연료비와 1차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였다. 미국 유타주의 ACES Delta 프로젝트는 대규모 수소저장을 기반으로 계절별 전력수급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산업용 연료·원료 공급까지 달성하는 대표적 융합 사례다. 우리 역시 수소·암모니아 발전, RE100 산업단지 등과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Synergistic Grid란 전력망을 닫힌 울타리에 두지 않고, 문턱을 낮춰 이웃 산업이 친숙하게 다가올 때 비로소 새로운 가치와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기술과 ·제도 그리고 시장이 따로 움직이면 그 공백은 사회적 갈등과 비용으로 나타난다. 제주도의 출력제어 문제는 기술은 있었지만, 신재생 에너지 입찰과 같은 제도적 장치의 부재로 인해 사회적 비용과 갈등으로 귀결되었다. 동해안-신가평 HVDC 사업 장기화도 마찬가지다. 주민 수용성 부족과 제도 변화가 결합하여 해당 지역의 발전사업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재무적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기술·제도·시장 생태계의 불협화음은 단순한 업무 지연이 아니라 국가적, 사회적 손실로 이어진다. 반대로 새로운 기술이 꾸준히 개발되고, 제도가 유연하면서도 일관되게 뒷받침되며, 시장이 안정적인 수요와 가격 신호를 제공할 때, 전력망 확충은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투자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요컨대, 전력망의 미래 전략으로 제시되는 3S는 Super Grid라는 안정적 대동맥, Smart Grid라는 정교한 신경망, Synergistic Grid라는 산업과 시민을 잇는 따뜻한 혈류다.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대한민국의 에너지 고속도로는 단순한 인프라를 넘어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될 것이다. 결국 향후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에너지 고속도로의 실현을 위하여 3S에 부합되는 기술·제도·시장의 조화로운 생태계이며, 이를 통해서 국가 에너지 전환의 목표를 갈등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