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그리드 인프라에 맞는 컨트롤타워 부재 아쉬워'
정범진 의장 "서비스 명확히 정의한 뒤 기술, 사업성, 수용성 등 고려해 추진해야”
한정훈 전무 “간단하고 단순한 서비스부터 통일된 창구를 통해 국민들에게 제공해야”
문석준 지사장 “TOU 기반 요금체계 도입이나 시장 개방 통해 다수 전기사업자 등장해야 ”

기후위기로 인해 탄소중립이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고, 인공지능 기술과 각종 ICT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전기·에너지 산업에도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과거 산업의 핵심 이슈가 원자재 수급, 가격, 물량, 인력 등이었다면 최근의 이슈는 친환경, 디지털, 자동화, 보안 등으로 바뀌는 추세다. 이런 급격한 변화의 바람에 전기산업계는 제대로 대응하고 있을까. 전기신문이 2023년을 맞아 연간사업으로 ‘월간좌담’을 준비한 이유다. 본지는 1월 신년호에서 ‘시행 10년 맞은 DR시장, 현재와 미래 방향’을 주제로 신년좌담을 진행한데 이어 매월 ‘월간좌담’이라는 타이틀로 산업팀 전문기자들이 각 분야 최고 전문가로부터 변화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주요 이슈의 현상과 해법을 들어볼 예정이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 

탄소중립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는 필연적인 추세다. 이에 따라 전력망은 복잡해지고 있고, 모든 부분이 자동화로 운영되는 디지털 유틸리티의 시대도 점차 다가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AMI(원격검침인프라)는 스마트 전력망과 디지털 유틸리티를 구현할 뼈대와도 같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원 확대가 계통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어 이에 대한 적절한 설계와 대응을 위한 AMI 구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다. 해외에서는 AMI 데이터를 근간으로 신재생뿐만 아니라 전기차 충전시스템 관리 솔루션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본지는 국내외 AMI 현주소를 살펴보고 향후 서비스 산업으로 스마트미터링을 확대해 나갈 성공 전략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 사회 및 정리=강수진 기자

▲패널=정범진 스마트미터링포럼 의장, 한정훈 누리플렉스 전무, 문석준 아이트론 지사장 

지능형 전력망 개념도. 출처=산업통상자원부.
지능형 전력망 개념도. 출처=산업통상자원부.

▶사회=스마트그리드 구축이라는 정부 정책과 에너지 효율 향상 기조에 따라 스마트미터링 사업이 2010년 한전 주도로 시작돼 10년이 훌쩍 넘었다. 현재 시장 구조를 보면 한전 주도 2250만호, 민간 시장 1100만호 가량에 AMI 구축이 필요한데, 이제까지의 국내 AMI 사업 총평은.

▶정범진 스마트미터링포럼 의장(이하 정)=“한전의 AMI 구축 사업은 크게 2단계로 진행되고 있다. AMI 구축을 위한 현장 및 운영 기술을 확보하고 안정화하는 사업 초기 1단계는 제주 ATT사업을 전환점으로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문제는 2단계다. 기술이 안정화돼 구축 사업이 탄력을 받아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는 2024년까지 당초 계획물량 구축을 완료하겠다는 최근 발표는 다행스럽지만, AMI 구축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초기에 구축했던 계기 및 통신 설비의 내구연한에 따라 교체해야 할 물량도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부터 진행된) 민간 AMI는 주로 AMI 납품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만큼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지원체계가 사업 초기부터 병행돼야 한다.”

▶한정훈 누리플렉스 전무(이하 한)=“단순히 전체를 다 구축했는지 보다 스마트미터링 결과가 스마트그리드 사업 전반에 기여하도록 제대로 구축돼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특히 민수 AMI 사업은 대국민 홍보, 설득, 모집부터 입찰, 납품, 구축, 운영까지 전 과정을 사업자가 수행해야하는데, 이런 특성을 고려하면 100만호 이상 보급 실적은 의미가 있다. 또 AMI는 에너지관리 서비스의 기반으로 핵심 역할을 하지만 드러나지는 않는다. AMI 성과를 논하려면 AMI가 기반 역할을 하는 서비스까지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다만 스마트미터링이 스마트그리드 서비스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인프라 성격에 맞는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는 것은 아쉽다.”

▶문석준 아이트론 지사장(이하 문)=“절반의 성공이다. 한전 AMI 인프라는 1000만호 정도 확충됐지만, 이를 활용하는 소비자는 약 10만명을(구글 플레이스토어의 한전 파워플래너 앱 다운로드 수 기준)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용률이 5% 안팎이라는 뜻이다. 에너지 서비스 앱의 월 이용자수 MAU(Monthly Active Users)는 10만명 중에 20%, 2만 명도 안 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 아파트 AMI 사업은 지난해 말 기준 120만호 AMI 보급에 그쳐 1만명, 1%도 이용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가 우리나라 에너지 서비스의 현주소다.”

▶사회=해외 사례를 보면 이탈리아의 경우 AMI를 모두 구축했고,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늦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구축률이 더 높다.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한=“매년 새로운 계약을 차수 별로 체결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국내와 달리 해외는 단일계약 후 다년간 구축하는 형식이다. 이는 진행 중에 기술 발전 등과 같은 개선점을 반영하기 어려운 단점도 있지만, 전체가 일관된 형태의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고 AMI 구축 기간 운영에 융통성을 가질 수 있어 체계적인 사업수행이 가능하다. 또한 유럽권 국가들은 여러 지침 및 법령에 강제되는 구축 의무가 AMI 구축 진도를 촉진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정=“국내 AMI는 사업환경이 매우 독특하다. 이탈리아는 Enel이 3000만호 AMI를 완료했지만, 특수한 전력 사용 환경에 기인해 보편적 보급모델로 평가받기는 무리가 있다. 일본은 10개 전력회사와 전력시장 자유화에 따른 다수의 판매회사가 존재하는 상황이라 사업 규모나 시장 측면에서 한국보다 유리한 점이 있다. 단일 전력회사가 2000만 수용가의 AMI를 구축하는 것과 1000만의 민수 아파트 세대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사례다. 이렇듯 국내는 AMI 사업을 추진하기에 결코 용이한 구조는 아니다.”

▶문=“해외는 사업자가 여럿 존재하는 상황에서 AMI 설치 이유가 명백했고 법적으로도 Time line을 확실히 정했다. 참고로 대부분의 나라가 민영화가 아닌 시장개방 상태다. 국가가 여전히 요금을 조절하고, 사업자가 전기를 공급하며 서비스와 요금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독점사업자가 에너지를 공급하는 상황에서 자체적인 구축목표만 설정하고 계속해서 사양을 변경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필리핀 역시 독점사업자가 법적 강제없이 AMI를 구축해 사업이 지연됐다. 사업자에게나 고객에게나 어떤 이익이 되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사회=AMI 사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서비스’ 영역 활성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서비스 영역 활성화가 되지 못한 배경은 무엇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문=“전기가 적자로 공급되는 현재 상황에서 고객이 서비스 제공 전후 차이를 느낄만한 서비스가 개발되지 못했다. 전기요금이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는 TOU 기반의 요금체계로 바뀌거나, 시장개방을 통해 전기 사업자들이 다수 등장한다면 다양한 서비스가 개발되고 소비자들의 요금부담도 낮아질 수 있다. 신재생도 Net metering과 같은 요금체계를 도입해 혜택을 볼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손실을 보고 판매하는 왜곡된 전기요율과 경직된 요금체계가 서비스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한=“일반가정, 산업, 상업용 등의 영역에 있어 에너지 사용의 비중과 요금제에 따른 부담의 경중이 서로 다른데, 이에 대한 균형 잡히고 종합적인 조정도 필요하다. 또 개발한 서비스 모델이 도입, 안정화되기 전에 트렌드에 따라 새로운 서비스를 계속 발굴만 하는 상황은 서비스의 난립으로 사용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선택 복잡도만 높이게 된다. 따라서 간단하고 단순한 서비스부터 통일된 창구를 통해 국민들에게 안정적으로 제공돼야 한다.”

▶정=“서비스를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AMI를 구축해놓고 어떤 서비스를 할지는 예전에 초고속 인터넷을 구축할 때 기대했던 사업 방식이다. 일단 인프라를 구축해놓으면 뭔가 서비스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건데, AMI는 서비스를 명확히 정의해 놓고 이를 위한 기술, 사업성, 소비자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사전 분석한 이후에 추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스마트한 전력소비 체계 구축 계획. 출처=산업부.
스마트한 전력소비 체계 구축 계획. 출처=산업부.

▶ 사회=정부가 3차 지능형전력망 기본계획에서 AMI 고객 인지도 제고를 위해서 국민DR, 한전 앱 연동 등 여러 방안을 내놨다. AMI 서비스 활성화에 어떤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는지.

▶한=“먼저 신축아파트의 경우 한전의 시스템과 연동하는 부분은 한전의 안정된 AMI 서비스 수준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이점과 한전의 AMI로 제한되는 한계도 있을 것 같다. 또한 현재 국민 DR 가입자가 만여명을 조금 상회하고 향후 3차 계획안 목표도 2만명 정도란 현실에서 국민 DR 참여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ESG 활동과 연계된 핵심 가치에 더해 참여에 대한 현실적인 경제적 효과가 강구돼야 한다.”

▶정=“일본의 3대 편의점인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 로숀의 경우 2021년도 기준 총 5.2만개 점포가 있는데 이중 3.3만개의 점포가 DR에 참여하고 있다. 60%가 넘는 참여율이다. 이를 통한 편의점의 수요시간대 전력피크 감축량은 무려 108MW이고, CO2배출 감축률은 2013년대비 약 30%의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거뒀다. AMI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할 수 있는지 일본의 사례로 가늠해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정부안에는 AMI 수요관리의 핵심인 다양한 수요관리형 요금제의 한전 수용가 및 민수 아파트 세대 도입 계획, 수용가 및 소비자 맞춤형 에너지관리 계획이 구체적으로 포함되지는 않았다.”

▶문=“성공의 힌트는 서울도시가스의 가스앱에서 찾을 수 있다. 가스앱은 지금까지 100만회 이상의 다운로드와 100만 MAU를 달성했다. 100만 MAU를 달성하기 위해 3년이 걸렸는데, 그동안 가스앱은 업데이트를 거듭해 단순히 계량지침을 수집하고 요금을 알려주는 앱에서 생활밀착형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광고 수익까지 발생해 이를 소비자들과 나누고 있다.”

▶사회=계시별요금제는 AMI 보급이 서비스로 확장하기 위한 물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제주지역에서 진행 중인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의 참여율은 0.41% 수준에 불과하다. 그 원인은 무엇이고, AMI 서비스를 요금제와 연결하기 위해 어떤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한=“전기사용량이 대략 500~600kwh 이상의 고객일 경우 계시별 요금제가 유리하다. 가정용 스마트전력플랫폼 사업을 통해 수집된 가구들의 정보를 보면 해당 구간을 넘어서는 에너지 다소비 가구가 많지 않다. 또한 이런 요금제 선택이 개인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한전 입장에서는 오히려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는 제도이기에 적극적으로 독려해야 할 동인이 없다고 본다.”

▶정=“누진요금제의 낮은 전기요금 단가가 적용되는 1~2단계 구간의 전기요금체계를 계시별 요금제와 같이 개선하지 않는다면 한전의 입장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6단계에서 3단계 누진으로 완화되면서 누진요금제는 효용을 다했다고 본다. 전기사용량이 적은 제주가 아닌 내륙에서 계통환경을 반영한 다양한 수요관리형 요금제를 설계하고 소비자 맞춤형 요금제 정보 및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문=“계시별 요금제의 장점은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다. 요금제를 촘촘히 설계해, 편하게 전기를 많이 사용하며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징벌적 요금을, 전기를 절약하며 혹은 절전 용품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각종 인센티브를 더해 확실한 보상을 주게 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확실한 징벌과 왜 징벌적 요금이 나왔는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장차 AMI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서비스 플랫폼 생태계가 조성되면 우리 생활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를 그려 달라.

▶한=“전기, 수도, 가스, 열등 에너지원을 확대하면 에너지 사용정보 분석을 통해 더욱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금융이나 통신 등과 같은 영역의 정보와 결합하면 그 활용범위는 훨씬 확대될 수 있다. 금융의 마이데이터와 같이 여러 에너지데이터를 사용자가 원하는 환경에서 볼 수 있는 제도 정비가 수반돼야 한다.”

▶문=“AMI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인화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비효율 가전기기를 갖고 있다면 적당한 제품을 추천받고,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전기차나 생활용품 등 각종 이벤트 정보를 받아 볼 수 있다. 녹색 라이프스타일을 만들 수 있도록 유도도 가능하다.”

▶정=“서울과기대 설문조사에서 소비자의 에너지 서비스 수용성과 비용지불 의사를 조사한 결과 약 15%의 소비자는 비용이 다소 증가해도 지속적으로 서비스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충실한 고객으로 나타났다. 만약 3000만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하면 약 450만 소비자가 서비스 비용지불을 하는 고객이 되는 셈이다. 에너지 서비스가 부재한 상황에서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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