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트럼프 모두 ‘전기차 의무화 반대’…美 車산업 지각변동 예고
코트라 ‘2024 美 대선 향방에 따른 자동차 산업 전망’ 발표 전기차 6.6%↑ 부진, 하이브리드 30%↑ 급증...시장 변화 뚜렷 IRA·환경규제 놓고 후보 간 입장차...업계 불확실성 증가 ‘IRA 축소 가능성’에 업계 긴장...韓기업 “현지화·기술력 강화해야”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자동차 산업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해리스 후보와 공화당 트럼프 후보 모두 전기차 의무화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전기차 시장이 초기 도입기를 지나 캐즘(수요 정체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IRA(인플레이션감축법)와 환경규제 등 주요 정책의 향배가 불투명해지자,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하이브리드 차량 확대 등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전기차 시장 ‘변곡점’ 맞았다...하이브리드로 선회
KOTRA가 지난 28일 발표한 ‘2024 美 대선 향방에 따른 자동차 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시장이 뚜렷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24년 8월까지의 판매 데이터를 보면 내연기관차는 전년 동기 대비 1.42% 감소한 848만대, 전기차는 6.6% 증가한 69만대를 기록했다. 반면 하이브리드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은 30.39% 급증한 119만대를 기록하며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의 친환경차 지원 정책으로 급성장했던 전기차 시장은 초기 도입기를 지나 대중화 단계로 진입하면서 수요 정체기인 ‘캐즘(chasm)’에 직면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격, 주행거리, 충전 인프라, 화재 문제 등 4가지 핵심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시장 변화에 대응해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전기차 전환의 장기적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연비 규제 대응과 수익성 확보를 위해 하이브리드 차량을 적극 도입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GM은 2035년까지의 전기차 전환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2027년까지 북미 시장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재출시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200만 대의 전기차와 70만개 이상의 수소 연료 전지 시스템 판매를 목표로 하는 동시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기존 7개에서 제네시스 포함 14개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토요타와 포드도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대폭 확대하는 동시에 전기차 기술 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 대선 이후 정책 변화 예고...“산업 지형도 바뀐다”
전문가들은 대선 결과에 따라 자동차 산업의 주요 정책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해리스 후보는 기존 의무화 공약을 철회했고, 트럼프 후보는 소비자 선택권과 일자리 문제를 들어 전면 폐지를 선언했다. 보고서는 전기차 수요 감소와 일자리 문제를 고려할 때 차기 정부에서 의무화 정책이 실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따라 일시적인 전기차 확산 속도 둔화는 불가피하다고 봤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 전기차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며, 하이브리드 차량이 이 같은 전환 과정에서 완충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두 후보 모두 전기차 의무화를 반대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 방향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환경 규제에서 큰 입장 차를 보인다. 해리스 후보는 청정에너지원으로의 전환 기조를 유지하고 현재의 배출가스 기준과 연비 목표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트럼프 후보는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환경 정책의 방향을 재설정하겠다고 공언했다.
IRA 정책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해리스 후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IRA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인 반면, 트럼프 후보는 IRA를 전면 폐지하고 미집행된 자금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완성차 기업 재무 관리자는 “IRA 제조업 보조금이 배터리 생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현재 주요 배터리 제조사들도 보조금을 제외할 경우 수익성이 마이너스로 전환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중국 정책도 주목할 부분이다. 해리스 후보는 중국과 경제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핵심 기술물자에 대해서만 수출을 통제하는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을 추진하는 반면, 트럼프 후보는 ‘전략적 디커플링(decoupling)’을 주장하며 중국산 제품에 60% 이상의 고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 우리 기업의 대응 전략...“현지화·기술력 강화가 핵심”
미국 자동차 산업의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 기업의 대응도 시급해졌다. 보고서에서 산업 전문가들은 크게 기술력 강화와 현지화 전략이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우선 전기차의 주행거리와 안전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 개발이 필수적이다. 배터리 효율은 기후 조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영하의 날씨에서는 주행거리가 최대 40%까지 감소하는 문제가 있다. 자동차 부품사 임원은 “전기차 인프라 구축은 정부와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지만, 가격과 주행거리, 안전 문제는 기업 차원에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 기조가 강화되는 만큼 기업 여건에 맞는 현지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부품사 임원은 “고객사의 니즈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현지법인 설립을 통한 시장 선점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다만 중소기업의 경우 생산 공정 일부만 현지화하는 등 단계적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