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진단 끝난 스페인정전, 여전히 재생에너지 탓?

2025-06-26     김진후 기자

스페인 정부의 정전 원인 보고서가 나왔음에도 국내에선 여전히 ‘재생에너지가 문제’라는 목소리가 공허히 울려퍼진다. 지난 4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덮친 대규모 블랙아웃 사태를 두고 우리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일제히 ‘관성 부족’, ‘계통 불안정’이라는 키워드로 재생에너지를 몰아세우고 있다. 태양광·풍력 비중이 높아지면서 전력계통이 흔들린다는 식의 단순 진단이 반복됐다.

반면 정작 스페인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보고서는 이런 해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열병합 발전소의 미운전 통보에 대한 대응 실패, 전압제어 기능을 수행하지 않은 일부 발전소, 연쇄적인 과부하 이탈 등 복합적인 인재가 직접 원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태양광 발전이 급증하면서 계통 안정성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낮 시간대 잉여전력이 늘어나고 전압 진동에 민감해지는 계통 특성도 과거와는 분명 달라졌다. 재생에너지가 주력 전원이 되려면 계통 추종 기능, 주파수 응답, 전압제어 등 기술적 과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이른바 ‘인버터 기반 발전원’의 계통 통합 문제는 세계 공통의 도전 과제다. 재생에너지가 ‘깨끗한 전기’를 넘어 ‘신뢰받는 전기’가 돼야한다는 것.

하지만 그것이 ‘재생에너지를 줄이자’는 논리로 귀결돼선 안 된다. 에너지전환이라는 대전제 아래에서 계통과 시장제도, 설비운영방식 전반의 구조 개혁 없이는 원자력이든, 화석이든 어떤 전원도 안전치 않다.

문제는 국내 인식의 안일함과 편협함이다. 보고서가 나왔음에도 재생에너지 탓을 하는 건 사실에 대한 무지 이전에 시스템 전환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일부 해설은 스페인 당국의 공식 발표 이후에도 기존 주장을 철회하지 않은 채 전력망 위기의 모든 책임을 태양광과 풍력에 덮어씌우는 모양새다.

발전 자원의 다변화, 계통 신뢰도 확보, 시장 유연성 확대라는 전력 전환의 과제 앞에서, 재생에너지를 마치 ‘주범’처럼 다루는 인식은 전환을 더디게 만들 뿐이다. 다음 정전이 닥쳤을 때, 우리는 또 어떤 탓을 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