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비, 전기차 호환성 검증 상시 테스트룸 ‘테스티벌’
“해외 전기차도 국내 출시 전 반드시 거치는 호환성 검증의 요람이죠” 70여 종의 차량 테스트 경험과 200여 개 시스템 검증 검증역량 美ㆍ사우디 등 해외진출로 이어져, 기술력 입증 업계 최저 1.5% 고장률 달성…철저한 품질관리가 경쟁력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5월 어느 날, 서울 서초구 채비 강남서초센터 지하 2층. 일반적인 지하 주차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모니터와 계측 장비가 늘어서 있고, 아이오닉5 한 대가 충전기에 연결돼 있었다. 이곳은 국내 전기차 급속충전 1위 기업 채비가 운영하는 ‘테스티벌(Testival)’ 현장이다. 테슬라, 르노, BMW, 포르쉐 등 해외 완성차 브랜드가 국내 새로운 전기차 출시 전 반드시 거치는 호환성 검증의 요람이자, 채비가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한 기술적 토대다. 단순해 보이는 충전 과정 뒤에는 70여 종의 차량 테스트 경험과 200여 개 시스템 검증이라는 방대한 노하우가 숨어 있었다.
◆상시 운영 테스트룸으로 호환성 검증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염정원 채비 연구개발본부 부장이 반갑게 맞았다. 그는 “외국 전기차 회사들이 협력을 논하거나 충전 인프라 회사들의 의뢰가 오면 이곳에서 1차 호환성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공간 한편에는 듀얼 급속충전기가 설치돼 있고, 반대편 벽면에는 대형 모니터가 걸려있었다. 이곳에는 1000kW 고용량 전력이 공급돼 다양한 충전 시나리오 테스트가 가능하다. 모니터에는 실시간으로 차량 상태, 충전기 상태, 제어보드 상태를 보여 줄 수 있는 프로그램 화면이 출력됐다. 염 부장은 “이 프로그램은 채비 테스티벌을 위해 개발된 ‘채비 애널라이저’로, 충전 과정의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비 테스티벌의 핵심은 상시 운영에 있다. 테스티벌은 국제 충전 호환성 테스트 행사인 ‘차린 테스티벌’에서 가져왔다. 다만 차린의 테스티벌이 연단위 행사인 것과 달리, 채비는 365일 언제든 테스트가 가능한 환경을 구축했다. 염 부장은 “신차 출시 주기가 아주 짧아진 지금, 자동차 제조사들은 과거 채비 충전기부터 최신 충전기까지 호환성 시험을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량과 충전기 상호 운용 표준 프로토콜인 ISO 15118은 10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엔지니어의 해석에 따라 구현이 달라지기 때문에 실제 테스트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급속충전은 완속과 달리 고압에서 복잡한 통신과 안전 제어가 이뤄져 호환성 검증이 더욱 중요하다.
현재까지 채비가 테스트한 차량은 70여 종에 달한다. 김영민 채비 상무는 “구매 확인에서 먼저 테스트하는 경우가 하나 있고, 특히 외산차인 경우에는 정식 출시되기 전에 와서 여기서 테스트하고 필드 테스트를 또 한 번 더 한다”며 “해외 수출할 때도 줌을 이용해서 같이 테스트 과정을 보여드림으로써 호환성을 안심시켜 드리는 용도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 우선 12개 항목 꼼꼼 검증
염 부장의 “오늘은 실제 충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들을 시뮬레이션해보겠다”는 설명과 함께 본격적인 시연이 시작됐다. 이날 시연에서는 충전기 누전 감지 테스트, 출력 전압 이상 감지 테스트, 케이블 온도 상승 대응 테스트 등 3가지 상황을 재현했다.
먼저 CCS 충전 절차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충전 과정은 케이블 체크 → 프리차지(Pre-Charge) → 충전 진입 순으로 진행되며, 각 단계마다 안전성을 확인한다. 염 부장은 “커플러를 꽂고 회원 카드로 인증을 진행한 후, 충전기가 현재 누전 상태인지 먼저 체크한다”며 “이 과정이 약 15초 정도 걸리는데, 누전이 되면 차량이 손상될 수 있어 충전을 진행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누전 상황 시뮬레이션이 시작됐다. 모니터에는 DC 전압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붙으면 안 되는 상황을 체크하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실제로 케이블 체크 단계에서 누전이 감지되자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충전이 중지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진 프리차지 단계 테스트에서는 충전기가 차량이 요구하는 전압을 제대로 출력하는지 확인했다. 염 부장은 “차량이 500V를 요청했는데 1000V를 출력하면 차량이 망가질 수 있어 프리차지 단계에서 전압을 먼저 확인한다”고 말했다. 시뮬레이션에서는 이상한 전압이 출력되자 프리차지 단계에서 충전이 즉시 중단됐다.
마지막으로 케이블 온도 상승 테스트를 진행했다. 염 부장은 “채비 충전기는 90도 이상 올라가면 충전을 자동으로 중지한다”며 “온도 센서를 통해 90도로 인식되도록 설정해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센서가 온도를 80도에서 90도로 인식하자 즉시 충전이 중단됐다.
채비 테스티벌은 프로토콜과 안전시험을 포함해 총 12개 항목에 대해 호환성을 확인하고 있었다. 최호순 채비 신제품개발실 상무는 “채비를 찾는 이유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급속충전기를 운영하기 때문이고, 이렇게 상시 테스트하는 곳이 채비밖에 없어서”라고 말했다.
◆해외 수출 잇단 성사로 글로벌 입지 확대
이같은 검증 역량은 채비의 글로벌 시장 진출로 이어지고 있다. 채비는 최근 북미 수출용 DC 급속충전기 3종이 글로벌 충전 통신 표준인 ‘OCPP 2.0.1’ 인증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현재 이 인증을 받은 DC 충전기는 전 세계 19종에 불과하며, 이 중 한국 기업 제품 8종 중 채비가 6종을 차지해 압도적인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해외 수출 실적도 눈에 띈다. 미국 3540대, 사우디 5000기, 일본 6000기 등 대규모 충전기 수출 계약을 잇달아 성사시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바크리그룹과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을 맺고 동남아 시장을 본격 공략하고 있다.
김영민 상무는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테슬라가 1위로 3만여개를 가지고 있고, 우리가 자체 투자해서 운영하는 게 5800여개, 환경부 통합 운영 4000여개까지 합치면 1만여개 수준으로 글로벌 2위 규모”라고 설명했다.
◆철저한 품질 관리로 업계 최저 고장률 달성
채비의 또 다른 강점은 철저한 품질 관리다. 채비는 최근 3년간 300억원 규모의 R&D 투자를 통해 기술력을 강화해왔다. 또 서초센터 외에도 구미에는 환경 챔버, 방수 챔버, EMC 챔버 등 다양한 테스트 설비를 갖췄다. 최호순 상무는 “환경 챔버에서는 마이너스 30도에서 50도까지 온도를 조절해 충전기가 정상 작동하는지 테스트하고, 방수 챔버에서는 IP55 등급의 방수 성능을 검증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채비는 국내 공인 시험기관과 협약을 통해 49종 설비로 53가지 항목의 사전 테스트를 상시 진행해 인증 기간을 단축하고 있다.
실제로 채비는 1.5%라는 업계 최저 수준의 고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북미 평균 20%대의 고장률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우수한 수치다. 채비는 2년 연속 업계 최대 수준인 1800면 이상의 급속충전소를 구축했으며, 현재 약 6000면의 공용 급속충전소를 직접 운영 중이다. 환경부에 납품한 약 4700면을 포함하면 국내 전체 1만면 이상의 급속충전 인프라를 관리하고 있다.
한편 2024년부터는 에너지기술평가원의 메가와트 충전시스템(MCS) 연구 과제 주관기관으로 선정돼 4년간 차세대 충전 기술 개발을 이끌고 있다.
지하 테스트룸을 나서며 염 부장은 “채비는 테스티벌과 같은 테스트 활동과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충전기의 안정성과 성능 개선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빗줄기가 잦아든 서초 거리를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기차 충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기술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