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3년 새 4배 급증, 실제 화재사고는 적어
화재사고율 비중은 0.02%로, 내연기관차와 유사
배터리 화재 예방법 없는 게 문제, 정부는 냉각 소화에 집중
“충전기 지상화 추진은 비용 부담 논의부터 우선 해야”

지난달 9일 오후 세종시 소정면 운당리 국도 1호선을 달리던 테슬라 전기차가 화재로 전소돼 뼈대만 남아있는 모습. (제공=연합뉴스)
지난달 9일 오후 세종시 소정면 운당리 국도 1호선을 달리던 테슬라 전기차가 화재로 전소돼 뼈대만 남아있는 모습. (제공=연합뉴스)

최근 전기차 사고가 잇따르면서 화재에 대한 공포감도 커지고 있다. 실제 전기차 화재는 내연기관차 화재에 비해 발생률과 사망 건수도 적지만 전기차 핵심 부품인 리튬이온 배터리의 불안정성이 연쇄 폭발·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상 배터리 열폭주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없기 때문에 정부도 전기차 배터리 화재 진압에 초점을 맞춰 대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전기차 충전시설 인근 질식소화포 배치, 지하주차장 방화 구역 설정 등의 방안이 논의됐으나 비용, 책임소재, 비효율 등의 문제로 멈춘 상태이다.

전기차 40만대 시대에 걸맞은 효율적인 전기차 화재 대응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 전기차 화재, 실제 화재사고률·사망률 높지 않아

전기차 화재 사고가 지난 3년 사이 4배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지난달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최근 3년간 연도별 전기차 화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전기차 화재는 총 44건 발생했다.

2020년에는 11건, 2021년에는 24건, 2022년에는 44건 발생해 매해 2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3년간 전기차 화재 사고가 발생한 발화요인을 살펴보면 전기적 요인이 18건으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전기차 화재가 내연기관차 화재 발생률보다 특별히 높은 것은 아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5월까지 같은 기간 발생한 전체 전기차 대비 화재사고율 비중은 0.02%로, 내연기관차 화재사고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 위험 정도를 대표할 수 있는 사망 건수는 어떨까. 동일 기간 화재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는 0명, 부상자는 4명이다.

소방청 대변인은 “2022년 5월까지 충돌에 의한 충격 등으로 사망한 경우는 있었지만 화상이나 매연 등 직접적으로 화재 때문에 사망에 이른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전기차 화재에 대한 공포감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관련 사고도 늘어난다. 결국 어두운 이면을 얼마만큼 최소화해주느냐가 중요하다"며 "사고 최소화를 위한 기술 개발, 정책 활성화 저해를 막기 위한 네거티브 규제(최소 규제) 도입, 운전자 안전의식 제고 등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열폭주가 원인...예방책 사실상 없어

전기차 화재는 폭발적으로 불이 붙고 쉽게 꺼지지 않는 탓에 위험한 사고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외부 충격에 의한 화재 발생 외에도 배터리 과충전, 배터리 단락 등으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약점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액 등 크게 4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여기서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의 직접적인 접촉을 차단하면서 미세한 구멍으로 리튬이온만 통과시켜 전류를 발생시키는 역할을 하는 필름이다. 양극과 음극이 서로 닿으면 리튬이온 움직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폭발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분리막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기차 배터리 열폭주 단계. (제공=국립소방연구원)
전기차 배터리 열폭주 단계. (제공=국립소방연구원)

하지만 낮은 온도에서 배터리가 화학 반응을 하다 보면 음극 표면에 나뭇가지 형태로 ‘덴드라이트(Dendrite)’ 결정이 생긴다. 덴드라이트는 리튬이온의 이동을 방해해 에너지 효율을 떨어뜨리며 크기가 커지면 분리막까지 손상시켜 내부 단락을 일으켜 화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전기차 배터리 열폭주 단계는 ▲특정 배터리 열화 ▲탄화수소가스(오프가스) 배출 ▲열폭주 발생 ▲열폭주 전이로 구분할 수 있다. 마지막 열폭주 전이는 특정 배터리 열폭주로 발생한 열과 가연성 가스에 의해 연소와 폭발이 일어나고 열폭주 과정에서 리튬산화물이 분해하면서 지속적인 산소를 공급해 전체적 배터리셀로 열폭주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리튬이온 배터리셀의 소재에 대한 한계 때문에 사실상 화재에 대한 예방책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소방당국은 화재 진압에 초점을 두고 전기차 화재에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Z폴딩 방식 적용, 방열 성능 높인 배터리팩, 난연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적용, 분리막 특수코팅 등의 전기차 배터리 화재 대응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 전기차 화재는 진화에 초점...이동 냉각수조 등 활용

제주특별자치도 소방안전본부는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에 소재한 주차장 전기차 화재에서 최근 처음으로 도입한 이동식 소화수조를 사용해 화재를 신속히 진압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소방안전본부는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에 소재한 주차장 전기차 화재에서 최근 처음으로 도입한 이동식 소화수조를 사용해 화재를 신속히 진압했다.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 화재에 대해 힘쓰고 있지만 배터리팩이 철제로 덮인 탓에 뾰족한 대응 법이 없는 상황이다. 소방청은 화재가 생긴 배터리셀이 주변 배터리로 열폭주 하는 과정에 주목했고 결국 주변 배터리 열전달을 차단하기 위해 주수(물)소화에 의한 냉각이 최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소방당국이 주수에 의한 냉각소화 실험을 한 결과 475.2℃의 배터리 온도가 주수한 즉시 급격히 냉각됐으며 61초 주수했을 때 인접 배터리 및 주변 배터리 온도가 100℃ 이하로 냉각됐다.

최근 소방당국은 효과적인 냉각소화를 위해 이동식 냉각수조를 이용한 진압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 주변으로 조립식 수조를 만들고 물을 채워 배터리 온도를 낮추는 방법이다. 실제 성공 사례도 있으며 지역 소방청에서 주로 훈련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질식소화포(덮개)에 대한 진압 방안은 논의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소방청이 실험한 결과 질식소화포로 덮은 후 배터리 온도가 낮아지지 않아 열폭주가 발생했으며 지속적으로 오프가스가 배출됐다. 결국 실험에 사용된 배터리셀 전체에서 열폭주가 발생했다.

최근 전기차 충전기를 구축하면서 질식소화포를 함께 비치하는 사례가 있는데 실제 비용에 비해 효과적인지는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전기차 업계 관계자는 “질식소화포만 있는 경우 혼자 불이 난 전기차를 덮기는 어렵다”며 “화재 방지에 실제 효과가 있는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 관련 업체의 영업에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선 소방서에서는 질식소화포와 주수소화를 함께 사용해 효과적인 진압을 한 사례가 있어 소방본부에 다수 배치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올해 1월 1일 기준으로 인천, 광주, 울산, 세종, 경기도 등은 이동식 수조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 전기차 충전기 지하주차장 설치 금지?...“비용 부담 논의 필요”

최근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전기차 충전기 지상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전기차 화재가 공동주택 지하주차장 충전소에서 발생하면 진압이 어려워 대형화재로 번질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수의 75.1%가 공동주택시설에 설치됐다.

전기차 전용주차구역 소방안전가이드. 
전기차 전용주차구역 소방안전가이드. (제공=부산소방재난본부)

산업부에서도 전기차 충전시설 지상화를 포함한 기준 정비 개정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전용 주차구역 방화구획 ▲연기배출설비 ▲전용 CCTV 설치 등의 방안이 포함돼 있다. 

충전시설이 지하주차장에 있는 것은 배선 선로상 설치 비용이 적게 들고 지붕이 있어 내구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충전시설이 지상으로 올라오면 충전 업계의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충전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에서 충전시설(지상) 위치까지 배선 작업을 해놓고 충전기를 설치하라고 하면 모를까 업체가 배선 선로 작업을 함께 하게 되면 구축 비용이 상당당히 증가하게 된다”면서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정하지 않고 제도를 추진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산업부에서 진행된 개정안 논의는 국토부, 산업부, 환경부, 소방청 등의 주관부처의 책임소재 부담 때문에 전기차 충전시설 전용 CCTV를 설치하는 선에서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충전 중 화재가 급속(DC) 충전에서 자주 발생했던 걸을 고려해 급속 충전기만 야외에 설치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급속충전이 배터리 안정성을 해하긴 하지만 배터리 화재와의 관계성이 약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