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제안입찰 자체도 문제점 안고 있어
“분리발주가 통합발주보다 우수” 입증

지자체의 기술제안 입찰 공사를 분리발주하면 안된다며 종합건설업계가 분리발주 제도의 취지를 왜곡하면서 분리발주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기공사업계는 국민 혈세 절약, 공정한 기회 제공, 시공품질 확보 및 공사현장 안전 확보 등 여러가지 면에서 모두 분리발주가 통합발주보다 우수하다는 게 입증이 됐음에도 종합건설업계의 떼쓰기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최근 순천시가 금액 1380억원 규모 순천시 신청사 건립공사를 분리발주하기로 하면서 종합건설업계가 부당한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지차체가 기술제안 입찰 공사에서 전기 통신 소방공사를 여타 공종과 분리해서 발주하는 행태에도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행정안전부가 ‘지방자치단체 분리발주시 유의사항 통보’라는 제목의 공문을 전국 지자체와 교육청에 배부하면서 건설업계 전반에 논란이 됐다. 공문에서는 기술제안입찰 방식의 공사에서 분리발주 또는 통합발주 여부를 결정할 때는 사업계획부터 발주까지 전 과정에서 검토해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발주처에 주문하고 있다.

종합건설업계는 이를 두고 “기술제안입찰에서 분리발주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있으니 이를 고려하라고 정부 부처가 지시한 것”이라고 해석하며 기술제안입찰 공사는 전기·통신·소방공사를 분리발주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공문의 문구를 살펴보면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분리발주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하여 발주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여있다. 기술제안입찰에서 분리발주 여부가 문제되지 않도록 사업을 기획할 때 면밀히 검토하라는 것이지 분리발주를 피하라는 뜻이 아니다.

실제 행안부측도 “발주 담당자가 자치단체장 등의 의사를 확실히 확인하지 않고 발주를 해 추후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 방지하고자 원칙을 알린 것”이라고 답했다.

◆ 기술제안입찰, 분리발주 예외 아냐

법적으로 전기 통신 소방공사는 다른 건설 공종과 분리해서 발주해야 한다. 다만 일부 공사는 조건이 충족된다는 전제하에 분리발주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종건업계의 논리는 기술제안 입찰도 이 예외사항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분리발주를 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기술제안 입찰제도는 계약 상대자가 시공뿐 아니라 설계 등 시공 전 단계에도 참여하도록 하는 입찰 방식이다. 기본설계 기술제안 입찰과 실시설계 기술제안 입찰 두가지 방식을 포괄한다.

발주처는 공사 전반의 책임을 낙찰사에 일임하면 되기 때문에 담당할 업무가 적어 발주 담당자가 선호하곤 한다. 상징성이 있거나 기념성, 예술성이 요구되는 시설물 공사에 이 입찰 방법을 쓰곤 한다.

문제는 이 기술제안 입찰제도가 발주처의 분리발주 회피 수단으로 변질되곤 했다는 부분이다. 전기공사업법 시행령에는 일부 조건이 충족되면 예외적으로 공사를 분리하지 않고 발주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종합건설업계는 이 예외 조건에 기술제안 입찰제도가 포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공사업계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약하다고 보고 있다. 종건업계는 분리발주 예외 사항 중 ‘공사의 성질상 분리발주 할 수 없는 경우’에 기술제안 입찰이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약한 것이, 과거 산업통상자원부가 이 경우에 해당하는 분리발주 예외 사항 7가지를 유권해석을 통해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기술제안 입찰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분리발주 예외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질의회신한 바 있다.

전기공사업계는 기술제안 입찰 공사의 분리발주 시비는 결국 발주처의 행정력 한계와 행정편의가 합쳐진 산물이라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일단 지자체 담당 공무원이 300억원 이상 대규모 공사를 기획할 경험이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300억, 1000억원 이상 규모 공사를 담당하게 되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기술제안 입찰로 발주를 하면 한 회사가 수주를 하게 되니 책임소재를 묻기도 편하거니와 부담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기술제안 입찰은 통상적으로 분리발주보다 낙찰률이 월등히 높다. 즉 더 많은 공사비가 소요되는데, 이는 모두 국민 세금이다.

한국전기공사협회가 2020년 1월1일부터 2022년 6월30일까지 300억원 이상의 공공공사 237건을 분석한 결과 기술제안입찰은 65건, 종합심사낙찰제, 종합평가낙찰제의 입찰은 172건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평균낙찰율을 살펴보면 종합심사·평가 낙찰제은 78.641%인 반면, 턴키, 기술제안 입찰 등의 기술제안 입찰제는 평균 낙찰률이 무려 99.886%에 달했다. 사실상 예정가격와 낙찰가격이 거의 동일한 셈이다.

전기공사협회 관계자는 “입찰 방법 차이가 가져오는 공사비 차이가 상당하다”며 세금으로 모은 예산의 사용을 신중해야 함을 돌려 표현했다.

이러한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최인호 의원(더불어민주당, 부산 사하구갑)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기술제안 입찰 발주 방식을 비판하며 “LH가 기술제안입찰 도입 취지와 달리 공사 규모와 성격이 유사한 아파트 건설공사에도 기술제안입찰 방식을 남발하고 있다”며 “LH가 지난 2년간 기술제안입찰 공사 11건을 종심제 방식으로 발주했다면 15%에 해당하는 2982억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사에 참여하는 시공사의 평균 업체수 차이도 상당하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종합심사·평가 낙찰제로 발주된 172건 공사의 평균 경쟁률은 41.2 : 1 이었다. 한 공사에 평균 41.2개사가 응찰한 셈이다. 그런데 기술제안 입찰 공사 65건의 평균 경쟁률은 고작 2.2 : 1 이었다. 한 공사에 2개 정도의 회사가 입찰에 참여하는 셈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직접 비교의 한계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만큼 참여할 수 있는 회사의 조건이 차이가 크다는 것”이라며 “공공공사의 공공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유효한 입찰자가 없어 입찰자가 선정되지 못하는 유찰의 발생률 차이도 상당하다. 종합심사·평가 낙찰제로 발주된 172건의 공사중 유찰된 공사 건수는 0건으로, 단 한건의 유찰 사례도 없었다. 그러나 기술제안입찰 공사 65건 중 유찰 발생 건수는 무려 36건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 55.4%의 공사가 유찰됐다.

한 종합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공공 발주처의 기술제안입찰 공사가 꾸준히 유찰되면서 건설업계에서도 이 입찰 방법에 대한 의구심이 논의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기공사업계 관계자는 “기술제안 입찰로 통합발주가 되던 분리해 발주가 되던 결국 시공을 하는 건 전기·통신·소방 전문회사”라며 “통합발주가 되면 시공사가 받는 금액이 적어지는데 공사품질 확보와 공사현장 안전 확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지 않겠나”고 말했다. 

기술제안 입찰은 분리발주가 충분히 가능함에도 아직까지 소모성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은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모습(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없음. 사진=연합)
기술제안 입찰은 분리발주가 충분히 가능함에도 아직까지 소모성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은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모습(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없음. 사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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