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확보 사업’…예타 면제 대상서 탈락
KDI “현행법 없는 시설물”…정부 “특별법 없인 아무것도 안 돼”
여야 이견 대립에 꽉 막힌 고준위 특별법, 논의 진전 촉구 목소리↑

스위스 방사성폐기물관리공동조합 나그라(NAGRA)의 그림셀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에서 실증이 진행되고 있다. (제공=NAGRA)
스위스 방사성폐기물관리공동조합 나그라(NAGRA)의 그림셀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에서 실증이 진행되고 있다. (제공=NAGRA)

고준위 방폐장 사업이 시작부터 찬물을 맞았다. 전체일정의 앞단에 있는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건설이 예타 면제 대상에서 탈락한 가운데 고준위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아 발목을 잡힌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부터 본격화되는 방폐장 사업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내년에 부지를 공모할 예정이었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확보 사업’이 기획재정부의 예타 면제 대상에서 탈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고준위 방폐장의 안전성 입증을 위한 기술개발과 실증을 위해 연구용 URL이 필요하다고 보고 예타 면제를 신청했다. 구체적으로 산업부는 연구용 URL이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본지가 입수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검토의견에 따르면 연구용 URL은 면제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특히 방폐물관리법에 연구용 URL의 설치 근거가 명시돼 있지 않은 게 화근이 됐다.

현행 방폐물관리법은 방폐물 사업의 범위를 구분하고 있을 뿐 연구용 URL을 포함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 일체에 관한 규정이 없다. KDI는 검토의견에서 “주무부처가 방폐물관리법 제9조를 제시했으나 (연구용 URL) 사업 범위에 대한 조항으로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현행법의 테두리 내에서 연구용 URL 사업에 속도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사업계획 등을 더욱 구체화해 내년쯤 정식으로 예타를 신청하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이 경우 예타 결과에 따라 전체사업이 유동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가 있다. 방폐장 사업은 오는 2029년까지 저장·처분 분야의 기술개발을 마치고 2030년부터 실증에 나선다는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연구용 URL은 2029년까지 완공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연구용 URL 확보가 늦어지면 아무래도 전체사업 일정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업계는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 김영식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에는 연구용 URL의 설치 근거가 명시돼 있다. 특별법이 통과되면 이를 근거로 다시 한번 예타 면제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특별법 논의가 여전히 꽉 막혀 있는 점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대목이다. 국회 소식통에 따르면 여야는 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 시설의 저장용량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원자력계 일각에서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 연구개발을 특별법에 포함하자고 나서면서 논의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까진 여야가 12월 임시회 기간에 공청회를 개최하는 데 합의하는 정도의 진척만 거뒀다. 일각에선 여야가 고준위 특별법과 에너지 관련 쟁점법안을 서로 통과시켜주는 방향으로 합의점을 모색할 것이란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쯤 있을 예타 신청에 대비해 부지선정 등 사업계획을 가다듬는 작업은 진행하되 특별법이 통과돼야만 주민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도 “특별법 없이는 사실상 아무것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국회에서 진전된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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