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기획)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산업, 성장통을 겪다

환경부, PnC·V2G 등 기술 고도화 정책 전환 차충비 1.7 세계 최고 수준에도 업계 적자 심각 요금 동결 3년째...기본료 감액 등 우회 지원 검토 근본 해법은 결국 요금 현실화...업계 목소리 일치

2025-08-23     오철 기자
V2G 소개 보고서 표지 이미지 [사진=허브젝트]

국내 전기차 75.4만대, 충전기 43만대. 차량 대비 충전기 비율 1.7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불과 몇 년 사이 정부 보조금을 앞세워 이뤄낸 성과다. 하지만 이제 양적 성장의 그림자가 드러나고 있다. 보조금에 의존한 무분별한 설치, 3년째 동결된 충전요금으로 인한 업계 수익성 악화, 로밍 제도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까지. 환경부는 최근 사업자 간담회를 통해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원터치 충전(PnC; Plug and Charge)와 양방향 에너지거래(V2G; Vehicle to Grid) 등을 통한 충전 기술 고도화다. 단순한 ‘빨리 많이’에서 ‘스마트하게’로의 전환이다. 업계도 방향성에는 공감한다. 다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수익 모델 없는 기술 혁신이 가능할까.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산업이 진정한 성숙기로 나아가기 위한 성장통이 시작됐다.

◆양적 확산에서 질적 고도화로...정부 정책 전환점

환경부는 최근 전기차 충전기 보조사업자 간담회(20일, 서울역)에서 전기차 충전 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그동안 충전기 보급 확대와 충전 속도 향상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사용자 편의성과 전력망 연계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로 정책 방향을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핵심은 PnC 기술과 V2G다. PnC는 충전기 커넥터를 전기차에 꽂기만 하면 별도 인증 절차 없이 자동으로 충전되고 요금이 과금되는 ‘원터치 충전’ 기술이다. 현재 각 충전사업자(CPO)가 개별적으로 제공하는 간편 충전과 달리, 환경부는 인증서 기반의 표준화된 PnC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한다.

V2G는 전기차를 단순한 전력 소비 수단이 아닌 ‘움직이는 배터리’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로 전력망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기차에 저장된 전력을 다시 전력망에 공급해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전기차 소유주는 전력거래를 통해 추가 수익도 올릴 수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부터 스마트 제어 완속충전기 사업을 통해 보조금으로 설치하는 모든 완속충전기에 PLC(전력선통신) 모뎀 적용을 의무화했는데, 이 인프라를 활용해 PnC와 V2G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 제어 충전기의 경우 지난 5일 기준 4만2032개 설치가 진행 중이며 이 중 1만1039개는 준공 검사를 마쳤다. 한국형 차량-충전기 통신 프로토콜인 K-VAS의 국제표준화도 추진해 수출 기회 확대를 노리고 있다.

스마트 제어 완속 충전기 [사진=이엘일렉트릭]

업계는 이 같은 기술 고도화 방향에 대해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PnC와 V2G는 전기차와 충전기가 단순한 충전 기능을 넘어 탄소중립과 전력망 안정성에 기여하면서 사용자에게는 경제적 인센티브까지 제공할 수 있는 미래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신중한 접근을 당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현재 설치한 PLC 모뎀이 모두 양방향 전력거래에 적합한 하드웨어는 아니어서 업그레이드가 필요할 것”이라며 “스마트 제어 충전기 사업처럼 급하게 진행하지 말고 중장기적 로드맵을 세워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인프라 구축했지만...초기 부작용도 선명

정부의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 덕분에 우리나라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양적으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지난 5월 기준 전기차 75만대 대비 충전기 43만대가 보급돼 차충비(충전기당 차량 수 비율)가 약 1.7을 기록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급속한 확산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이 나타났다. 보조금을 받기 위해 이용률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설치하거나, 설치 후 관리를 소홀히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2022년 한전 기본료 특례요금 제도가 일몰되면서 많은 업체들이 예상보다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 유지보수 부실로 “충전을 하러 갔는데 충전기가 고장나서 충전할 수 없다”는 민원도 속출했다.

환경부는 이후 보조금 사업자 선정 기준에 콜센터 운영, 유지보수 인력 확보 등을 포함시키고 공용충전기 고장 데이터를 실시간 공개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 민간 CPO들에게도 연 2회 의무점검을 도입해 초기의 높은 고장률은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다.

업계는 이런 보완 조치들이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고장 문제가 아직도 있긴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고장률 문제가 개선됐다”며 “다만 양적 확산 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적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익성 악화 심각...3년째 요금 동결이 발목

문제는 이런 정책적 보완에도 불구하고 업계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충전업계 주요 사업자들의 영업손실은 크게는 약 2400억원에서 적게는 약 130억원까지 기록했다.

가장 큰 원인은 3년째 동결된 환경부 공용 충전기 요금이다. 충전업계 관계자는 “충전요금이 CPO의 유일한 매출원임에도 한전 도매가 기준의 하방 제약과 공공요금 상한제에 따른 상방 제약이 동시에 존재해 가격 결정권이 전혀 없다”며 “어떤 가격 혁신도 시도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토로했다.

2024년 전기차 충전 인프라 주요 업체 실적 [전기신문 재가공]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기차 보급률이 3%를 넘어선 상황에서도 환경부가 2025년 공용 충전기 예산을 전년 대비 3배 늘린 915억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원가 이하 요금으로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장 질서를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밍(roaming) 제도로 인한 손실도 가세하고 있다. 급속 CPO들은 환경부 회원카드로 민간 충전기를 이용하는 고객 때문에 충전량 1kWh당 93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공공 급속충전기 요금(347.2원/kWh)이 민간 충전기에도 동일 적용되지만 카드사 수수료를 제외하면 337원만 전달되는 반면, 실제 운영비 반영 요금은 430원 수준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보급 둔화로 이용률이 떨어져 한전에 지급하는 기본료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수익성 악화로 CPO들은 브랜드 사업 등 민간 투자를 급격히 줄이고 있으며, 대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나은 조달사업이나 상용차 충전 사업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기술 혁신과 수익 모델, 두 마리 토끼 잡기 과제

충전업계는 기술 고도화보다 선행돼야 할 과제로 충전요금 구조 개선을 꼽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방향성 시그널을 주는 것은 환영하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업계도 따라갈 수 있다”며 “앞서 기술을 개발해도 정부 기준과 다르면 다시 개발해야 하는 리스크가 있어 빠른 정책 확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경부는 최근 간담회에서 충전요금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충전요금 인상이 전기차 보급 확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신 한전 기본료 감액, ESS(에너지저장시스템) 연계 인센티브, DR(수요반응) 사업 연계 등 우회적인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양아람누리에 위치한 SK일렉링크 전기차 급속 충전소. [사진=SK일렉링크]

특히 한전 기본료 감액 방안에 대해서는 실제 적용 사례를 바탕으로 한 방안도 거론됐다. 현재 공동주택 전기 모자분리 제도에서는 실제 신청한 요금이 아닌 3개월간 최대 사용량 기준으로도 요금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와 유사한 방식을 충전기에도 적용하는 방안이다. 전기차 보급이 늘어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이용률이 낮은 충전기의 기본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다만 한전 전기요금은 산업부와 한전의 소관 사항이어서 환경부 단독으로는 추진에 한계가 있다. 기후에너지부가 어떤 방향으로 신설되느냐에 따라 이 같은 방안들이 현실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편 이런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일몰된 기본료 할인을 되살리는 것은 임시방편이지 장기적 해법이 아니다”며 “환경부가 직접 할 수 있는 충전요금 현실화부터 먼저 추진하는 것이 순서”라고 지적했다.

결국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산업이 진정한 성숙 단계로 접어들려면 기술 혁신과 함께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보조금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 시장 원리에 기반한 자생력을 갖춰야 업계도 적극적인 기술 투자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