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 지키자는 ‘카보타지(Cabotage), 해상풍력 보급 복병 되나

시장 커지는데 국내 WTIV는 1척, 추가 건조계획도 없어 타국 WTIV 활용 불가피하지만 카보타지 규정에 발목 우려 김인현 고려대 교수 “한시적인 제도 완화 및 특례법 적용” 필요

2023-12-28     안상민 기자
제주 앞바다에 설치중인 해상풍력 발전기. / 사진=김진후 기자

지지부진했던 국내 해상풍력 프로젝트 개발이 하나둘 가시화되면서 외국 선박의 이용을 제한하는 카보타지(Cabotage)의 완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국내 해운 산업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재생에너지 보급의 복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는 엄격한 카보타지 적용이 해상풍력 프로젝트 지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국내 해상풍력 설치에 필요한 전용 선박이 부족한 상황에서 카보타지 규정으로 인해 자칫 외국 선박의 입항까지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카보타지란 세계 각국이 자국 해운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국의 항만과 항로를 오가는 선박을 자국 국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다. 우리나라는 선박법 제6조(불개항장에의 기항과 국내 각 항간에서의 운송금지)에 따라 한국 선박이 아닌 선박이 불개항장에 기항하거나 국내 각 항간에서 여객 또는 화물의 운송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설치항만에서 부품 및 인력을 실어 해상풍력 개발단지가 있는 영해 또는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운반하는 것이 해상풍력 선박의 역할이지만 이 제도에 따르면 한국 국적의 선박만이 영해를 운항할 수 있다.

해상풍력 항만은 관련 부품을 제조하는 제조항만과 각 제조항만에서 만들어진 부품을 조립해 현장으로 실어 나르는 설치항만, 해상풍력 단지를 관리하기 위한 유지관리 항만으로 나뉜다. 제조항만에서 설치항만으로 운반하는 것은 바지선을 사용할 수 있지만 단지 건설 효율을 위해서는 해상풍력전용설치선박(WTIV)의 사용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는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14.3GW의 해상풍력을 보급한다는 방침이다. 2023년까지 약 23GW 규모의 사업이 발전사업허가를 취득해 앞으로 선박의 수요는 꾸준히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운용 중인 WTIV는 8MW급 한 척에 불과한 상황이다. 추가 건조 중인 WTIV도 없다.  때문에 국내 내항운송업자들이 WTIV를 추가로 발주하지 않으면 결국 외국 국적의 선박을 용선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마저도 불가능해지면 사업지연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WTIV의 용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해상풍력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선박 부족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계풍력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WTIV 56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추가적으로 20척을 건조 중이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에서는 11척이 운행 중이고 5척이 추가 건조 중이다. 마찬가지로 유럽은 WTIV 49척이 운행 중이고 추가로 13척이 건조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프로젝트 지연을 막기 위해 최소 4~5척 이상의 WTIV가 필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에 해상풍력 보급을 위해서는 한시적으로 국내 카보타지 조항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내 제도를 완화하거나 특례법을 만들어 국내 개발사들이 운송계약을 미리 체결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1일 온라인으로 열린 고려대학교 해상법연구센터 선박건조금융법정책 세미나에서 '해상풍력발전에서 카보타지의 법리'를 주제로 발표했다. / 사진=ZOOM 회의 캡쳐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2월 21일 열린 선박건조금융법정책 세미나에서 “선박 부족으로 해상풍력 보급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피해야 한다”며 “국내 산업을 보호하되 필요 시 외국 선적의 선박 이용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