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변동성 맞춰 시장제도 개편…실제 전력망 기여에 따라 보상
전력시장 고도화 방점찍고 실시간 시장 초석…제약 반영 시장으로 진화
발전사업자 불확실성 증대는 넘어야 할 과제…더 많은 정보 공유해야

늘어가는 재생에너지에 발맞춰 전력시장도 선진화를 위한 첫 발을 뗐다. 전력거래소가 1일 도입한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은 국내 전력시장 선진화를 위한 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늘어가는 재생에너지에 발맞춰 전력시장도 선진화를 위한 첫발을 뗐다. 전력거래소가 1일 도입한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은 국내 전력시장 선진화를 위한 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20여년 간 큰 변화가 없었던 전력시장에 2022년은 대변혁의 시기로 기억될 전망이다. 그동안 대규모 발전소들을 대상으로 무난하게 운영돼왔던 전력시장 시스템이 계통운영부터 정산까지 대폭 물갈이됐기 때문이다.

전력거래소(이사장 정동희)가 최근 준비하고 있던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이 1일을 기점으로 시작됐다.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은 그동안 계통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설비 최대용량을 그대로 입찰했던 하루전시장에 자기제약, 송전제약, 운영예비력 제약 등 실제 수급여건을 반영한 것이다.

그동안 실제 계통 여건이 60밖에 되지 않아도 제약비발전정산금(COFF)을 통해 입찰한 100을 모두 보상했다면 이제는 실제 발전한 60에 대해서는 정산이 이뤄지게 된다.

이 같은 변화를 두고 그동안 대규모 발전소 위주의 전력시장에 소규모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보급 확대에 발맞춘 시스템을 안착시키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늘어가는 재생에너지 설비에 시장 선진화 '필수'=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만3085GWh로 전체의 7.5%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권은 2017년 '3020 재생에너지 이행계획'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2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수립, 공격적인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에 나섰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2011년 2.5%에 불과했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약 3배 성장, 전체 발전설비 가운데 유의미한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전력시장의 시스템은 시장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평이다.

신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약점은 변동성이다. 특히 태양광이나 풍력같이 자연에너지를 활용하는 발전설비의 경우 날씨나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정확한 발전량을 예측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맞춘 예비력을 확보하는 게 안정적인 전력망 운영을 위한 첫 번째 과제인데, 현 시장에서는 예비력에 따른 전력망 기여도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게 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계통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급전계획을 수립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정산하는 시스템 탓이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전력시장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가치는 발전기의 효율이었다.

발전기 효율만 좋으면 사실상 기저발전의 역할로 높은 급전순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구조는 발전기의 변동성이 크지 않고, 대규모 발전기 위주로 꾸려졌던 과거의 전력시장에나 어울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새 시장에서는 발전기 효율도 중요하지만 계통 여건에 따라 빠르게 발전을 시작함으로써 재생에너지 출력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설비 역할도 중요해졌다는 것.

즉 설비 특성이 다양해지고 발전 사업자의 숫자가 대폭 늘어나는 지금 시점에서는 전력망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측면에서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에는 예비력용량가치 정산단가 개념이 마련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예비력을 제공할 수 있는 발전기에 보상할 수 있는 방안이 구체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계통제약에 대한 정보가 사업자들에게 공개되고, 사업자들의 발전설비 투자에 제대로 된 시그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는 반응도 있다.

전력시장 전문가로 잘 알려진 정해성 장인의공간 대표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 특히 송변전 측면에서 참여자들이 어떤 제약이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송변전 제약이 많은 지역 정보를 알지 못하고 들어오면 입지를 잘못 정한 것"이라며 "이 같은 측면에서 계통 여건에 따라 정산을 하려면 계통에 대한 정보부터 공개해야 하는 만큼 사업자들에게 명확한 시그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력시장 고도화 초석…실시간 시장 기틀 닦는다

전력거래소는 오는 2025년을 목표로 실시간 시장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변동성이 적은 원전, 석탄 및 LNG 화력발전 위주의 시장에서는 하루 전에 급전계획을 잘 짜놓으면 시장이 안정적으로 돌아갔지만, 최근에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서 발전계획과 실제 운전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재생에너지의 변화하는 출력과 계통 제약 등을 실시간으로 조정하며 계통 운영 능력을 확충해야 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즉 실시간 시장을 통해 하루전시장에서의 입찰과 계통 계획의 오차를 최대한 줄여나가는 한편 계통운영의 안정성을 높인다는 게 전력거래소 방침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은 이 같은 시장 도입을 위한 기틀을 닦는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행 하루전시장은 계통운영의 여러 제약을 배제한 채 입찰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실시간시장으로 시스템을 진화시키기 위해선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여러 제약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 그동안 비제약시장이었던 전력시장을 제약시장으로 전환함으로써 우선 계통여건을 반영, 시장 고도화의 첫 걸음을 뗀다는 것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전력시장에 제약을 반영하는 곳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게 미국의 전력시장이다.

한국의 경우 계통한계가격(SMP)에 의해 시간대별 발전기 정산가격을 동일하게 운영하고 있지만 미국은 모선 가격제 등으로 불리는 철저한 실시간 정산으로 발전기별 계통기여에 따른 보상에 철저하게 차등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시간별로 많게는 7000개 이상의 다른 가격이 책정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미국의 정산 모델은 '이론적으로 가장 완벽한 시스템'으로 불리며 고도화된 운영기술의 대표사례로 불린다.

한국은 아직 이 같은 정교한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지만 이번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에 이어 2025년 실시간 시장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미국의 고도화된 시스템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성수 한국공학대 교수는 "우리나라 전력시장은 시장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부분이 많다. 실제 전력 시스템에서 생기는 문제를 가격에 반영해야 하는데, 그게 지금까지 안 되는 게 사실"이라며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은 가상의 계통보다 실제 계통에 근거하다보니 현실을 반영하는 출발점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해성 대표도 "이미 전 세계에서는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감당하기 위해 전력시장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며 "우리도 계통운영 기술이나 예측, 입찰, 정산 등 실시간 시장을 통한 고도화에 앞서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을 통해 첫발을 내디뎠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발전사업자들의 예측 불확실성 증가…넘어야 할 벽=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이 이처럼 시장 선진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한편 넘어야 할 벽이 적지 않다는 게 발전업계의 지적이다.

발전업계에서 지적하는 가장 큰 우려는 사업의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전력거래소가 새로운 제도 도입에 앞서 올해 시행한 시뮬레이션에서는 당초 거래소가 설명한 것보다도 큰 폭의 SMP가 조정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먼저 지난 1~2월 전력거래소가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SMP가 예년 대비 kWh당 15원 정도가 낮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3~5월 시뮬레이션에서는 예년 대비 1원 정도가 줄었다. 반대로 7~8월 여름철에는 kWh당 10원 정도 SMP가 상승했다는 결과를 얻었다는 게 발전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제는 전력거래소의 예측보다 SMP 변동이 컸다는 점이다. 시뮬레이션의 경우에도 시기별로 연료비를 적용한 기준이 달랐기 때문에 제도 도입의 영향을 분석하기 어려울뿐더러, 시뮬레이션 결과 역시 완벽히 신뢰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발전업계가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 도입을 좀 더 늦추고 시뮬레이션을 추가로 실시해달라고 요청한 원인이기도 하다.

이뿐 아니라 집단에너지 사업자들의 피해도 클 것으로 업계는 분석한다.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에서 겨울철 SMP가 낮아지는 이유는 그동안 열제약 발전으로 전력판매 가격이 반영되지 않았던 집단에너지가 시장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현재 전력시장에서는 겨울철 등에 열 공급을 위해 발전을 반드시 해야 하는 집단에너지 등 열병합발전소 가격을 반영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수요를 차감하는 형태로 가격에 반영을 한다. 집단에너지는 사실상 '0원' 입찰을 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집단에너지가 계통에 들어오는 만큼 수요가 낮아지게 되고, 그런 만큼 SMP가 떨어지는 효과를 거뒀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문제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집단에너지 사업자들이 열을 필요로 하는 겨울철에 대거 발전을 하고, 열 수요가 적은 여름철 등에는 발전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SMP가 하락할 때만 전기를 판매하고, SMP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손가락만 빨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집단에너지의 발전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실계통기반 하루전시장을 두고 업계의 예측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전력거래소가 업계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