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및 사회 문제 해결과 관련한 ‘업스트림’이라는 책의 저자는 ‘모든 시스템은 특정한 결과를 얻도록 설계돼 있다’고 이야기한다. 2022년 한국의 전력산업은 한전의 막대한 적자로 대표되는 큰 위기에 처해있으며,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닌 전력산업의 지속가능성과 탄소중립 이행에 의문이 제기되는 매우 절박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현재 전력산업의 위기는 개별 기업이나 과거 특정 정권의 실수가 아닌 오랫동안 유지된 한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 실패에 기인한다.

현재의 위기를 가져온 첫 번째 중요한 정책 실패는 연료 가격에 연동한 전력 판매가격 정상화 실패로, 이는 직접적으로는 한전의 적자와 간접적으로는 국내 산업계의 전력효율 향상을 위한 혁신 저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올 1분기 한전의 판매손익을 살펴보면, 적자의 약 70%가 일반용과 산업용 전력판매 부문에서 발생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원가에도 미치지 못한 가격으로 인해 한전이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도 올 1분기 국내 매출 1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30조 6천억을 기록했다. 과거에는 가정용과 산업용 전력가격의 차이로 인한 용도별 교차보조가 문제였지만, 최근의 상황은 전력산업이 손실을 보면서 제조업을 포함한 다른 산업을 보조하는 산업간 교차보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력가격 정상화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산업경쟁력 저하를 우려하지만, 한국은행의 ‘2020년 기업경영분석’ 보고서의 ‘제조원가명세서’에 따르면 실제 국내 전산업의 제조비용에서 전력 구매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13%에 불과하고 재료비(51%)와 노무비(11%)가 훨씬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물론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력다소비 산업은 전력가격을 정상화할 때 산업 평균보다 많은 영향을 받겠지만, 이 산업의 특수함만을 고려하는 정책이 지속될 경우 현재 전력산업의 문제는 보다 악화될 수 있다. 또한 현재 한국 산업의 전력원단위는 미국, 일본, 독일에 비해 1.5배 수준으로, 다른 국가들이 꾸준히 효율을 개선해가는 것과 달리 한국의 산업은 낮은 전력가격 하에서 전력소비 효율을 높일 유인 역시 높지 않아 산업 전체적으로 비효율성이 개선되기 어렵다.

두 번째 정책 실패는 에너지원간 상대가격 조정 실패로 인한 전력수요의 급격한 증가이다. 2차 에너지인 전력의 가격이 1차 에너지인 유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되어 국내 전력수요의 80%를 차지하는 산업부문의 전기화가 가속됐다. 열량을 기준으로 2000년 국내 총에너지 소비의 약 14%를 차지하던 전력은 2020년 약 20%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이러한 전력수요 증가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과 한국의 전력믹스를 고려할 때 국가 전체적으로 경제적 손실과 전환부문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기자동차의 확산, 디지털전환, 스마트팩토리 등의 산업 변화를 고려할 때, 에너지원간 상대가격 체계와 발전믹스의 개선이 없다면 향후에도 전기화를 통한 전력수요 증가와 이로 인한 전환부문의 온실가스 증가가 예상된다. 

마지막으로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전력시장 제도이다. 한국 전력시장은 변동비 기반의 CBP 시장으로 원래 가격입찰시장(PBP) 도입 이전에 과도기적으로 운영될 예정이었으나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중단되면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일부 환경비용이 반영되었지만, 여전히 발전원별 외부비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기저발전에 매우 우호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다양한 외부비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특정 발전원이 경제적 전원이라는 인식이 너무나 넓게 퍼지면서 변화의 가장 큰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며, 결국 외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시스템이 공고화됐다.

서두에서 언급한 책에서는 문제를 유발하는 구조를 재설계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말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한국 전력산업의 문제는 분명히 구조적, 제도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되는 공기업 자산매각, 경영효율 향상 등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의 실패를 가져온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을 유지한 채 개별 기업 차원의 개선 노력만으로는 향후 동일한 문제가 야기될 뿐이다. 현재 한전을 포함한 전력그룹사, 그리고 한국 전력산업의 위기는 명백한 정책 실패이며 탄소중립을 위한 지속가능한 제도와 시스템이 요구된다.

조영상 (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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