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도 배도 부족...해상풍력 구체적 보급 로드맵 마련 시급'
우수한 공급망 보유했지만 단지 개발경험은 미흡 국내 WTIV는 단 1척, 조선소·선사 모두 관망세 목포 신항 올해 준공, 전기본 맞추려면 항만 계획 서둘러야 구체적인 수요 나와야 투자 일어나…정부 시그널 필요
원활한 해상풍력 단지 개발을 위해 전용 항만과 전용 선박의 확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업계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현재 보유한 물적 자원으로는 계획된 프로젝트의 연쇄 지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자원빈국인 우리나라는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 구축을 통해 에너지 강국으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풍부한 해양 자원과 넓은 영해 및 EEZ를 적극 활용해 에너지 영토를 확보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조선업과 철강업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공급망과 우수한 케이블 및 전력 기자재를 보유한 만큼 외국계 개발사나 관련 기관들도 국내 해상풍력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발목을 잡는 것은 부족한 해상풍력 단지 개발 경험이다.
국내에서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단지는 23GW 규모지만 상업 개시된 용량은 124MW에 불과하다. 특히 대규모 단지 건설 개발 경험이 없다 보니 이를 뒷받침하는 항만 시설과 전용 선박도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국내에서 해상풍력 전용 설치항만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고정식 해상풍력발전기 설치를 위한 해상풍력전용설치선박(WTIV) 보유 대수도 한 척에 불과하다. 이에 본격적인 해상풍력 보급이 시작될 때쯤 심각한 병목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특히 2030년까지 14.3GW의 해상풍력을 보급한다는 정부 기본계획에 따라 오는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항만 부족과 WTIV 부족이 현실화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WTIV 부족 불 보듯 뻔하지만 발주도 건조도 ‘아직’
국내 WTIV 현황은 현대스틸산업이 보유한 1만4000t급 ‘현대프론티어호’가 유일하다. 현대스틸산업은 현대건설이 100% 출자해 설립한 자회사로, 해상풍력 EPC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현대건설의 선제적 투자의 산물이다. 현대프론티어호는 1200t의 선박 일체형 크레인을 탑재해 최대 10MW 규모의 대형 터빈을 설치할 수 있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차질 없이 국내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진행되려면 최소 4~5척의 WTIV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해상풍력 터빈이 점차 대형화되면서 10MW급 이상 터빈을 설치할 수 있는 WITV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아직 시장이 초기인 만큼 10MW 이하 터빈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점차 균등화발전단가(LCOE)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10MW 이상의 대형 터빈이 소형 터빈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10MW 이상 대형 터빈을 설치할 수 있는 WTIV의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해상풍력 업계는 WTIV 확보에 적극적인 상황이다. 세계풍력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WTIV 56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추가적으로 20대를 건조 중이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에선 11척이 운행 중이고 5척이 추가 건조 중이다. 마찬가지로 유럽은 WTIV 49척이 운행 중이고 추가로 13척이 건조 중이다. 외국 선박을 이용할 경우 대여 비용은 하루에 15만~20만 달러(1억9000억~2억6000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추세에도 국내 내항운송사업자들이나 조선소는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WTIV 발주는 1000억~3000억원이 투자되는 대규모 사업인 만큼 내항운송사업자들은 선박 발주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선박 업계 관계자는 “선박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대책은 국내 선사에서 WTIV 수요를 실감하고 발주를 내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해상풍력 단지의 안정적이고 구체적인 보급 계획이 나와야 국내 선사들이 이를 토대로 선박 발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선박을 제작하는 조선업계의 입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최근 대형 조선소는 슈퍼싸이클로 인해 모든 선박 건조 도크가 가득 찬 상황이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선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향후 수년간 발주가 밀려 있다. LNG선 대비 부가가치가 낮은 WTIV의 경우 대형 조선소에서 취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내 조선소 관계자는 “LNG 선박의 경우 한 도크에서 여러 대를 동시에 건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WTIV의 경우 한 도크에서 한 대밖에 취급할 수 없어 공간 효율이 낮다”며 “앞으로 WTIV의 수요가 더 많아지면 검토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진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첫 해상풍력 전용항만은 2026년에나…병목현상 우려
해상풍력 단지 개발이 활성화되면 해상풍력 전용 항만 부족도 예상된다. 특히 해상풍력 단지 공급이 가속화되는 2026년부터는 심각한 병목현상이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사단법인 넥스트에 따르면 현재 계획 중인 설치항만 건설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돼도 2030년 말까지 해상풍력 단지는 최대 7.8GW만 설치할 수 있다. 이는 정부 기본계획 목표인 14.3GW의 절반 수준으로 이마저도 선박 등 이용에 차질이 없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수치다.
가장 시급한 것은 설치항만이다. 해상풍력 항만은 목적에 따라 부품을 제조하는 제조항만, 제조된 부품이 모여 조립되는 설치항만, 단지를 관리하는 유지관리 항만으로 나뉜다.
설치항만은 WTIV가 접안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과 깊은 수심이 확보돼야 하며 수천톤에 달하는 풍력 터빈 부품이 적재될 수 있을 만큼 대지력이 우수해야 한다. 특히 발전기 블레이드의 길이가 100m가 넘는 만큼 넓은 야적 공간도 필수적이다.
현재 국내에서 이같은 조건을 갖춰 해상풍력 전용항만으로 개발 중인 항만은 ▲목포신항 ▲해남 화원산업단지 공용부두 ▲울산신항 ▲군산항 ▲인천신항 등 5곳이다. 이 중 가장 먼저 준공이 예정된 곳은 목포 신항으로 올해부터 사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다만 항만 병목 현상을 피하기 위해선 목포항 외 4개 항만의 개발을 확정 짓고 준공 날짜를 앞당겨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윤식 넥스트 연구원은 “오는 2024년 발표될 ‘제 2차 신항만건설 기본계획 수정계획’에 해상풍력 지원항만 개발내용을 포함해 구체적인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추가 항만 개발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관 투자 촉진하려면 예측 가능한 수요 나와야
해상풍력 업계에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선박 및 항만 마련을 위해선 안정적인 수요와 예측 가능한 프로젝트 계획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꾸준한 해상풍력 개발 수요가 예상되면 선주는 WTIV를 발주하게 되고 정부와 지자체는 WTIV를 위한 전용 선석과 설치항만 개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국내에선 아직 2030년까지 14.3GW의 해상풍력을 공급하겠다는 제10차 전기본 외에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인허가 문제로 프로젝트가 지연되면서 전기본 목표마저도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것이 현재 업계의 평가다.
이에 업계에선 정부에서 연도별로 해상풍력 보급 계획 및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명시한 로드맵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같은 정부의 명확한 시그널이 산업을 촉진하고 투자를 활성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한 개발사 관계자는 “선박을 발주하기 위해선 10~15년 간 선박 사용 수요가 확보돼야 하기 때문에 같은 지역권의 개발사들이 함께 힘을 합치는 등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며 “정부에서 해상풍력 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시그널이 나오면 선박이나 항만에 투자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