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의 전기에너지 이야기) 전기세 유감(遺憾)
전기요금(電氣料金)을 ‘전기세(電氣稅)’라고 부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번 달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왔네”라는 표현은 일상 속에서 낯설지 않다. 엄밀히 말하자면 틀린 말이지만,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심지어 에너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조차 그런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사소한 표현에는 우리가 전기라는 자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기요금은 말 그대로 전기라는 재화를 사용한 만큼 지불하는 대가다. 물건을 사면 값을 치르듯, 전기를 쓰면 요금을 내면 되는 것이다. 반면 세금은 공공 목적을 위해 국가가 법에 따라 국민에게 부과하는 의무이다. 어떤 물건을 샀거나 서비스를 이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 운영을 위해 걷는 것이다. 전기요금은 세금이 아니다. 사용한 만큼만 내며, 쓰지 않으면 내지 않아도 된다. 물론 전기요금 고지서에는 ‘전력산업기반기금’처럼 세금 성격의 항목이 일부 포함돼 있지만, 전체 요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작은 편이다. 전기요금 전체를 세금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전기요금을 세금처럼 느낀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전기는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생필품이다. 냉장고, 조명, 노트북, 스마트폰 충전까지 — 현대인의 삶은 전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그런 필수재에 대해 요금을 내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의무’처럼 받아들여진다. 마치 선택권 없는 고정비용, 즉 세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전력이 공기업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기업에 요금을 낸다는 사실은 전기요금을 일종의 공공부담금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소득세나 재산세처럼 ‘국가가 정한 기준’에 따라 내야 하는 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여기에 언어 습관도 영향을 준다. 어릴 때부터 ‘전기세’라는 말을 들어왔다면, 굳이 의미를 따지지 않고도 그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단어를 쓰느냐는 단순한 언어 선택을 넘어, 그 말이 만들어내는 감정과 인식까지도 좌우한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우리는 ‘요금이 올랐다’라기 보다는 ‘정부가 돈을 더 걷는다’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언어 하나가 정책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 순간이다.
이러한 언어적 오해는 실제로 정책 논의에 영향을 미친다.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세금이 오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그에 따른 불만은 정부를 향한다. 요금체계의 구조나 요인은 무시한 채 “왜 전기세를 올리느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그러나 전기를 만드는 데도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은 원재료 가격이나 환율 등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 계속 바뀌게 된다. 그런데 전기요금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억제하면 결국 한국전력이 손해를 보게 되며, 이 손해는 국민 세금으로 다시 메워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전기요금과 세금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서 생기는 손해를 우리 모두가 떠안게 되는 셈이다.
정확한 언어는 정확한 인식을 만든다. 우리가 ‘전기세’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순간, 이미 전기요금에 대한 오해는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오해는 불필요한 논쟁과 왜곡된 정책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작지만 중요한 변화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다음에 누군가 “전기세 많이 나왔다”라고 말하면, 부드럽게 짚어주자. “전기요금 말하는 거지?” 그 작은 수정 하나가 우리를 더 정확한 세상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데려다줄 수 있을 것이다.
He is... 한국에너지공단 분산에너지실장 / 전기공학박사(에너지시스템 전공) / 발송배전기술사 / 기술거래사 / <분산에너지 시스템 개론>, <인생 리셋>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