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 개방에 더해 가스 자유화, 재생에너지 급증이 시장 파이 키워
산업·가정용 맞춤형 서비스, 법·제도 뒷받침으로 다양한 에너지신사업 등장

일본의 전력시장 전면 자유화 이후 다양한 분야의 사업자가 등장하며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강화됐다.(사진=윤대원 기자)
일본의 전력시장 전면 자유화 이후 다양한 분야의 사업자가 등장하며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강화됐다.(사진=윤대원 기자)

2016년 일본 전력시장 자유화가 전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발전설비나 송·배전설비를 보유하지 않은 이른바 ‘신전력 회사’들도 손쉽게 전력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이듬해인 2017년 가스 시장 자유화와 탄소중립 이행에 따른 신재생에너지 증가 요인이 더해지면서 일본 전력 시장 자유화는 그야말로 다양한 고부가가치 서비스와 에너지 신사업을 낳는 화수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기존 전력, 가스, 통신 등 단일 영역을 취급하던 판매사업자가 타 사업 영역으로 진출하면서 이종 분야간 결합 상품이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또 이로 인해 파생된 에너지 신사업 부문에서 산업용과 가정용 고객을 대상으로 한 차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전력·가스 기본 정책 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전체 판매 전력량에서 신전력 점유율은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약 21.3%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전력시장 내 신전력회사의 점유율 추이.(제공=전력·가스 기본 정책 소위원회)
일본 전력시장 내 신전력회사의 점유율 추이.(제공=전력·가스 기본 정책 소위원회)

대표적인 신전력 회사로 도쿄 가스, 전철회사인 오다큐 전기, 석유 사업자인 ENEOS 등이 전기 이외의 분야를 세트 판매 형태로 결합해 전력 사업에 진출했다.

일본 수도권 전력 공급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도쿄전력 역시 시장 개방 이후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다. 전력과 가스 자유화가 거의 동시에 진행되면서 도쿄전력은 분사화와 송배전 편의성 개혁이 급진적으로 이뤄졌다.

그중에서도 소매 부문을 담당하는 도쿄전력EP(에너지파트너)는 도쿄전력에서 별도 법인화됐고, 소매시장에 수많은 사업자가 참가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전기·가스를 묶어 판매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를 통해 도쿄전력EP는 지난해 4조3000억엔(약 41조16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전기 이외에 가스사업을 통한 계약 건수가 약 2400만건에 달했다. 판매 전력량은 2045억kWh로 일본 현지 1위, 가스는 210만t으로 일본 현지 4위다.

일본의 전력 소비자들은 전기와 가스, 통신 등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가 결합된 요금제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일본의 전력 소비자들은 전기와 가스, 통신 등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가 결합된 요금제를 선택할 수도 있다.

전력·가스 원스톱 서비스뿐만 아니라 생활 밀착형, 탄소중립 연계형 서비스 등을 제공한 것이 도쿄전력이 시장 개방 이후에도 여전히 대표 사업자로 입지를 굳건히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산업용 고객에게는 전기 요금 조정 정책에, 가정용 고객에게는 에너지 절감 정책에 기반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코바야시 후미아키 도쿄전력EP 경영전락본부 경영 관리 그룹 매니저는 “산업용 고객에 대해서는 전기 요금 수정이 이뤄지고 있고, 수력이나 태양광 발전 전기 혹은 그린 증서를 부여한 전기 등을 판매하고 있다”며 "반면 가정용 고객은 요금인상에 대한 고려보다 정부의 절전 정책과 연계해 효율적인 에너지 운영 혹은 효율이 좋은 기기 사용을 제안하거나 수력발전 전기를 공급해 환경 가치를 제공한다. 나아가 보다 세분화된 범위에서 전기·가스 플랜에 가입한 고객에게는 ‘에어컨이 망가졌다거나 수도 주변이 고장났다거나’하는 생활 밀접 문제에 대해 응급조치를 무료로 해드리는 서비스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단순히 판매뿐만 아니라 서비스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서비스가 적자 해소의 주요 인자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리야마 유우지 도쿄전력EP 경영개혁본부 업무통관실 매니저는 “지금처럼 연료비가 급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객의 전기 사용이 늘어나게 되면 결국 공급 비용이 연료 수입 비용을 넘어서게 된다. 즉 팔면 팔수록 적자가 되는 것”이라며 “서비스 제공은 이것을 정지시킨다는 의미에서 소비자가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렇게 되면 전기사업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 모델로 작용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RE100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전력 업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2022년 일본에너지백서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752개 신전력 회사가 등록됐다. 전력업계에 따르면 각 사가 다양한 상품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서비스의 비교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시장을 잘 파고든 민간 사업자가 바로 에네체인지(ENECHANGE)다. 에네체인지는 일본 전력 자유화 시장을 타깃해 그보다 1년 앞선 2015년 일본법인을 설립하고 전력 비교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 결과 처음 10명 남짓했던 직원 수가 지금은 150명 정도로 15배 이상 불어났다. 과거 전력회사에 요청을 해야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전력회사 측에서 먼저 의견을 물어오는 상황으로 역전됐다.

잇페이 아리타 에네체인지 COO겸 대표이사는 “일본보다 먼저 자유화된 마켓이 영국이다. 특히 영국은 각 구역별로 독점적 위치에 있던 전력회사부터 자유화가 된 일본 상황과 비슷했다”며 “영국의 전기 비교 사이트가 일본에도 필요한 서비스라고 생각해 참고했고, 일본법인에서 전력 데이터 비교 서비스가 최초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잇페이 아리타 에네체인지 COO 겸 대표이사가 본지 기자들에게 자사의 사업모델을 소개하고 있다.(사진=강수진 기자)
잇페이 아리타 에네체인지 COO 겸 대표이사가 본지 기자들에게 자사의 사업모델을 소개하고 있다.(사진=강수진 기자)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서비스로도 역시 ‘전력 사업자 교체 서비스’를 꼽았는데, 도쿄전력과 마찬가지로 전기와 가스 혹은 통신 등과 접목하는 다종 결합 서비스가 주 메인이다.

일본 전력 자유화 시장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신재생에너지와의 결합이다. 전력 자유화와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에너지 신시장의 규모와 다양성이 더욱 커진 것.

재생에너지 발전 시간대와 화석연료 발전 시간대의 비용에 확연한 차이가 있는 만큼, 태양광이나 풍력을 발전하는 시간대에는 전기 사용량을 늘리고, 화력발전 시간대는 전력 소비를 줄이게 해야 하는데 균형을 맞추려면 수요관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영향으로 업계에서는 EV(전기차)와 축전기(이차전지) 연계형 서비스 확장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전력업계 한 관계자는 “전력시장 자체는 혼란 상황이다. 앞으로 전원 구성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이 높아지고, 화석연료는 러-우 전쟁과 같은 영향이나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비용 지불로 더 비싸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가능하면 재생에너지 발전 시간대에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수요관리가 중요해졌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 축전지, EV 충전 보급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밖에도 규제 완화와 사업자 지원 정책들이 발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도 일본 전력시장 개방 이후 관련 에너지 신사업이 활성화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지목됐다. 특히 이 부분은 한국이 전력시장 개방 및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을 타파할 선행 학습이 될 수 있어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은 내년부터는 송배전 사업자가 구축한 스마트미터(계량기)가 제3자에게 개방되면서 데이터 접근 방식이 보다 완화된다. 기존에 ‘송배전 사업자-소매사업자-서비스사업자’ 구조에서 이제는 서비스사업자가 송배전 사업자에게 곧바로 데이터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에너지 서비스 시장 활성화의 최대 장애요인으로 지목되는 고객의 ‘개인정보 동의’에 대한 부분도 내년부터는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고객과 사업자 사이에 협회 기구가 만들어지면서 협회가 고객의 동의를 얻어 사업자와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할 전망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목차>

(1) 우리보다 앞선 전력시장 개방…어떻게 추진했나

(2) 자유화로 인한 부작용, 어떻게 통제하나

(3) 급격한 시장 변화 속 흔들리는 日 전력시장

(4) 자유화로 커지는 시장…위기 속 빛나는 에너지신산업

(5) (인터뷰) 오가사와라 준이치 일본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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