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균형·제도 미비에 PPA 시장 안착 “어렵네”
보다 낮은 가격 원하는 수요기업 반면 공급사는 “가격 경쟁력, RPS가 더 높아” 근본 원인은 공급 부족…추가 보급도 ‘먹구름’ 국내 제도, 글로벌 RE100 기준 대비 미흡
#최근 전력구매계약(PPA)를 체결한 국내 대기업 A사는 전력 구매 주체인 중소사업자 B사와 태양광 전력 가격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계약을 파기했다. 당장 국내 사업장에서 RE100을 이행하기보다는 해외 사업장의 달성률을 높이는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A사는 “중소사업자가 요구하는 지나치게 높은 호가를 수긍할 정도로 급하지는 않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PPA 시장이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제도 탓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좀처럼 가격 균형이 이뤄지지 못해 온전한 시장이 형성되지 않고, 사업자간 불신이 싹트고 있어 이를 제도 정비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PPA 시장은 2021년 제도 도입, 2022년 1분기 5MW 용량의 첫 계약이 이뤄진 이후 2년 새 22건, 1021.3MW 규모로 성장했다. 이중 실제 전력 매매가 이뤄진 사례는 계약 수보다 적지만, 급속한 성장은 RE100 및 넷제로에 대한 시장의 높은 관심을 방증한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하지만 실제 시장 이해관계자들은 “계약만 성사됐을지언정 앞으로의 길은 난항이 예상된다”고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가격 요건이 시장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가격 측면에선 전력 구매자와 재생에너지 전력공급사업자, 재생에너지 발전사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거꾸로 말해 시장 활성화를 위한 첫 조건으로 가격 균형을 맞춰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마다 입장은 다르지만 현재 지붕태양광 구매 단가와 기존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시장 단가에 여전히 갭이 존재한다”며 “RPS 가격 이상을 제시하지 않으면 발전사업자들은 RPS 시장으로 향하고, PPA 시장으로 유입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구매자 입장에선 높은 단가로 전력을 사용하고 계약을 유지하면서 차후를 바라보는 관점도 있고, 태양광보다 이행률 측면에서 유리한 풍력발전과 계약을 체결하는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계약 단가 문제는 공급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일반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어느 정도 균형을 갖춘 시장에서 구매자는 다량의 구매를 통해 가격을 낮추는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 반면 공급이 적은 상황에선 수요자가 희망하는 구매량에 비례해 단가가 올라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처럼 구매 시점이 중요한 상황에선 수요자 측이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이끌기 어려운 구조다.
이는 충분한 보급으로 PPA 단가를 낮추는 추세인 유럽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PPA 전문기업 펙사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에서 올해 1월 사이 PPA 단가는 MWh당 50.18유로에서 43.75유로로 12.8% 하락했다. 이는 아마존 등 수요자가 GW 단위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바탕으로 장기 PPA를 체결할 수 있는 토양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 여건과 맞물려 RE100 달성은 더욱 어려운 구조로 치달은 상황이다. 제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 기준 총 40GW의 태양광이 추가 보급돼야 하지만, 개발·발전사의 여건은 물론 계통을 뒷받침할 한국전력의 사정도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향후 빠듯한 공급이 지속될 경우 PPA 시장 성숙도 느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최근 정부도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및 공급망 강화 전략을 발표하며 PPA 시장의 유인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업계에선 연간 6GW의 보급 계획에 기대감을 걸고 있지만,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밖에도 국내 PPA 제도가 가진 여러 미비점이 제도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변화하는 글로벌 RE100 기준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규정이 대다수다. RE100 달성과 직결된 규정도 많아, 당장 기업 이행에 위험부담이 될 수 있다.
글로벌 RE100은 최근 상업운전 개시로부터 15년이 경과한 발전소에 대해 RE100 인증이 불가하도록 기준을 개정했다. 전기사용량의 15% 이하에 대해서는 해당 발전소의 전력 구매 및 인증이 가능하다는 예외 규정은 뒀지만, 장기 계약이 유리한 PPA 시장에선 리스크가 될 수 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15년 이상 발전사 역시 높은 호가를 부르는 탓에 계약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환경이다. 결국 시장 수요에 대응해 지속적인 신규 발전소를 보급할 때 비로소 계약 및 이행을 비롯한 시장 형성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또, 글로벌 RE100 기준이 요구하는 ‘최초 전력 구매자’ 이슈에도 현 제도가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산업부 고시에 따르면 직접PPA 구매자는 실제 거래로부터 2개월 전(상업운전 개시 시점)에 산업부 및 전력거래소에 PPA 계약을 신고해야 한다. 거래 시점과 신고 시점 사이에 2개월의 공백이 발생하는데, 이때 발전사업자는 생산 전력을 전력시장에 판매해야 한다. 이 때문에 구매자가 최초 구매자가 되지 못해, RE100 인증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제도 이슈에도 불구하고 PPA를 선호하는 기업들은 점차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며 “정책 당국자들의 기민한 대응이 동반돼야만 갓 첫발을 딛은 PPA 시장도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