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신년기획-해양 주권을 사수하라] 무관심 속에 해외 해상풍력 해양탐사 업계, 국내 안방 점령

국내 해저 지질탐사 시장, 후그로 등 외국계 기업 독식 韓 지난해 말에야 선박 1척 건조…해외 의존도 여전히 高 무관심 속 해저 지형 정보 빠져나가, 국내 기술확보 시급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대기업 참여 제한, 예외 조항 적용해야

2025-01-01     안상민 기자
포모사1 프로젝트 인근에서 발전 중인 대만전력(Taipower)의 풍력 발전기.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안상민 기자] 

국내 해상풍력 시장이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그간 눈에 띄지 않았던 국내 해양 산업의 허점 또한 드러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해상풍력 육성에 필요한 해저 지질탐사 시장은 네덜란드의 후그로(Fugro)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에 알짜 산업이자 국가 해양 주권이 걸린 해양탐사 시장을 외국계 기업에 통째로 내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해양탐사는 지질탐사(Geotechnical Survey)와 물리탐사(Geophysical Survey)로 구분된다. 이 중 지오피지컬 서베이(물리탐사)는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기술력과 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지오테크니컬 서베이(지질탐사)는 아직 걸음마 단계로 평가된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지오테크니컬 서베이 전용 선박은 지난해 10월 건조가 완료된 지오뷰의 지스타(G-Star) 1척으로 이마저도 수심이 얕은 서해지역을 목표로 제작돼 수심이 깊은 곳에선 사용이 제한된다. 늘어나는 시장 수요에 비해 선박 수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동해처럼 해상풍력 산업이 활발히 진행되는 곳에선 여전히 해외 기업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임에도 기술 국산화 시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 기업이 워낙 소수라 그간 정부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난 2007년부터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으로 묶여 있어 대기업의 투자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상풍력 업계 관계자는 “국내 해양산업 시장 규모가 작아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외국 기업이 우리 바다 정보를 훑어가는 데도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앞으로 해상풍력 시장이 더욱 커질 텐데, 해양탐사 산업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안방 내준 지오테크니컬 서베이 시장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개발하려면 고정식은 해저에 발전기 하부구조물을 세워야 하고, 부유식은 계류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프로젝트를 개발하기 전 해저 지형 및 지질 조사를 통해 발전기가 들어설 수 있는 지 확인하는 절차는 필수다.

지오피지컬 서베이는 선박이 해상을 운항하면서 장비를 통해 해저면의 지형을 파악하는 작업이며, 지오테크니컬 서베이는 조사해야 할 해저면 해상에 배가 멈춘 후 조사 장비를 내려 지질을 직접 조사하는 것이다.

지오피지컬 서베이가 전반적인 지형을 파악하는 것이라면 지오테크니컬 서베이는 직접적으로 해저 지반의 강도나 성분 물질을 분석해 발전기가 들어서기 적합한 지 파악하는 절차다.

국내에서 지오피지컬 서베이가 가능한 업체는 여러 곳이 있다. 이 중 지오뷰와 UST21은 글로벌 개발사들이 요구하는 안전기준을 준수하면서도 질좋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지오테크니컬 서베이에서는 이렇다 할 역량을 갖춘 업체가 국내에 부재한 상황이다. 이에 지금까지 국내에서 진행된 파이프라인 대부분을 해외 업체에 위탁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지오테크니컬 서베이를 맡은 선박의 국적은 영국, 미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베트남, 파나마 등으로 외국 기업들 간 땅따먹기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대표적으로 서해에서 진행 중인 A프로젝트에는 파나마 국적의 키필드 헬름스(Keyfield Helms)가 사용됐으며, 동해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B프로젝트엔 네덜란드의 후그로 마리너(Fugro Mariner)와 후그로 보야저(Fugro Voyager)가 투입됐다.

이외에도 ▲키리바시 돌핀 지오서베이(Dolphin Geo Survey) ▲베트남 지오마리너(Geomariner) ▲싱가포르 브릿지워터 디스커버리(Bridgewater Discovery) 등 외국 선박이 지난 수년 간 국내 바다를 누볐다.

국내 해상풍력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항만이나 연안 개발을 위한 근해 조사는 이뤄진 적이 있지만 해상풍력 단지 개발이 이뤄지는 먼바다에서의 경험은 거의 없다”며 “기술이 없다보니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 바다를 조사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시장 국산화하려면 규제 바꾸고 투자 시작해야

해저 지형과 지반 등 데이터 확보는 해양 자원일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와도 연결되는 문제지만 국내에선 선뜻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먼저 해양 탐사 분야는 전문 인력과 장비가 동반돼야 해 진입장벽이 높다. 전용 장비를 갖춘 선박을 운용하려면 상당한 초기 투자 비용이 필요한데 국내에선 먼바다 탐사 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그간 투자가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해양탐사 산업이 발달한 국가는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등 해양 자원이 풍부한 국가다.

또한 지반조사 산업(지질연구 조사서비스)은 중소기업 보호제도인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제도에 묶여 있어 대기업의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기간 경쟁제품 제도는 중소기업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조달시장 입찰에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로 민간 해양 개발이 거의 없었던 국내에선 사실상 중소기업만 참여가 가능했다.

다만 지반조사 산업 이 중기간 경쟁제품으로 최초 지정된 것은 지난 2007년으로 지정 당시에는 먼바다에 대한 지반조사를 고려하지 않았다. 먼바다에서 지반조사를 실시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는 중소기업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이 분야 대표 글로벌 기업인 후그로는 지난 2023년 2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에 국내에서도 근해와 원해를 구분해 원해에서 이뤄지는 지반조사는 중기 간 경쟁제품에서 해제하거나 예외조항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지반조사 산업이 중기 간 경쟁제품에 포함된지 17년이 지났는데 당시엔 국내에 해양탐사 수요가 많지 않았던 상황”이라며 “제도 내에 ‘고난이도 기술이 필요한 경우’ 예외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해 대기업 투자를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