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로밍카드’, 민간업체엔 ‘손실카드’
공공요금 민간 적용으로 kW당 93원 적자…월 억대 손실도 ‘공공은 무상부지, 민간은 임대료’...민간 CPO “수익구조 파괴” 보조금 받으려 가짜 계약 남발 문제도…신규업체 진입 막아 업계 “공정경쟁 저해” 목소리…제도 재점검 필요성 대두
전기차 사용자의 충전 편의를 높이겠다며 도입한 ‘전기차(EV) 이음’ 로밍 제도가 오히려 급속 충전사업자(CPO)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떠안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가 3년째 동결한 공공충전기 요금이 민간업체 충전기에도 일률적으로 적용되면서 구조적 적자가 고착화됐고, 보조금 수혜를 위한 ‘가짜 로밍 계약’까지 성행하고 있어 제도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로밍 제도 하에서 급속 CPO들은 충전량 1kW당 93원씩 손해를 보고 있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공공 급속충전기 요금은 347.2원/kW로 책정돼 있는데, 환경부 회원카드로 민간 충전기를 이용할 때도 동일한 요금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실제 거래 구조를 보면 고객은 환경부 카드로 347.2원/kW를 결제하지만, 카드사 수수료를 제외한 337원/kW만 CPO에 전달된다. 반면 급속 CPO들의 실제 충전요금은 430원/kW 수준으로, 매 충전마다 93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셈이다.
전기차 충전 로밍(roaming)은 하나의 카드로 여러 회사가 운영하는 충전소를 모두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기차(EV)이음’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환경부 회원카드(앱 카드 포함) 하나로 전국 대부분의 충전기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급속 CPO들이 예상치 못한 손실을 떠안게 된 것이다.
충전업계 A 관계자는 “3년째 동결된 환경부 요금과 공공 급속충전기 확대로 민간 CPO들의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로밍 손실까지 가중되고 있다"며 "로밍 충전량이 늘어날수록 손실 규모도 커져 월 단위로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 핵심은 환경부가 공공부지를 무상 임대받아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충전기와 달리, 민간업체들은 부지 임대료와 전기 기본요금, 시설 유지보수 등 모든 운영비를 자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요금은 공공충전기 수준으로 통제받고 있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충전업계 B 관계자는 “주유소마다 가격이 다르고 고객이 그 가격을 보고 선택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전기차 사용자들이 환경공단 ‘만능카드’를 들고 다니니 구독서비스나 회원서비스가 무용지물이 됐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그는 “고도화할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라 CPO들이 서비스 개선 투자를 꺼리게 된다”며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보이지 않는 공공의 손이 시장 발전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밍 제도를 둘러싼 또 다른 문제는 ‘가짜 로밍 계약’ 관행이다. CPO들이 환경부 전기차 충전 인프라 보조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되려면 타 업체와의 로밍 계약 실적이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연말·연초마다 업체들 간에 로밍 계약 협의가 활발해지고, 환경부는 제출된 서류만 보고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판단해 점수를 부여한다. 하지만 수행기관 선정 이후에는 실제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충전업계 C 관계자는 “기존 업체들은 이미 서로 로밍을 체결한 상태에서 신규업체와는 형식적 계약만 맺고 실제로는 로밍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신규업체들이 다양한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