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되는 전자파 민원 해결할 '중립 기관’ 설립 논의 띄우나

한국시그레, 한일 EMF 포럼 열고 일본 사례 공유 日 JEIC 등 중립적 전문가 그룹 활용해 신뢰성 확보 국내서도 기구 설립 논의 본격화로 전력망 확장 대비해야

2024-10-30     김진후 기자
제2회 한일 EMF 포럼에서 한일 대표 연구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열 왼쪽부터 ; 김남 충북대 명예교수(전 전자파학회 회장), 구자윤 한양대 명예교수(KNC 명예위원장), 오쿠보 치요지 일본전자파정보센터 센터장, 김윤명 단국대 명예교수(전 전자파학회회장, WHO EMF 한국대표), 이동일 KNC 사무총장(서울대 연구위원), 이성학 한전 전력계통본부 송변전건설단 건설혁신실장. 뒷열 왼쪽부터 ; 신구용 한전 전력연구원 기초센터장, 윤재영 KERI 연구위원(KNC 전기에너지 환경연구센터장), 주문노 KERI 스마트그리드본부 본부장, 안희성 전 서울대 기초전력연구소 전기환경센터장.] [사진=김진후 기자] 

전자파에 대한 일반의 불안을 잠재우고 미래 전력망 확장에 대비하기 위한 단초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민간을 중심으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전자파 정보 기구를 창립하자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우리보다 앞서 정보기구를 설립한 일본의 선례를 벤치마킹해 설문 및 분석연구를 개시하고, 국내 전자파 기준 재정립 등 대책 도출을 위한 연구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CIGRE 한국위원회(KNC)는 지난 10월 26일 서울 방배동 CIGRE 한국위원회 회의실에서 ‘제2회 한-일 EMF 포럼’을 개최했다. KNC와 민간, 한전의 전자파 관계자가 참여한 이날 포럼에서는 오쿠보 치요지 일본전자파정보센터(JEIC) 센터장을 초빙해 우리보다 앞서 전력망 건설 과정에서 민원 등 저항을 겪고 극복한 경험을 공유했다. 

전자파의 인체 영향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연구가 필수적이다. 특히, 일본은 이를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에 기반한 JEIC를 창설하고 전력망 사업과 일반 주민 간의 거리를 좁히는 데 주력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이날 한・일 양국의 전문가가 교류한 포럼은 큰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다. 

이날 포럼에서 오쿠보 치요지 센터장은 일본이 준용하고 있는 전자파 기준 권고치를 토대로 민원 해소 과정을 언급했다. 오쿠보 센터장은 과거 WHO에 전문가 자격으로 파견돼 전자파의 인체 영향 공동업무를 수행한 데 이어 일본에서도 객관적인 전자파 정보를 홍보하는 NGO인 JEIC를 설립 및 운영해 온 인물이다.

일본은 국제비전리복사보호위원회(ICNIRP) 규정에 따라 전력설비의 최대 노출치를 833밀리가우스(mG)에서 2000mG로 완화하면서도 민원을 줄여나간 선례를 갖고 있다. 이는 일본보다 강화된 833mG의 기준을 따르고 있는 국내에서 최근 송전선로 건설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오쿠보 박사는 “과거 일본은 전자파 기준치가 없었지만, 1999년 WHO 등의 기준을 준용해 2000mG의 기준을 제정했다”며 “일본도 과거 지역주민과 전기사업자 간의 전자파 논쟁이 크게 제기됐지만, 제3기관인 JEIC가 객관적 연구를 통해 결과를 공표하고 피해 주민에 대해 합리적 보상을 진행하며 민원을 안정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쿠보 치요지 일본전자파정보센터(JEIC) 센터장이 국제 전자파 기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진후 기자]

한국 측에서는 윤재영 KNC 전기에너지 환경연구센터장(KERI 연구위원)이 전력망 등 인프라 건설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민들의 전자파 민원으로 인해 송전선로 건설이 지연 또는 취소되고 있는 현실을 발제했다. 김윤명 WHO EMF 한국대표(전 전자파학회회장)는 한국의 전자파 기준과 대응현황에 대한 실무적 사항을 발표했다.

임윤석 전력연구원 전자파환경그룹장과 안희성 전 서울대 기초전력연구소전기환경센터장 및 김남 충북대 명예교수(전 전자파학회장)는 한국의 전자파 기준에 대한 미래 지향적인 재검토 필요성을 제안했고, 주문노 KERI 스마트그리드본부장은 국민 민원 대응 방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구자윤 한양대 명예교수(KNC 명예위원장)는 “현재의 국내 전자파 기준치가 국제 동향에 부합되도록 재검토 연구가 필요하지만, 공공이익에 부합해야 하며 객관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들은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과정에서 인체에 미치는 전자파 영향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송변전설비 건설을 지연시켜 안정적인 전력공급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실제 국내에선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의 수도권 전송을 위해 2000년부터 765kV 송전선로 건설계획이 추진되고 있었지만, 밀양 건설 현장에서 반대에 부딪히며 2014년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선진 기술국들 역시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103개 회원국을 주축으로 한 전력망국제기구(CICRE)를 통해 산하 전자파 워킹 그룹을 운영해 왔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7년 ‘전기환경분야 국제대회’를 유치하며 전력설비 전기환경분야 관련 기술 선진국 및 국내 관련 기관 간 토론의 장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날 포럼을 계기로 한・일 공동 연구를 통한 합리적인 전자파 대응방안 마련 논의도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이동일 CIGRE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 한·일 간 전자파 연구협력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한 데 대해 일본 측이 적극 동의하면서다.

앞서 지난해에도 KNC 전기에너지환경연구센터와 JEIC는 협력각서를 체결하고 상호 정보와 기술 공유를 약속한 바 있다.

향후 CIGRE 한국위원회는 일본 전자파 정보센터 및 독일, 폴란드의 관련 연구기관과 합동으로 일반인과 전문가그룹을 대상으로 전자계 영향에 대한 설문조사와 분석연구 및 전자계 영향에 대한 연구조사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동일 사무총장은 “선진국의 전자계 영향 조사분석 결과를 공유하고, 종전보다 더욱 합리적인 기준을 도출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앞으로 국제 비교연구를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