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어렵고 반복 작업 많아 기피
주문 와도 근로자 없어서 생산 못해
외곽은 물론 도심 업체도 마찬가지
코로나 여파로 외국인 근로자 감소
청년층 배달라이더 이탈이 결정적

#1.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A배선기구 업체 대표는 "인력이 없어 죽을 지경이다. 생산인력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며 "사람이 없어 생산을 못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도 "급한 대로 오전에 일할 파트타임 근로자 모집공고를 냈는데, 연락이 오는 사람은 없다"며 "차라리 물건을 만들어 놓고 영업을 하는 게 낫지, 근로자가 없어 주문받은 물량을 만들지 못하는 심정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 인천 도심에 위치한 B배선기구 업체 대표 역시 "도심에 있어도 사람 뽑기가 쉽지 않은 건 매한가지다. 요즘에는 인력을 뽑을 때 오피스텔이나 원룸 제공 등 숙소와 편의시설 등을 기본적으로 제공한다고 해야 그나마 면접을 보러온다. 그런 조건이 없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면서 "이 같은 인력난이 비단 배선기구업계뿐이겠느냐. 전 제조업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배선기구 업계의 인력난이 심상치 않다. 교통이 다소 불편한 시외곽에 위치한 업체뿐만 아니라 도심에 위치한 기업들까지도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중에서 배선기구 업계가 심각한 인력난을 겪는 것은 대표적인 다품종, 대량생산 업종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생산자동화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인력이 투입돼야 하는 업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2~3시간 동안 동일한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근무형태 때문에 젊은 청년들의 선호도가 낮은 것도 인력난을 겪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 와중에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발발하고, 지난 2년여간 외국인근로자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생산인력 부족을 겪는 배선기구 업체들의 아우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실제 국내 체류 외국인 근로자는 지난 2019년 27만7000명이었다가 국내에서 코로나가 발발한 2020년 24만4000명, 2021년 21만8000명 등으로 꾸준히 감소했으며, 올해 1월에는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의 수가 2000명대 수준으로 감소하는 등 최악의 상황을 맞기도 했다.

A사 대표는 "우리도 외국인 근로자 T/O가 12명인데 현재 9명만 있고, 이달에 2명이 추가로 나간다. 내국인 생산인력이 부족해지면서 외국인 근로자의 몸값은 더욱 높아졌다. 입국하면 3년 근무에 추가로 1년 연장이 가능한데, 코로나로 1년 더 국내에서 일할 수 있게 정부가 허용을 해줬다"면서 "그런데 이 1년은 기존에 일하던 업체가 아니라 본인이 일하고 싶은 곳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제도가 마련돼 외국인 근로자들이 월급을 더 많이 주는 업종으로 이동을 하고 있고, 영세 제조업체 입장에선 그들을 잡으려면 더 많은 임금을 제시해야 할 처지"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2022년 최저임금(9160원)보다 많은 시간당 9800원을 지급하던 A사는 어쩔 수 없이 생산직을 잡기 위해 현재 1만1000원 정도로 임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외국인 근로자뿐만 아니라 20~30대 젊은 내국인 인력 또한 제조업체 이탈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들 청년들은 코로나19 여파로 배달, 택배 수요가 몰리자 제조업체 대신 플랫폼 노동 시장으로 대거 이동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2021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실태'에 따르면 플랫폼을 매개로 노무를 제공하는 플랫폼 종사자는 전체 취업자의 8.5%인 약 220만명에 달했다. 그중 청년층의 비율은 55.2%에 달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C배선기구 업체 대표는 "젊은 청년들 입장에서 힘든 생산직 대신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시간을 마음껏 조절할 수 있는 배달, 물류, 배송 업무에 더 구미가 당기지 않겠느냐"면서 "특히 코로나19 이후 배달, 택배수요가 폭증해 라이더의 수익이 생산직을 웃돈 것도 인력의 대거 이동을 부추긴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A사 대표는 "산업화를 이뤘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한 가운데 힘든 제조현장을 선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애사심이나 사명감 대신 많은 월급을 주는 직장만을 선호하는 문화에 온라인의 발전으로 모든 업종의 임금과 근무조건 등이 오픈되면서 배선기구와 같은 영세 제조업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 제조업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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