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자유무역이 저물고 보호무역과 그에 따른 공급망관리가 이슈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모든 산업의 기본이 되는 전기(피)와 철(근육)과 정보통신(신경)의 중요성이 재부각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 10대 강국이 된 것은 초창기 경제설계자들이 이 세 분야에 대한 혜안을 가지고 산업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한 결과다. 또한 그 과정에서 산업 종사자들의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뒷받침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한 노력과 희생은 대한민국의 철강과 정보통신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회사로 키웠고, 그 바탕에는 전기가 있었다.

이런 큰 기여를 한 전기가 요즘은 중대 위기를 맞고 있다. 바로 탄소중립시대의 도래에 따른 패러다임 시프트다. 그런데 이 위기는 극복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철강과 정보통신은 산업 자체가 시장이라는 운동장에 노출되어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바로 글로벌 경쟁이다. 경제트랜드와 산업동향을 늘 점검하면서 경쟁사들과의 피나는 경쟁이 상시화 되었다. 그런데 전기는, 우리나라 전기(한전)는 그런 생존적 위기를 겪을 기회가 없었다. 늘 공급이 부족했고 경쟁자의 시장진입은 봉쇄되었다. 2010년이후 석탄발전과 LNG발전의 진입이 허용되었지만 '회사 단위'로는 한전의 경쟁자가 될 수 없다. 

이러한 시장의 특성에 더하여 예산을 총괄원가주의 원칙에 따라 판매요금에 다 반영이 되다보니 원가절감을 할 유인동기가 없다. CEO는 한전 업무을 관장하던 정부 부서에서 바로 내려오거나 외부 출신이 임명이 되니  내부직원이 평소에 사장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감사원 감사와 국정 감사가 있지만 그 감사의 한계는 내부관계자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전이 스스로 경영혁신을 해서 소비자 부담을 얼마나 줄였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한전이 세계 최고 품질의 전기를 경쟁력있게 공급해 온 공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큰 기여를 한 것은 맞다. 걱정하는 것은 수출입이 안되는 시장의 특성과 생존 필수재인 상품을 보장된 가격으로 운영해 온 기업문화가 과연 패러다임 시프트 시대에도 통할 수 있을지 여부다. 그 패러다임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만 하는 시대가 아니다. 다양한 수요조절에 맞게 전기의 공급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유연성' 있게 제공해 줄 수 있느냐이다.

다행히 좋은 선생(책)이 나왔다. 이 책의 내용을 잘 따라하면 한전도 살고 소비자도 살고 산업도 살 수 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산업의 근육과 신경을 돌게하는 피 역할도 하면서 4차 산업과 융합해 새로운 산업 창출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윤자 교수가 책임저자로 출간한 '에너지전환과 전력산업 구조개편'(다돌책방) 이다. 전력산업에 관한 국내 최고의 교수 12명이 집필하고 6명이 자문을 한 명저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탄소중립시대를 맞아 에너지 전환에 따른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과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전력산업이 아니라 철저히 한전 입장에서 기획된 책이라는 점이다.

방대한 책에는 전력산업의 역사, 현안, 대책이 분석되어 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가피하게 진행된 발전회사 분할의 문제점과 도매가격(SMP) 시스템의 문제점도 깊이 있게 지적했다. 도매가격(SMP) 폐지는 당장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는 제안이다. 재생에너지의 확대에 따른 준비사항도 잘 제시해 놓았다. 특히 재생에너지의 증가와 분산형 전원의 증가에 따른 망 개방의 필요성 제안은 한전과 전력산업의 미래를 위한 의미있는 제안이다(507쪽). 입법사항이라서 한전의 능력 밖이라고? 아니다. 할 수 있다. 이 책을 참고하여 시장과 제품의 특성이 제약하는 혁신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고 앞으로도 사랑받는 공기업 한전이 되기를 바란다. 

김경식 고철(高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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