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거래제·재생E PPA 등 변화하는 소매시장서 한전 新 생존전략은

전력소매시장 개방 가속...망 운영·정산 기능 강화 중요해져 직접구매제 형평성·요금체계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日 ‘전력난민’ 사태 반면교사…시장 안정화할 제도 개선 필수

2025-03-13     김진후 기자
유선희 한국전력 부장이 '소매 전력시장의 변화와 공정거래 활성화를 위한 선결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진후 기자]

국내 전력소매의 99%를 책임지는 한국전력이 급변하는 전력시장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2021년 직접전력구매제와 재생에너지 PPA가 도입되면서 전력거래 방식이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소매요금이 규제되고 한전의 독점적 구조가 유지되면서 시장 왜곡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전은 이런 변화 속에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유선희 한국전력 영업처 신영업사업부장은 지난 12일 산업교육연구소 주최 ‘전력시장 직접구매제·재생에너지PPA 확대 영향과 전망’ 세미나에서 “소매시장에 다양한 구매제도가 도입되면서 시장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한전 역시 이에 맞춰 유연한 대응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유 부장은 '소매 전력시장의 변화와 공정거래 활성화를 위한 선결과제'를 주제로 발표하며 직접거래제가 촉발한 ‘탈한전’의 흐름을 통해 소매시장의 변화상을 조명하는 한편, 급변하는 시장 속 한전의 역할과 과제를 정리했다. 특히, 새로운 거래제도가 물리적 거래를 탈피해 '가상거래' 개념을 도입하게 되면서 망 운영에 집중한 한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살폈다.

유 부장은 “직접구매제는 가상거래 개념을 활용해 물리적 전력 흐름과 계약이 분리되는 특징이 있다”며 “소비자가 특정 발전소와 전력 공급 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실제 전력 흐름은 한전의 송배전망을 통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광주 지역의 태양광 발전소와 계약을 맺고 경남 공장에서 전력을 사용한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상의 계약만 존재하는 형태다.

이 과정에서 한전의 역할도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단순히 전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망 운영과 정산을 담당하는 중개자로 기능이 확장된 것.

직접구매제에서는 기존 계량기를 통한 단순 측정-부과에서 벗어나, 발전소의 시간대별 발전량과 소비자의 사용량을 정산하는 과정이 추가된다. 이에 따라 한전은 전력 공급은 물론, 망 운영과 정산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 중이다.

망 이용요금은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그동안 전기요금에 포함돼 부과됐기 때문에 굳이 인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이전부터 전력망을 이용하는 대가를 지불해 왔지만, 직접구매제가 활성화되면 망 이용요금의 중요도는 높아지게 된다. 발전사와 소비자가 한전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계약을 맺더라도, 물리적으로는 여전히 한전의 송배전망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망 이용요금의 산정 방식과 부과 기준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국의 망 이용요금 비중이 해외 대비 매우 낮다는 점이다. 해외 주요국의 망 요금 비중은 20~30%를 오가는 데 반해 국내는 12.9%에 머물고 있다. 망 운영을 위한 투자와 유지보수 비용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향후 망 운영 역할이 더욱 강화될수록 요금 체계를 현실화할 필요성도 높아질 전망이다. 

‘불완전한 소매시장 개방’ 등 시장왜곡을 부르는 전기요금 규제도 넘어야 할 과제다. 한전은 전력 도매시장에서 발전사들에게 정산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소매요금이 규제된 상태에선 불균형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실제 2021년 145조8000억 원이던 한전의 부채는 2024년 205조1800억 원으로 증가했다.

가장 큰 과제는 한전에 존속돼 있는 소비자와 직접구매 소비자 간의 형평성이다. 기업들이 한전보다 저렴한 요금을 원해 직접구매를 선택할 경우, 한전에 남은 고객들의 요금 부담이 가중되는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 부장은 “현재 전기요금 체계에서는 일부 대용량 고객이 직접구매를 선택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과 일반 가정은 여전히 한전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 과정에서 소비자 간, 또 판매사업자 간 형평성 문제는 물론 전력운영의 효율성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매시장을 자유화했지만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맞아 하루아침에 전력공급처를 잃어버린 일본의 ‘전력난민’ 사태도 반면교사로 거론됐다. 일본에서는 도매 전력가격 급등으로 소규모 전력판매사들이 연이어 폐업하면서, 계약을 유지하던 기업과 가정이 갑작스럽게 전력 공급처를 잃고 급격한 요금 인상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전은 ▲망 이용요금 체계 개선 ▲직접구매제에 따른 형평성 문제 해결 ▲신규 전력사업자의 요금 규제 정비 ▲소비자 보호 방안 마련 ▲공익 서비스 비용의 합리적 분담 등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특히, 분산특구 제도를 활용해 전력망의 효율성을 높이고, 전력판매 사업의 수익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유 부장은 “한전이 기존의 공정한 경쟁 환경 속에서도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소매시장 변화가 불가피한 만큼, 새로운 전력 시장 환경에 맞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