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 시장 냉각기, 충전 업계 희비 엇갈려
전기차 보급 침체에 급속충전 업계 대규모 적자 직면 SK시그넷 2452억 적자…채비·SK일렉링크 등 급속CPO도 고전 파워큐브·플러그링크 등 완속 중심 업체는 흑자 달성 펌프킨, 상용차 충전에 집중한 차별화 전략 성공
2024년 국내 전기차 충전 업계가 ‘캐즘(Chasm)’이라 불리는 시장 냉각기를 맞으며 급속과 완속 충전 사업자 간 뚜렷한 희비가 엇갈렸다. 해외 선도 시장들이 예전보다 완만하지만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하는 동안 국내 전기차 시장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충전사업자(CPO)와 충전기 제조사 모두 큰 타격을 입었으며, 특히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요한 급속충전 관련 업체들의 적자는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
롯데이노베이트 자회사 이브이시스는 2024년 886억원 매출로 시장 1위를 차지했지만, 133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시장 상황과 타 업체 적자폭을 고려하면 이브이시스는 제조와 급속CPO 사업 모두에서 신중하고 효율적인 전략으로 상대적으로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최대 급속CPO 채비는 2024년 850억원 매출에 275억원의 적자를 냈다. 채비는 '채비스테이' 전략과 효율적인 충전 운영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수요 부진으로 인한 수익 저하를 피할 수 없었다. 상장을 준비 중인 채비는 전기차 시장 회복에 기대를 걸고 있다. 채비는 6000여기의 공용 급속 충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2위 급속CPO SK일렉링크(약 5000여기 운영)도 2024년 510억원 매출에 18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수익성 개선을 위해 올해 3월부터 충전요금을 인상했다. 또 SK네트웍스는 보유 중인 SK일렉링크 지분 일부를 2대 주주인 앵커에퀴티파트너스에 매각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시그넷은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주력이 급속충전기 제조업인 SK시그넷은 2023년에 나타났던 미국 시장 품질 이슈가 2024년에도 이어졌다. 744억원 매출에 245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회사는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여의도 사옥을 비우는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 다행히 지난 3월 1500억원 자금 출자를 공시하며 위기 극복을 위한 원재료 매입, 연구개발 등 운영자금을 확보했다.
반면, 완속충전 중심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완속충전기는 1기당 설치 비용이 급속충전기보다 현저히 낮아 초기 투자 부담이 적고, 이미 구축된 규모의 경제를 활용할 수 있어 전기차 보급 둔화에도 덜 취약했다.
파워큐브코리아는 2024년 500억원 매출에 2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파워큐브는 규모의 경제와 효율적 운영으로 흑자 실현에 성공했으며, 지난해 말 1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파워큐브는 완속 4만1000여기와 과금형 콘센트 충전기 1만9000여기 등을 운영 중이다.
플러그링크는 2024년 214억원 매출에 3억원의 흑자를 달성했다. 플러그링크는 자체 IT 기술을 통한 충전 효율 향상과 충전 원가 절감, 운영 효율화로 흑자를 실현했으며, 올해 450억원 추가 투자 유치와 한화모티브 충전기 인수합병 등 투트랙 전략으로 인프라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플러그링크는 순수 완속 CPO로 1만6000여기를 운영 중이다.
상용차 충전 인프라에 집중한 펌프킨도 차별화 전략으로 352억원 매출과 35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다른 업체들이 승용차 민간 충전기에 집중한 반면, 펌프킨은 전기버스, 전기택시 등 상용차 충전 인프라에 주력했다. 이러한 틈새시장 전략이 주효해 탄탄한 실적을 달성했다.
GS차지비는 국내 최대 완속CPO로서 2024년 730억원 매출에 185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23년 12월 합병을 통한 앱 고도화와 전략 다각화 투자에도 불구하고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또한 M&A 과정에서의 통신 장애와 보조금 부정수급 수사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부정수급 사건은 혐의 없음 결정이 났고, 2024년 11월 신임 대표이사 부임 후 플랫폼과 서비스 중심의 효율적 운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GS차지비는 약 7만3000기(완속충전기 6만5000여 기)를 운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선제적 투자를 했던 급속CPO들이 큰 타격을 맞았지만 자가 투자 비중이 적고 규모의 경제를 갖춘 완속CPO들은 비교적 선방했다”며 “올해 초반부터 전기차 판매가 30% 증가하는 등 상황이 개선되고 있으며 한화, SK, LG 등 대기업들의 철수로 시장 구조가 새롭게 조정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또한 “전기차 시장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급속충전 네트워크의 안정적 구축이 필수적”이라며 “정부와 업계의 협력을 통한 급속충전 사업자들의 수익 구조 개선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