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요금 인상 논란, 그 이면의 진실…반발 거세지는 전기차 CPO의 목소리
수익 악화되는 민간 충전사업자 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선택 국내 요금, 해외보다 저렴 여전히 내연차 대비 40% 경제적 환경부의 이중 행보 ‘민간 이양’ 외치며 보급 확대 모순 “정부는 규제자 아닌 조력자로 시장 왜곡 해소해야”
지난달 SK일렉링크가 전기차 충전요금을 인상하면서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하지만 요금 인상 이면에는 민간 충전사업자들의 깊은 고민이 숨어 있다. 환경부의 저가 정책과 공공기관의 무분별한 충전인프라 확대로 민간 충전사업자들의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전기차 산업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의 균형 있는 역할 분담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수익 악화의 근본 원인...환경부의 시장 왜곡
지난달 18일 국내 급속 충전운영사업자(CPO) 2위 기업 SK일렉링크가 전기차 충전요금을 인상했다. 100kW 이상은 385원에서 430원으로, 100kW 미만은 360원에서 430원으로 요금을 올린 것이다. 완속 충전소의 경우도 공용 충전소는 288원에서 320원으로, 아파트 충전소는 255원에서 295원으로 인상했다.
당시 전기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충전요금 인상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충전요금은 전기차 사용자들에게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SK일렉링크도 이런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수익성 악화라는 현실적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전기차 충전업계 A 관계자는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는 수익성 악화가 요금 인상의 주요 원인”이라며 “실제로 다른 상위 급속 CPO들도 늦어도 하반기에는 충전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충전기 구축비용은 꾸준히 상승하는데, 환경부 충전요금은 3년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환경부는 2022년 9월 1일 324.4원/kWh(50kW), 347.2원/kWh(100kW 이상)으로 요금을 인상한 후 지금까지 추가 인상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내 충전기의 약 20%를 운영하는 환경부가 시장 가격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부는 공공부지를 무상으로 임대받아 세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충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반면 민간사업자들은 부지 임대료, 전기 기본요금, 시설 유지보수 비용 등 다양한 운영 부담을 모두 떠안고 있다.
충전업계 B 관계자는 “판매는 환경부로 인해 상한이 막히고, 구매는 전기의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한전으로 인해 모두가 동일한 가격으로 원가 혁신을 할 수 없는 구조”라며 “보이지 않는 공공의 손이 목을 틀어막고 있는 것이, 자본의 경쟁으로 발전해야 하는 전기차 충전 시장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강조했다.
◆해외보다 저렴한 국내 요금...불평등 경쟁 속 생존전략은
우리나라의 급속충전요금은 인상 후에도 해외 주요국 대비 현저히 저렴한 수준이다. 유럽 선도 충전사업자인 패스트네드(Fastned)의 경우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등에서 1kWh당 약 950~1340원의 요금을 받고 있다. 독일 등 일부 국가는 세금과 네트워크 비용까지 포함해 더 높은 요금을 부과한다.
반면 우리나라 상위 업체들의 회원 기준 요금은 1kWh당 335원~430원 수준에 불과하다. 비회원도 590원을 넘게 책정한 사업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시장 초기에는 고장난 충전기 방치, 응답하지 않는 고객센터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정부의 강력한 관리 정책으로 서비스 품질은 상당히 개선됐다.
충전업계 A 관계자는 “전기차 보급의 정체로 정부 정책에 따라 미리 구축했던 급속충전사업자들의 수익이 악화, 충전 요금 인상을 하거나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해외 충전요금과 비교하면 상당히 저렴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경제적인 전기차...수익성과 경쟁력 사이의 딜레마
프랑스 파리의 경우 휘발유 평균 가격이 1리터당 약 1.88유로로, 연비 11km 내연기관차로 10km 를 갈 경우 1.71유로(약 2758원)가 소요된다. 반면 전기차는 복합전비(4.4~5.2km/kWh)를 감안하면 같은 거리 주행에 Fastned 파리 충전 요금 0.59유로 적용했을 때 평균 1.23유로(약 1983원)가 든다. 내연기관차 대비 약 28%가 저렴한 셈이다.
충전요금이 가장 높은 이탈리아 기준(휘발유 1.74유로/리터, 충전요금 0.83유로/kWh)으로는 10km 주행 시 전기차 충전요금이 내연기관차 주유비보다 9% 더 비싸다.
우리나라는 이들 유럽 국가들보다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간 운영비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난다.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오피넷 기준 서울시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705.04원(4월 17일 기준)이다. 이를 기준으로 10km 주행 시 내연기관차는 1552원이 소요되는 반면, SK일렉링크의 인상된 충전요금(430원)으로 전기차는 894원만 소비한다. 내연기관차 대비 약 42%가 저렴한 셈이다.
충전업계 A 관계자는 “국내 충전요금은 430원으로 올리더라도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여전히 상당한 경제적 이점을 제공하고 있다”며 “단순 요금 비교는 물론, 각국의 상황을 고려해도 국내 전기차 운영 비용은 매우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말로만 민간 이양'...공공의 과잉 개입 심화
환경부는 당초 충전시장을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직접 충전기 설치를 대폭 늘리고 있다. 2025년에는 전년 대비 3배 이상 충전기를 추가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환경부 직접구축 예산도 2024년 300억원에서 2025년 915억원으로 300% 이상 증액됐다.
원래 환경부는 직접 운영해 오던 정부 소유의 공용 급속충전기를 국내 충전 인프라 구축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밝혀왔다. 이에 따라 2023년 환경부는 414기를 시작으로 2024년에 1471기, 2025년에 2737기를 민간사업자들에 매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이양 계획을 실질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오히려 공용 충전기를 확대하는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도로공사 역시 같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충전기를 반복 설치하며, 이용률을 고려하지 않은 과잉 설치로 민간 CPO의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도로공사는 자체 충전기 보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 충전기 사용률을 고려하지 않고 ‘묻지마식’ 설치를 이어가고 있다.
충전업계 B 관계자는 “환경부가 민간 이양을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계획을 번복하고 오히려 직접 운영 규모를 늘리고 있다”며 “도로공사도 지난해 수수료를 낮춰주며 CPO들의 안정적인 운영을 지원한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불필요한 충전기를 설치하는 것은 민간 사업자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결과만 가져온다”고 비판했다.
환경부는 올해 보조금을 증액해 사업자들이 한숨 돌렸다는 외부 평가도 있지만, 급속충전의 경우 높은 초기 투자비 부담으로 충전요금에 의한 수익이 확보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급속·완속 충전시설 보조사업 예산이 증액됐지만, 이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업계 전문가는 “지속적인 인프라 투자와 수익성 악화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민간사업자들이 시장에서 생존하기 힘들다”며 “요금 현실화와 공공-민간 역할 조정 등 정책적 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충전업계 B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 시장이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자율성과 수익성을 보장하는 정책 환경이 필수적"이라며 "정부가 무상 공공부지와 세금으로 운영하는 충전기는 당연히 가격 경쟁력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민간과 직접 경쟁하는 것은 시장 왜곡을 초래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규제자가 아닌 시장 조성자로서 민간 충전 사업의 기반을 마련하고 지원하는 조력자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