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달성, 묶어서 해결한다

계통 여유 확보와 신규 건설 최소화 위해 민-관 지혜 모은다

2024-05-23     김진후 기자

#이차전지 산단을 조성 중인 새만금 일대는 최근 전력망 부족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수출에 매출을 의존하는 이차전지 기업으로선 RE100 이행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전원이 절실하다. 하지만 수년째 계통 건설이 지연되면서 계획됐던 수상태양광사업은 ‘올스톱’ 됐고, 해당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조달도 막막해진 상황이다.

#신규 전원이 속속 유입되고 있는 동해안 지역도 이미 수년 전부터 2GW급 송전망 ‘포화’가 닥치면서 출력감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상업운전에 돌입한 신한울원전 및 석탄발전소 용량을 포함하면 감발량은 5GW 수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기업들의 RE100 수요 확대와 비례해 전력망 역부족의 실태가 전력시장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계통 부족의 확실한 해법은 단기간 내 대규모 송변전 설비를 공급하는 것이지만, 2050년까지 신규 보급해야 하는 전력망은 현재 대비 2.3배 규모로 최소 100조원의 예산 소요가 필요하다. 건설에는 막대한 재원과 시간이 필요한 데 반해 한국전력공사의 여력,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민간수용성 등에 가로막힌 실정이다.

이 때문에 당장 RE100 이행과 재생에너지 보급을 과제로 안고 있는 시장에선 신규 전력망 건설 외에 다른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에선 전력계통 혁신대책을 실행에 옮기는 한편, 국소 단위의 유연화 설비 도입으로 한계에 봉착한 계통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12월 전력계통 혁신대책을 통해 내세운 정책 목표. [제공=산업통상자원부.]

◆ ‘건설 최소화·신기술 도입’ 중심 전력계통 혁신대책 시행

정부에선 작년 말 발표한 ‘전력계통 혁신대책’을 통해 앞으로 진행될 계통 유연화 및 건설 수요 절감의 방향성을 보여줬다. 계통 건설에 이르기 전까지 최대한의 여유를 확보하거나, 신규 건설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중점 제시했다.

대책의 핵심은 기존 설비 활용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우선 기설 선로용량을 증대하는 것이 첫손으로 꼽힌다. ‘인클로징 공법’으로 불리는 이 방법은 기존 철탑 바로 곁에 새 철탑을 짓기 때문에 이설이나 경과지 변경에 따른 수용성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 여기에 종전보다 높은 용량의 전력선을 설치하면 대규모 신규 건설 없이도 계통 여유 확보가 가능하다.

별도의 건설 없이 신기술만으로 선로용량을 증대하는 방안도 고안되고 있다. 전력연구원이 2027년까지 연구 중인 실시간 동적 허용용량(DLR) 기술은 시시각각 선로의 허용온도를 추정해 전류량을 높이는 방식이다. 조건 변화에 따라 허용전류가 바뀌는 선로의 성질을 파악해 전통적인 허용치보다 높은 용량을 송전하는 형태다.

또 한 가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허수 계통’을 현실화하는 것도 계통 유연화의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전은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사업에 대해 설비량에 비례해 지역별 계통 용량을 고정해 두는데, 이때 실제 운전과 계통연계 시점에 차이가 발생해 나타나는 것이 허수 계통이다. 실제로는 계통에 여유가 있지만, 추진되지 않는 발전사업으로 인해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선 추진되지 못한 태양광발전사업과 맞물려 수GW 규모의 허수계통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에는 전력망을 선점하고 발전사업을 전개하지 않아 ‘알박기’가 되고 있는 가성사업자도 있다. 계통 이용계약 체결 후 착공하지 않는 가성사업이 많아지면, 전력망 사용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수요자 측에서도 피해를 볼 수 있다.

전력계통 혁신대책은 이러한 알박기 사업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하고, 이달 초부터 실제 사업 여부를 점검해 계통연계 순위를 조정하는 ‘송배전용 전기설비 이용규정’ 개정을 완료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발전사업자에 대해 미개시 허용기간 축소, 단계별 전기공급절차 요건 강화 등 조치를 강화할 방침”이라며 “이를 통해 망 이용을 극대화하고, 실수요자 중심의 전력망 이용체계를 확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다양한 신기술이 계통 여유 확보를 위한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은 교류(AC) 배전망에 직류(DC)를 접목한 하이브리드 배전망 기술을 2028년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또, 민관협의체인 한국그리드포밍 산업협의체는 무관성 전원인 인버터 기반 신재생에너지 발전원에 인공관성을 부여해 계통 안정화 기능을 수행하는 ‘그리드포밍’ 상용화에 앞장서고 있다.

계통 여유 확보를 위한 신기술인 DLR 개념 예시. [제공=산업통상자원부.]

◆ 유연화 위해 ESS, 패스트DR 활용 높여야

전력 계통 제약 문제는 ESS와 양수발전과 같은 설비를 활용하거나 DR 제도를 활성화하는 것도 주요 해답으로 꼽힌다. 사실상 섬과 다름없는 한국의 계통 상황에서는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화 시대’ 도래로 급증하는 전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더 많은 발전소가 필요하다. 전력 부족으로 탄소중립과 대치되는 석탄발전소까지 돌리는 상황이지만, 반대로 발전소는 짓기 어렵다. 수요 문제를 해결 해줄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덕커브’ 발생으로 계통에 위협을 주는 진퇴양난에 빠져있다.이때 유연성을 늘려주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도입한다면 자연스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덕커브가 발생하거나 계통이 흔들릴 경우 ESS로 전력을 충전했다가 부족한 시간에 방전하거나, 계통 상황에 따라 ESS로 수요와 공급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늘어나는 출력제한도 ESS를 활용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발전사업자와의 갈등도 해결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한전은 지난 2015년 화력발전 주파수조정(FR) ESS를 설치했으며 계통 중요성이 점차 커지자 PCS 978MW. 배터리 889MWh 규모의 계통 안정화용 ESS를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 더 늘어날 재생에너지에 대비해 약 300MW에 달하는 추가 사업도 계획 중이다.

또한 전력거래소를 중심으로 현재 진행 중인 제주 BESS 중앙계약시장 외에도 전력망이 취약한 호남지역 전력 계통을 위해 2026년까지 배터리 ESS 1.4GWh를 설치할 예정이다.

한 ESS 업계 관계자는 “송전선로 설치나 발전사업자의 출력제어 등으로 갈등 해결 비용이 커지는 상황에서, 현재 ESS 가격이 비싸더라도 안정을 위해서는 ESS를 설치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적은 비용이 들어간다”며 “이 때문에 정부도 적극적으로 ESS 관련 사업을 육성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국가전략기술인 배터리 산업을 지원하며 우리나라를 ‘ESS 강국’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특정 설비를 설치하지 않고 계통을 안정화하는 또 다른 방안으로는 패스트DR이 꼽힌다. 전력수요를 즉시 감소시켜 계통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60Hz가 기준인 주파수가 59.85Hz 이하(1단계), 59.65Hz 이하(2단계)로 떨어질 경우 속응성으로 전력 사용량을 낮춰 주파수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것이다. DR 작동 시스템을 구축만 하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계통을 안정화할 수 있다.

여기에 전력거래소는 발전사업자가 가진 신재생 자원을 패스트DR로 활용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 이성무 전력거래소 스마트그리드실 실장은 “신재생에너지와 연계된 ESS로 잉여전력을 저장해 수익화하고, 패스트DR로 등록해 전력계통을 안정화하는 신규 비즈니스모델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며 “3~4분기 규칙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전력계통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공=산업통상자원부.]

◆ ‘계통+재생에너지 보급’ 두 마리 토끼 잡을 혜안은

정부는 계통 여유를 위해 전력망뿐 아니라 발전원 차원의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는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선 계통 유연화와 동시에, RE100 수요에 맞춰 종전보다 더욱 많은 양의 설비 보급도 고려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혁신대책은 발전 및 소비시설이 수도권 등 도시지역에 편중된 현 전력조류체계의 분산화를 주문하고 있다. 이는 계통포화지역(변전소)에 접속하는 신규 발전사업에 대한 제한으로 발현될 전망이다. 신규 발전소의 진입을 규제하되, 이곳 포화지역을 중점적으로 관리해 신속히 선로와 유연화 설비 등을 확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올해 중 윤곽을 드러낼 ‘전력계통 통합 정보시스템’을 바탕으로 지역별 계통 상황에 맞춰 발빠른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가능하도록 ‘재생에너지 계획입지’ 제도도 추진한다.

거꾸로 공급자 측인 발전사업자 측에선 태양광 리파워링, 산업단지 지붕태양광 등의 대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리파워링은 내구연한(약 15~20년)이 지난 태양광발전소를 신규 발전소로 대체하는 방안이다. 최초 설치 시점보다 태양광의 광전변환효율면에서 2배 이상의 혁신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단기간 내 대량의 재생에너지 보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태양광 업계 관계자는 "이용계약을 체결한 계통 용량이 한정된 단점이 있지만, 기존에 사용하던 토지 면적의 절반만 활용하기 때문에 많은 면적을 활용하는 태양광에 알맞은 대안"이라며 "향후 계통을 추가로 확보하면 남은 면적에 새로운 발전소를 공급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에너지 소비량이 많을 것으로 관측되는 산업단지를 지붕태양광의 요람으로 배양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대형 에너지사가 우수한 신용 내지 자본력을 바탕으로 보증·건설 등을 제공하는 설루션이 현재로선 유효하다는 관측이다. 일부 광역지자체는 신규 산단의 지붕태양광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고, 엔라이튼 등의 기업은 직접 산단에 자가용 태양광을 공급하고 이용료를 받는 ‘구독형 태양광’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실제 한화솔루션의 경우에도 미국 주택시장을 공략한 구독형 태양광 사업 TPO(Thid Party Ownership)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한화는 금융 자회사인 엔핀(EnFin)을 통해 파이낸스를 제공하고 이를 태양광 공급과 연계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