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는 자원집약적 산업…생산원가 63%가 원재료비
광물 해외투자액 2014년 19억→2020년 2.7억 달러 급감
핵심소재 전구체·흑연 中 수입의존…美·유럽, 中 소재 견제
"광물 확보부터 자원순환까지 전 생태계 구축 로드맵 필요"

배터리 양극재 제품. 한국 배터리는 주요 부품에 대해서는 내재화를 했으나, 부품에 사용되는 핵심광물은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습니다. 사진=LG화학
배터리 양극재 제품. 한국 배터리는 주요 부품에 대해서는 내재화를 했으나 부품에 사용되는 핵심광물은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제공=LG화학

우리나라는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를 미래 먹거리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과정에서 간과한 것이 있다. 배터리는 자원집약적 산업이라는 점이다. 배터리 원가의 60%가량은 원재료비이다. 자원확보 없이는 배터리산업에서 경쟁력을 가져가기가 매우 힘든 구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자원확보를 철저히 외면했다. 또한 환경부담을 이유로 가공인프라까지 포기하고 대부분을 중국 수입에 의존했다. 그러면서 한국 배터리가 세계시장에서 중국을 넘고 정상에 우뚝 서기를 바랐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한국 배터리의 허황된 꿈을 깨버리고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22일 한국수출입은행 및 IBK투자증권 자료에 따르면 배터리셀의 원가 구조에서 원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3%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또한 원재료비 중 금속광물이 많이 들어가는 양극재와 음극재의 비중은 각각 52%, 14%로 총 66%를 차지하고 있다.

BNEF에 따르면 세계 리튬이온배터리 수요는 2020년 258GWh에서 2035년 4.8TWh로 연평균 21.5%의 높은 성장세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배터리 소재시장도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282억달러에서 2025년 704억달러, 2030년 1232억달러로 연평균 17.8%의 높은 성장이 예상된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는 대표적인 자원집약적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 배터리는 이 부분을 철저히 간과했다. 

해외자원개발협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광물분야 해외투자액은 2014년 19억2800만달러에서 2020년 2억7200만달러로 급감했다. 이로 인해 광물분야 해외 진행사업은 345개에서 301개로 줄었다.

그 사이 배터리 광물가격은 폭등했다. 니켈가격은 2015년 t당 1만1807달러에서 현재 2만4610만달러로 2배 이상 올랐고, 탄산리튬 가격은 kg당 48위안에서 현재 485.5위안으로 10배 올랐다.

배터리는 셀 원가의 63%가 원재료비일 정도로 자원집약적 산업이다. 자료=IBK투자증권
배터리는 셀 원가의 63%가 원재료비일 정도로 자원집약적 산업이다. 자료=IBK투자증권

 

반면 중국은 이 부분을 완벽하게 활용했다.

중국은 배터리 광물확보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닫고 광물이 가장 많이 매장돼 있는 아프리카에 집중 진출했다. 

중국의 전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DR콩고는 전세계 코발트 공급의 70%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 코발트를 배터리 재료로 쓸 수 있는 물질로 만드는 정련 생산능력은 연간 400t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중국의 코발트 정련 생산능력은 6만9600t이다.

최근 중국 기업들은 리튬 매장이 풍부한 남아프리카 짐바브웨에 총 28억3000만달러(약 3조9300억원)를 투자해 2024년까지 대규모 배터리 소재단지를 구축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리튬이 매장된 곳이다.

중국은 해외 광물확보를 토대로 자국에 강력한 가공인프라를 구축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Global EV Outlook 2022에 따르면 광물을 배터리 부품으로 활용하기 위한 가공(Mineral Processing)단계의 중국 비중은 50%를 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원도 확보하지 않고, 환경을 이유로 가공인프라도 구축하지 않았다. 오로지 중국에서 값싼 가공물질을 수입해 배터리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과 유럽시장에 내다팔 생각만 했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2021년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전구체 수입액은 전년보다 88% 증가한 25억7503만달러이며, 이 중 94%를 중국에서 수입했다. 또한 음극재 핵심소재인 인조흑연의 2021년 수입액 1억1249만달러 가운데 중국 비중은 87.3%(9822만달러)를 기록했다.

미국과 유럽은 분명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배터리업계는 서구지역에 쉽게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는 중국에서 원재료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드는 방식으로도 중국을 넘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미국 IRA법은 그 꿈을 깨고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유럽연합이 도입을 준비 중인 원자재법(RMA) 역시 한국 배터리를 더욱 현실로 내몰고 있다.

IRA법은 2025년부터 중국산 핵심광물이 들어간 배터리에 세제혜택을 제공하지 않고, 2024년부터 중국산 핵심광물로 만들어진 주요 부품(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질)이 들어간 배터리에 세제혜택을 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2023년부터 배터리 핵심광물의 최소 40% 이상을 미국 내지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의 것을 사용해야 혜택을 주고, 주요 부품의 최소 50% 이상을 미국 내지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의 것을 사용해야 혜택을 준다.

한국이 주로 생산하는 니켈계 리튬이온배터리에 들어가는 주요 광물은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이다. 미국은 이 5가지 광물을 핵심광물(Critical Mineral)로 지정하고 자국 및 역내 공급망을 통해 확보하려 하고 있다. 

배터리 소재시장은 2021년 282억달러에서 2030년 1232억달러로 연평균 17.8%의 높은 성장이 예상된다. 자료=SNE리서치, IBK투자증권,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배터리 소재시장은 2021년 282억달러에서 2030년 1232억달러로 연평균 17.8%의 높은 성장이 예상된다. 자료=SNE리서치, IBK투자증권,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그렇다면 이제 한국 배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단기적으로는 탈중국 공급망을 확보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어떤 외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체 공급망 확보 및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자체 공급망 확보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국내에 광물 가공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쪽과 국내는 환경단체의 반대 시위가 뻔하기 때문에 동남아 등 협력이 가능한 자원생산국에 구축해야 한다는 쪽이 있다.

최근 만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환경단체 반대 때문에 국내 가공인프라 구축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며 "호주, 인도네시아 등 우리와 협력이 가능하면서도 자원이 풍부한 나라에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11월 '한국 산업의 공급망 취약성 및 파급경로 분석' 보고서를 통해 ▲리쇼어링(해외 투자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 ▲반드시 필요한 품목의 내부화 ▲신남방지역 등 제3 지역으로 조달선 확보 등 공급망 내부화를 강조했다.

미국 IRA법과 유럽의 RMA법 추진은 단순히 공급망 재편 문제가 아니라 서구의 동양 배터리 견제이자 자국의 핵심산업으로 가져가겠다는 전략으로 봐야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공급망 재구축과 함께 기술개발부터 인력양성까지 배터리산업 전반에 걸친 재구축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박철완 교수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과 유럽이 배터리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배터리산업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그 차원에서 미국 IRA법과 유럽 RMA법이 나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 문제는 단순히 한개 부처가 통상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특위처럼 정부, 국회, 기업, 전문가로 구성된 배터리특위를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광물 확보부터 자원순환까지 전체 생태계 로드맵을 구축하고 통상 대응부터 기술개발, 세제지원, 규제개혁, 인력양성, 산업구조 재편, 내재화 리쇼어링 등 전 분야에 걸친 재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할당관세부터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배터리 완제품에 사용되는 16가지 소재, 부품의 수입품목에 대해 약 8%의 관세를 0%로 적용하는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명목은 국산 배터리 완제품의 경쟁력 강화이지만, 이로 인해 국내의 관련 소재, 부품산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산업부는 내년에도 배터리 16가지 품목이 포함된 할당관세 공고를 올렸다. 오는 26일까지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들을 계획이다. 미국, 유럽이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배터리산업을 자국의 핵심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상황에서 과연 할당관세 정책에 대해 국내 관련 업계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국내 산업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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