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포함 K택소노미, 정작 고준위 방폐장 운영시점엔 ‘침묵’
환경단체 거센 비판 속 원전수출 10기 공약 달성도 먹구름
“행정부 차원서 이견 조율 안 되자 국회에 손 내민 셈” 분석도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이 지난 2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원자력발전이 포함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초안을 발표하고 있다. 제공=연합뉴스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이 지난 2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원자력발전이 포함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초안을 발표하고 있다. 제공=연합뉴스

정부가 원자력발전이 포함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초안을 발표한 가운데 조건으로 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구체적인 운영 시점에 대해서는 침묵해 논란이 일고 있다. '맹탕'지침이라는 비판과 함께 부처 간 협의가 평행선을 달린 끝에 결국 국회로 공을 떠넘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1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오는 2045년까지 신규건설 또는 계속운전 허가를 받은 원전을 온실가스 감축 등 6대 환경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경제활동으로 분류했다. 대신 환경부는 2031년부터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적용하고, 중·저준위 방폐장과 방폐물 관리기금 등을 보유할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고준위 방폐물의 처분을 위한 세부계획과 계획 실행을 담보할 법률 제정도 요구됐다. 문제는 고준위 처분장의 확보 연도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정부가 확정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존재해 이번 초안에는 확보 시점을 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경부가 내세운 기본계획은 고준위 방폐장의 부지선정과 건설 및 운영 시점이 지나치게 유동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본계획은 부지선정에 착수한 후 37년 이내에 방폐장 확보를 골자로 한다. 이는 고준위 방폐물 관련 시설의 확보 시한을 2050년으로 못 박은 유럽연합(EU)의 녹색분류체계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이번 초안을 놓고 맹탕 지침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고준위 방폐물 처분에 대한 명확한 계획 없이 건설과 운영에만 관심을 둠으로써 미래세대에 비용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깎아내렸다. 국제 환경 단체 그린피스도 입장문에서 "신규 원전 건설,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친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기후 위기 대응보다는 원자력 산업계의 먹거리 확보가 그 속내"라며 수위를 높였다.

이번 초안은 정부 핵심 공약인 원전 수출 10기 달성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환경부는 "고준위 방폐장은 원전수출국이 아닌 EU회원국이 충족해야 할 조건"이라며 "원전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원전 시장에 프로젝트 파이낸싱 기법을 적용한 사례가 점차 나타나 향후 원전수출국도 자금조달 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본지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도 유럽 금융환경 변화에 발맞춰 EU와 동일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 연기금 APG는 지난 20일 국내 언론을 통해 "연기금은 채권 투자를 할 때 반드시 그린 투자를 해야 하는데, 한국 원전은 해당되지 않는다"며 "EU에 못 미치는 기준으로는 친환경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즉각 입장을 밝혔다.

이번 초안에 대해서는 녹색분류체계 작성을 맡은 환경부와 제2차 고준위 방폐물 기본계획 의결을 주도한 산업통상자원부가 고준위 방폐장 운영시점을 놓고 평행선을 달린 결과물이라는 시각도 있다. 당초 환경부는 EU 기준대로 고준위 방폐장 운영시점을 최대한 앞당기려 했지만, 부지선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산업부의 논리가 강하게 작용됐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행정부 차원에서 입장정리가 안 되니 결국 국회에 손길을 내민 것 아니겠냐"며 "때마침 이번 정기국회에서 고준위 방폐물 관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논의가 예정된 만큼 종국에는 국회가 나서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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