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도쿄 전력예비율 -0.6% 전망도…일본 전력수급에 ‘경고등’
도매전력가 kWh당 0.01엔 현상 이어지며 발전설비 유지 어려움 ↑
공무원들은 민원 대응 기관 전락…전력 정책 역량 발휘도 어려워져

일본은 전력시장 자유화를 통해 지나치게 높아진 전기요금을 낮출 계획이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의 과도한 보급 현상이 겹치면서 이번에는 도매가격이 폭락, 화력발전 설비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같은 문제로 올 겨울철 전력 예비율에도 빨간불이 켜지는 등 수급위기를 겪고 있다.(사진=윤대원 기자)
일본은 전력시장 자유화를 통해 지나치게 높아진 전기요금을 낮출 계획이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의 과도한 보급 현상이 겹치면서 이번에는 도매가격이 폭락, 화력발전 설비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같은 문제로 올 겨울철 전력 예비율에도 빨간불이 켜지는 등 수급위기를 겪고 있다.(사진=윤대원 기자)

일본 정부의 제도화된 안전장치들로 인해 전기소비자들은 민영화에 따른 다양한 부작용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 특히 도매전력시장의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사업을 철수, 폐업하는 민간에 대비해 송배전 사업자를 최종 전기공급의무자로 지정하는 등 대비책을 마련한 것이 최근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수용가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배경이 됐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시장 자유화를 두고 완벽하게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일본정부는 전면 자유화와 함께 전력의 안정적 공급 측면에서 또 다른 과제를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6월 일본 경제산업성의 전망자료에서는 올 겨울철 일본의 전력수급에 경고등을 켜고 있다. 지난 여름철 전력위기는 휴지 중인 화력발전소 120만kW 설비를 가동하면서 급한 불을 껐지만, 태양광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겨울철의 추위는 전국적인 수요관리 역량까지 모두 끌어모아야만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내년 1월을 기준으로 훗카이도(6%), 도호쿠(3.2%), 오키나와(39.1%)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예비율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3%선이 무너질 전망이다. 특히 도쿄는 -0.6%의 예비율을 기록했다.

일본 정부가 발전소 정비 일정 조정, 용량시장 입찰 등 비상대책 마련을 통해 1월 예비율을 4.1~5.6% 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수치다.

경제산업성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부터 올 겨울철 전국민적 에너지 절약과 절전을 당부하는 여러 게시물들이 자리잡은 이유다. 경제산업성은 동계가 시작되는 12월 1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종일’ 절전에 협력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지난 6월 일본 경제산업성의 지역별 동계 전력수급 전망. 1월 기준 도쿄 지역의 예비율이 -0.6%로 예상됐다.(제공=일본 경제산업성)
지난 6월 일본 경제산업성의 지역별 동계 전력수급 전망. 1월 기준 도쿄 지역의 예비율이 -0.6%로 예상됐다.(제공=일본 경제산업성)
지난 1일 발표된 지역별 동계 전력수급 현황. 여러 비상대책을 통해 동계 전력 예비율을 끌어올렸지만, 전력예비율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3%를 겨우 넘긴 상황이어서 여전히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제공=일본 경제산업성)
지난 1일 발표된 지역별 동계 전력수급 현황. 여러 비상대책을 통해 동계 전력 예비율을 끌어올렸지만, 전력예비율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3%를 겨우 넘긴 상황이어서 여전히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제공=일본 경제산업성)

일본의 수급 위기는 2016년 이전부터 진행돼 온 시장 자유화 움직임과 함께 후쿠시마 원전 사태 등 여러 이슈가 겹치면서 크게 변화한 전력 환경에 적기에 대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

2011년 원전을 중단하면서 신재생에너지가 일본 전력 산업의 한 축으로 성장한다. 여기에 시장 자유화로 여러 가지 비즈니스 모델이 생기면서 신재생에너지 산업 활성화를 더욱 가속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일본의 대표적인 에너지 정책은 2012년 등장한 발전차액지원(FIT) 제도다.

원전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대폭 늘린다는 게 일본 정부의 선택이었고, 이에 따라 태양광 사업자에게 FIT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면서 일본의 태양광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2010년 3.6GW에 불과했던 일본의 태양광 시장은 2012년 7GW 수준으로 대폭 성장하게 된다. 지난해 기준 일본의 태양광 발전 시장 규모는 74GW로 10여년 사이에 20배 가까운 성장세를 보인다.

그러나 이처럼 급격한 태양광 발전 시장의 성장은 전력망 운영 측면에서 균열을 가져온다.

2018년 큐슈전력에서 신재생에너지 공급 과잉으로 인한 출력제어가 시작됐다. 전력 수요보다 오히려 발전량이 높아 잉여전력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후 출력제어로 인해 도매시장의 스팟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재생에너지 싱크탱크인 자연에너지재단에 따르면 지난 2020년 3~4월 중 전력 스팟가격이 kWh당 0.01엔으로 떨어진 시간은 3월이 90.5시간, 4월이 106시간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5.84배, 4.93배 가량 높았다.

소매전력 평균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도매전력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신규 사업자들의 진출이 활발해졌다. 이른바 제2의 신전력 진출붐이 일어났다. 2016년 291개사에 그쳤던 신전력회사는 2018년 처음으로 400개를 넘어 지난 4월 기준 745개까지 늘었다.

문제는 이번에는 도매가격이 저렴해지면서 발전설비의 유지가 어려워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주로 석유와 노후화된 액화천연가스(LNG) 등 노후화력발전설비를 시작으로 휴·폐지가 본격화됐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후속 대책으로 일본은 전국 원전 사용량을 급격히 감소시키는 대신 화력발전소의 추가 확장에도 나섰다. 원전을 줄이더라도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일본 정부는 기대했지만, 도매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오히려 운영이 어려워진 노후 화력 설비들이 문을 닫는 상황이 됐다고 업계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일본 전력산업계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일본 전력광역적운영추진기관(OCCTO)이 지난 2017년 내놓은 자료에서는 2026년 기준 일본의 LNG 화력발전설비가 1억7686만kW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OCCTO가 내놓은 올해 전망에서 2026년 LNG 설비 예상치는 1억5353만kW로 2333만kW(13%) 감소했다.

당초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전력공급이 어려워지면서 높아진 전기요금을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 시장의 전면 개방을 추진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신재생에너지 설비의 대규모 확산으로 인해 도매전력요금이 지나치게 낮아지면서 부작용이 발생했다.

신재생에너지 설비가 제2의 신전력 진출붐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이 됐지만, 반대로 안정적인 전력시장을 형성하는 데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는 얘기다.

올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확대된 글로벌 에너지 비용 상승 이전에도 이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었다는 것.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금기시됐던 원전 신설과 가동 재개 카드를 최근 꺼내든 것 역시 이 같은 전력수급 위기가 일부 배경이 됐을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풀이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 홈페이지. 곳곳에서 겨울철 에너지 절약 및 절전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일본 경제산업성 홈페이지 캡쳐)
일본 경제산업성 홈페이지. 곳곳에서 겨울철 에너지 절약 및 절전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출처=일본 경제산업성 홈페이지 캡처)

이런 상황에도 정책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로 전력시장의 플레이어의 증가에 따라 함께 늘어난 민원으로 인해 공무원 조직의 업무가 사실상 마비됐다는 분석도 있다. 소규모 재생에너지 및 신전력회사의 증가가 오히려 행정력의 낭비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력시장의 사업자가 늘어나면서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역할이 사실상 민원대응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제대로 대응할 준비를 갖추기도 전에 재생에너지 확대와 시장 자유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대기업과 소규모 사업자, 정부 간 균형을 맞춰야 할 정책 논의의 장이 마비된 상태가 된 것이다.

오가사와라 준이치 일본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이사는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자원에너지청 등이 기존 전력 정책 등을 담당하는데, 이제 대규모로 늘어난 재생에너지 사업자와 신전력회사 등에서 몰려오는 민원을 처리하는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며 “전력자유화 이후 정부의 정책 논의 체계가 붕괴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최근과 같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위기는 일본 전력시장이 전면 자유화된 현재 상황에 큰 독이 됐다는 평가다. 정부가 여전히 소매전기요금에 상한을 정해두고 있는 현 상황에서 판매회사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료비가 급격하게 뛰어오른 현 상황에서 전력회사는 전력공급을 할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가 되고 있다. 대기업 투자를 받은 회사들은 그나마 버틸 여력이 있지만, 소규모 판매회사들은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 되고 있다.

오가사와라 연구이사는 “연료비가 최근 같이 급등하는 상황에서는 시장 자유화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자유화가 논의되고 있는데, 그 이전에 전기요금 인상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목차>

(1) 우리보다 앞선 전력시장 개방…어떻게 추진했나

(2) 자유화로 인한 부작용, 어떻게 통제하나

(3) 급격한 시장 변화 속 흔들리는 日 전력시장

(4) 자유화로 커지는 시장…위기 속 빛나는 에너지신산업

(5) (인터뷰) 오가사와라 준이치 일본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