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상의회장 "배출권거래제, 기업 유인책으로 부족"
전문가 "유동성 높이고 정부 정책 초쇠화·투명화 해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3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배출권 거래제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3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배출권 거래제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온실가스 감축 정책인 '배출권거래제'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기업은 생산 및 운영시스템을 저탄소 배출구조로 혁신적인 전환을 해야 하지만 현재 배출권거래제가 유인책으로 적정하냐는 의문이다.

또 비슷한 가격으로 구매할 경우 탄소를 줄이기보다 유지하는 방향으로 기업들이 생각할 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시장의 이 같은 우려에 정부도 배출권거래제의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 14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3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탄소중립을 이행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배출권거래제 고도화를 통해 탄소감축 기업이 시장에서 유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기후대응기금 등 재정적 지원 확대와 탄소중립 기술개발 지원 등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탄소중립이 요구되는 시대에서 배출권거래제의 역할을 강조한다. 또 한편으로는 이를 위해 이월제한, 유동성 증가, 정부 정책의 투명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교토의정서에서 시작된 배출권거래제

1997년 12월 11일 일본 교토시 국립교토국제회관에서 개최된 지구 온난화 방지 교토 회의(COP3)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교토의정서'가 채택됐다.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여섯 종류의 온실가스의 배출을 감축하며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는 비관세 장벽을 적용하게 되는 내용이다.

배출권거래제는 교토의정서 제17조에 규정돼 있는 온실가스 감축 체제다. 정부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연 단위 배출권을 할당해 할당범위 내에서 배출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할당된 사업장의 실질적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가해 여분 또는 부족분의 배출권에 대해서는 사업장 간 거래를 허용하는 제도다.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도는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 제46조'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2015년 1월 1일부터 시행 중이다.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여력이 높은 사업장이 보다 많이 감축해 정부가 할당한 배출권 중 초과감축량을 시장에 판매할 수 있고, 감축 여력이 낮은 사업장은 직접적인 감축을 하는 대신 배출권을 살 수 있어 비용절감이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각 사업장이 자신의 감축 여력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또는 배출권 매입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해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을 준수할 수 있다는 기대다.

◆정부 개입 줄이고 유동성 확보해야

지난 14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3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배출권 거래제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3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배출권 거래제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된 지 8년이 지났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오형나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는 감축 목표를 낮추고 정부의 개입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감축 목표가 반영되면 배출권 수요가 늘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으면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는 가격이 유지돼야 저감투자가 발생하고 기후대응기금의 주요 소스인 판매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지웅 부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도 같은 의견이다.

배출권거래제가 1차 역할인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경제 전반의 의사결정을 돕는 탄소가격 기준을 제공해야 하는데 현재 배출권 거래 시장의 가격이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배출권거래제가 탄소가격 기준을 제공하려면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며 "낮은 유동성 등 필요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건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도 유동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특정 조건에서 자동으로 개입이 이뤄지는 등 투명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 탄소시장은 훌륭하고 개별국가 수준에서도 최대 시장 수준"이라며 "그러나 거래회전율은 EU의 100분의 1 수준으로 유동성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 유동성과 가격 안정성을 위해 정부의 자의적 개입을 철저히 제한해야 한다"며 "특정가격 개입 순간 매물이 풀리는 등의 방식으로 자동개입해야 한다"고 덧붙엿다.

2021년 분야별 온실가스 배출비중. 출처=환경부
2021년 분야별 온실가스 배출비중. 출처=환경부

 

국내외 주요 기업의 RE100 이행 비용 추정치. 출처=한전경영연구원
국내외 주요 기업의 RE100 이행 비용 추정치. 출처=한전경영연구원

전문가들은 배출권 거래 이월제한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제3차 계획기간 중 1단계 기간(2021~2022)에는 순매도량의 2배, 2단계 기간(2023~2024년)에는 순매도량 1배, 마지막 이행기간(2025년)에는 연평균 순매도량만큼만 이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이월제한 규제로 조기감축에 대한 인센티브가 낮아지는 만큼 철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지웅 부경대 교수는 "정부에서도 배출권거래제 시장의 유동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잉여배출권 이월제한 등의 노력을 했지만 시장의 왜곡을 고치기 위해 다른 시장의 왜곡을 가져왔다"며 "(이월제한을) 풀어주는 게 맞지만 대신 배출권을 그대로 넘기지 않고 할인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용건 선임연구원은 배출권의 공급정책이 부족한 가운데 이월제한은 적절하지 않은 제도라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여유 배출권은 1년 할당량의 3%지만 EU는 30%가 넘는다"며 "우리나라는 도저히 시장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여유 배출권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상쇄사업을 충분히 열어주든지 가격 상한제를 해야 하는데 시장 공급정책이 부족한 가운데 가격 폭등이 겁나서 이월제한을 했다"며 "거래 이월제한의 철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음 배출권 준비도, 적용도 여유 필요해

다음 탄소배출 거래제를 설정하고 적용하는 데 여유를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로드맵 설정이 시급한 과제라지만 준비에도, 적용에도 시간을 두자는 것이다. 또 NDC 달성을 위해 인증절차의 간소화와 비용 최소화처럼 기업들에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정책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은 "다음 배출권거래제를 시작할 때 좀 더 조율된 로드맵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며 "당장 로드맵을 내놓지 않고 최소 1년간 이해관계자 목소리 듣고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막바지에 하는 게 아니라 좀 긴 호흡으로 서로 준비하자는 것"이라며 "로드맵이 만들어져도 1년간 준비 시간을 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지웅 부경대 교수는 다른 제도와 배출권거래제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온실가스 감축정책'이라는 큰 목적 아래 제도끼리 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다른 제도가 도입될 때 타 제도가 의도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 탄소배출 거래제가 본질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변경되고 설계돼야 한다"며 "그런 부분까지는 유기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배출권 거래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유동성 제고, 참여자확대 등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안세창 환경부 기후변화정책관은 "배출권 거래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유동성을 높이고 참여자를 확대하는 방향과 거래상품을 만들고 시장 안정화 조치를 요건에 맞춰서 할 수 있게끔 기반을 만드는 것도 준비하고 있다"며 "모두 다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모여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최대한 뒤에 있고 자동적 개입되는 방향으로 할 것이며 4차 기본계획을 논의하고 있다"며 "1년 전에 준비해 미리 대응할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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