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의 대전환_변화하는 전력산업 맞춰 전방위적 전환

재생에너지 비중 9% 가까이…실시간 시장 통해 계통운영 안정화 기여 20년간 변화 멈춘 전력시장…전력산업 내외 변화 바탕으로 대전환 기대 LMP로 입지 신호 제공…모든 발전소가 같은 정산금액 받던 통념 깨져 LNG·ESS·청정수소 이어 재생에너지까지…선도시장 통해 정책목표 달성

2024-05-21     윤대원 기자
지난 2001년 개설된 이후 큰 변화가 없던 한국 전력시장이 최근 크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재생에너지와 민간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면서 이에 발맞춘 시장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부터다.      사진=전기사랑 미디어콘텐츠대전

지난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의 일환으로 여러 발전공기업과 전력거래소 등이 한전으로부터 독립했고, 한전이 독점하고 있던 전력산업에 형식적이나마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하게 됐다. 이때부터 국내에서 기능하기 시작한 전력시장의 개념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전력시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동안 우리 시장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큰 변화가 없이 이어져 왔다. 한전을 비롯한 한수원과 발전 5사, 여기에 소수의 민간 발전사들이 참여하면서 변동비기반(CBP;Cost based pool) 시장의 정산방식이 굳이 바뀌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력시장이 변화를 미뤄 온 사이 전력산업에는 변화의 바람이 서서히 불어왔고, 구조 또한 젖어들듯이 시나브로 전환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변화가 재생에너지의 증가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에너지통계월보를 살피면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을 잘 읽을 수 있다. 한국의 2016년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1만9567MW로 그 해 전체 생산한 54만441MW의 3.6%에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5만456MW로 2016년 대비 2.6배 상승했다. 전체 발전량 58만8047MW 중 8.6% 정도의 전기를 재생에너지가 담당하며 주력 전원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굳히는 모습이다.

최근 이어진 에너지위기 속에서 우리 전력시장은 구조적 결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오로지 현물시장 뿐인, 그마저도 하루전시장만으로 이뤄진 한국의 전력시장은 글로벌 에너지 위기 속 급격하게 뛰어오르는 연료비에 취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오로지 CBP로만 가격을 평가하고, 각 시간대별 가장 비싼 한계발전기의 가격으로만 정산하는 우리 계통한계가격(SMP)은 한전의 부담만 키웠다. 시장에서 선택지가 제한적이다보니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고, 한전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부담은 누적적자 200조원이라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숫자로 되돌아왔다. 이는 곧 국민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다행이나마 우리 전력당국은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전력시장 개편의 필요성을 느껴왔고, 이를 조용히 준비 중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최근 ‘대전환’이라는 단어가 결코 과장이 아닌 수준에서 이뤄지는 전력시장 개편을 지켜보게 됐다. 가장 대표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제주도에서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되는 ▲실시간 시장 ▲보조서비스 시장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하루전시장 뿐이었던 현물시장에 실시간 시장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확보하게 된다. 이를 보조하기 위한 보조서비스 시장은 발전사업자들에게 다양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제공할 예정이다.

◆현물 원툴이었던 전력시장에 계약시장 활성화=전력당국이 최근 수행하고 있는 전력시장의 변화는 그동안 단일시장+단일거래로 운영되며 발생한 부작용을 해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먼저 그동안 하나의 현물시장으로만 운영돼 온 전력시장에 다양한 입찰시장을 통해 계약거래를 적극 확대해나가는 움직임이다. 이 같은 입찰시장은 앞으로 한국의 전력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크게 확대되지 못한 전원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를 통해 이들 사업자가 예측가능한 사업을 가능케 함으로써 시장 진입에 대한 선택을 한층 수월하게 하는 한편 적절한 수익성을 확보케 한다는 방침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첫 입찰을 진행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심의 저탄소 중앙계약시장과 올해 첫 사업자 선정에 나설 청정수소발전 의무화제도(CHPS)다. 각 전원별 특성에 맞는 입찰을 개별로 신설함으로써 별도의 시장에서 경쟁하는 환경을 만든 것.

이와 관련 전력거래소는 지난해 입찰을 통해 제주도에서 총 325MWh 규모의 ESS 사업을 입찰, 총 3개의 사업자를 최종낙찰자로 결정한 바 있다.

그동안 ESS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해소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으로 평가 받았지만, 반대로 높은 비용 대비 낮은 사업성이 단점으로 꼽혔다. 과거 비싼 배터리 가격 등 높은 투자비를 충전 전력 반값,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 5.0 등 정부의 지원정책을 바탕으로 커버했지만 해당 정책들이 일몰하면서 ESS 사업의 매력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 뿐 아니라 과거 발생한 화재사고들로 인해 ESS 사업에 대한 정부 및 지자체 등의 관심이 줄면서 ESS의 시장 진입 장벽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저탄소 중앙계약시장이 열리며 낙찰받은 ESS 설비는 계통운영자인 전력거래소의 발전계획에 맞춰 충·방전 시간이 정해지고, 안정적으로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재생에너지가 주력 전원으로 자리잡으면서 실시간 시장과 보조서비스 시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전력거래소는 제주지역 재생에너지 입찰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유연성 자원을 위한 보조서비스 시장을 개설할 방침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전남 신안 육상풍력단지 전경.  [사진=포스코인터내셔널]

전력거래소는 또 올해부터 시작될 CHPS에 앞서 지난해 상반기 일반수소발전 경쟁입찰을 실시하고 5개 연료전지 사업자(715GWh)를 선정하기도 했다. 하반기에도 같은 용량의 입찰을 진행한 가운데 19개 사업자들이 신규로 시장에 진입했다.

올해는 수소 1kg당 탄소를 4kg 이하로 발생시키는 청정수소에 대한 입찰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전력당국이 계약시장 활성화에 나서는 이유는 시장에 다양한 거래방법을 마련함으로써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ESS는 15년, 수소발전은 20년의 장기고정가격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최근 연료비 급등에 따른 한전의 도매전력구입비 상승 국면이 다시 찾아와도 안정적인 가격에 거래를 할 수 있다. 변동성이 큰 최근 에너지 시장에서 예측 가능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시장의 안정성을 높여준다.

사업자 입장에서도 사업의 예측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은 큰 장점이 된다. 에너지 비용이 급등할 경우 현물시장의 사업자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얘기할 때 에너지 비용이 급락하는 시장에서는 심각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같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적지만 시장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시장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계통영향 확대…현물시장 강화한다=제주도에서 실시하는 실시간 시장 시범사업은 그동안 하루전시장 뿐이었던 현물시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주목받는다.

실시간 시장은 하루전에 발전사들이 미리 입찰을 해서 급전순위를 확보하는 시장과 달리 15분 단위의 입찰을 통해 전력수요와 공급 사이의 예측 오차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계통을 운영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는 환경에서 실시간 시장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모습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2023년 기준 8.6%에 달하면서 전체 비중이 3~4%에 불과했던 과거와 달리 주력전원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서 출력을 조절할 수 없는 재생에너지에 맞춰 실시간으로 발전기의 운전을 제어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전력거래소는 내년을 목표로 실시간 시장을 육지까지 도입한다는 방침 아래 제주도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

이에 연계해 보조서비스 시장이 뒷받침돼야만 실시간 시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전력거래소가 실시간 시장과 함께 보조서비스까지 시범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이유다.

재생에너지 전체 보급량이 우리 최저수요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게 되면서 계통운영 난이도가 크게 높아졌다. 특히 이 설비의 대부분이 호남 지역에 집중된 탓에 계통부족과 맞물려 봄·가을철 최저수요 시기에 운영 악화가 더욱 심해지는 모습이다.

이 뿐 아니라 날씨에 따라 재생에너지 간헐성이 심해져 계통여건에 맞춘 실시간 시장의 필요성이 커졌다.

지난 5월 5일 전국적으로 내린 비 탓에 태양광 발전설비의 전력생산이 급감, 바로 1주일 전인 4월 28일 대비 12.6GW 정도의 차이가 발생했다.

이번 연휴 기간에는 기상청이 사전에 일기예보를 통해 많은 양의 비가 전국적으로 내릴 것으로 예보하면서 대비할 수 있었지만, 단기예보는 언제든 틀릴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여기에 대비한 유연성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4월 22일 스위스에서는 폭설로 태양광 패널이 덮이면서 전력생산량에 0에 가깝게 하락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처럼 단기예측이 실패한 가운데 계통운영자인 Swissgrid는 순간적인 수급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MWh당 1만2000유로의 비용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 비용을 지불했지만 전력수급에 이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보조서비스 시장을 통해 유연성 자원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적기 대응했기 때문이다.

보조서비스 시장은 이 같은 유연성 자원의 가치를 인정하는 제도인만큼 언제든 즉시 가동할 수 있고 출력을 조절할 수 있는 석탄·LNG·양수발전 뿐 아니라 ESS 등 설비의 중요성을 높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또 계통문제로 제약이 걸리고 또 탄소중립 이슈와 맞물려 가동이 줄어들 전망인 석탄·LNG 발전사업자들의 역할이 앞으로는 재생에너지 간헐성에 맞춘 유연성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및 공급망 강화 전략’에 따라 그동안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에 큰 역할을 했던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가 일몰된다. 재생에너지와 수소, ESS 등은 계약시장으로 전환된다. 한수원이 출자한 인천연료전지 발전소 전경. [사진=정세영기자]

◆계통 부족 현상 심화되며 LMP 통한 발전소 입지신호 기대=지난 20여년간 우리 전력시장은 단일화된 SMP를 통해 발전사업자들에게 정산을 해 왔다. SMP는 하루전시장에서 정해진 급전순위를 기반으로 각 시간대별 가격이 가장 비싼 한계발전기의 가격에 따라 정해진다.

전력시장 선진국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경우 모선가격제(Nodal Pricing)을 적용, 선로들이 만나는 점접이 되는 모선(Node)을 기준으로 도매전력 요금을 산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별 송전혼잡 등 세부적인 상황을 전력도매시장 가격에 반영한다. 즉 계통혼잡이 발생하는 지역에는 정산가격을 낮추고, 송전에 여유가 있는 지역의 가격이 비싸지는 형태다.

한국 역시 최근 한전의 도매전력가격을 차등하기 위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전력거래소는 지난해 지역별 도매가격차등(LMP) 제도 도입을 위한 워킹그룹 운영을 시작, 본격적인 제도 설계에 나선 바 있다. 이와 관련 연내 수도권·비수도권을 기준으로 한 LMP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전력시장이 가지고 있던 모든 발전소가 같은 정산금액을 적용받는다는 통념이 곧 깨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한국에서도 계통부족 문제로 동해안 석탄화력발전소들이 계통제약에 시달리고 있다. 앞으로 추가될 신규 원전과 신규 석탄화력발전소가 늘어나면 이 문제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 뿐 아니라 호남지역에 집중된 계통 부족 문제 역시 최근 이슈다. 이 같은 문제는 그동안 계통 여건에 관계없이 발전설비 입지가 정해진데 따른 부작용이다.

이와 관련 전력당국은 우선 수도권·비수도권을 기준으로 LMP를 도입해 계통혼잡이 덜 한 지역에 설비를 건설토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전력당국이 지난 2022년 도입한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 역시 이 같은 움직임을 예고한 정책이다.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은 그동안 계통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설비 최대용량을 그대로 입찰했던 하루전시장에 자기제약, 송전제약, 운영예비력 제약 등 실제 수급여건을 반영한 것이다.

계통 부족 문제로 실제 송전 가능한 전력이 60밖에 되지 않아도 제약비발전정산금(COFF)을 통해 입찰한 100을 모두 보상한 것이 그동안의 전력시장이었다면,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에서는 실제 발전한 60에 대해서만 정산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발전사들은 계통 여건에 따라 수익성이 극과 극으로 달라지게 됐다. 동해안의 민간 석탄화력발전사들이 최근 계통제약 탓에 큰 손실을 입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앞으로 신규 발전설비들이 입지 선정에서부터 계통여건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RPS 시대 종료…선도시장으로 전환=산업부가 최근 발표한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및 공급망 강화 전략’의 핵심은 그동안 민간 중심으로 개발했던 재생에너지를 정부가 주도, 2030년까지 연평균 6GW의 재생에너지를 보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함께 그동안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에 큰 역할을 했던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를 일몰하는 한편 재생에너지 설비를 전력시장에 편입한다는 계획을 엿볼 수 있다.

실제 제도 폐지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재생에너지 역시 앞선 ESS와 청정수소 등과 같이 계약시장으로 전환된다.

정부가 매년 신규 설비 보급 목표를 수립하고 여기에 맞춰 입찰을 진행, 신규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것. 이를 통해 20년간 장기고정가격계약을 체결해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전력시장 내에 여러 선도시장들이 차례차례 라인업을 맞추는 모습이다.

선도시장은 미래 특정한 시기에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일정량의 상품을 사전에 정한 가격에 거래하기 위한 계약이 이뤄지는 시장이다. 앞서 시행한 ESS 중심의 저탄소 중앙계약시장과 CHPS 등이 선도시장의 범주에 포함된다. 산업부는 최근 신규 LNG 발전사업 역시 용량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재생에너지까지 정부 계획에 발맞춰 입찰하는 형태로 전환된다면 그동안 하나의 전력시장에서 통합 운영됐던 발전원들을 전원별로 분리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선도시장이 명확하게 그려진다면 정부의 정책 목표에 따른 전원 계획 수립이 가능해진다. 매년 입찰하는 용량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탄소중립이나 전력공급 안정성 등 정부가 그리는 목표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그동안 정부가 사업자의 계획을 받아 승인하고 일정을 세웠던 전력수급기본계획 역시 역할이 바뀌게 된다. 정부가 매년 필요한 수요 만큼의 신규 설비 용량만 제시하는 ‘아웃룩’ 형태로 전환함으로써 보다 유연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전력당국 한 관계자는 “앞으로 정부가 에너지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선도계약 활성화 내지는 계약시장 활성화 등의 목표가 제시될 것으로 기대한다. LNG를 비롯해 양수발전, ESS, 청정수소 등 각 발전원별로 선도시장들이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며 “시장의 전환 속도가 빠른 만큼 정책 설계 과정에서 많은 고민과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