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전력수요 ‘역대 최고’ 기록 경신 우려 목소리 더 커져
석탄발전 폐쇄 상황에서 원전 확대만으로는 한계 부딪힐 것
에너지 안보 확립할 현실적 합리적 에너지믹스 필요
수요 감축 등 에너지 효율화 방안에 더 큰 고민해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광역계통운영센터에서 여름철 전력수급 현장점검을 하는 모습.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광역계통운영센터에서 여름철 전력수급 현장점검을 했다.

여름철 전력수요 급증으로 '전력대란'과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의 우려가 해마다 거듭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시기가 빨라지는 것은 물론, LNG(액화천연가스) 수급 불한 등의 변수로 겨울철에도 전력수급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이에 다양한 전력수급 방안과 에너지 효율화를 토대로 한 중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빨리 찾아온 무더위에… 7월 전력수요 '역대 최고' 기록

경기도 수원시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예년보다 빨리 찾아오면서 지난달 전력수요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여유 전력 수준을 보여주는 공급예비율은 한때 7% 초반대까지 떨어져 약 3년 만에 최저 수준을 보이기도 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월 평균 최대전력은 8200만㎾를 기록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월평균 최대전력이 8000만㎾를 넘어선 것 또한 2018년 8월(8710만㎾), 2021년 7월(8115만㎾) 이후 세 번째다.

지난달 7일에는 오후 5시 기준 최대 전력수요가 9299만㎾까지 치솟아 기존의 최대 기록인 2018년 7월 24일 오후 5시의 9247만㎾도 넘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며 산업 분야 등을 중심으로 전기 사용량이 늘어난 데다 무더위까지 기승을 부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국 곳곳에서 폭염 특보가 발령되고 열대야가 나타나며 냉방 가동이 늘었다.

이에 전력 공급예비율이 안정적인 수준으로 꼽히는 10% 선도 3차례나 붕괴됐다. 공급예비율은 지난달 5일 9.5%, 6일 8.7%에 이어 7일에는 7.2%까지 떨어졌다. 지난달 7일의 공급예비율은 2019년 8월 13일(6.7%) 이후 약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문제는 8월 들어 일 전력수요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6월 말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 및 대책'을 발표하면서 올여름 전력 최대 수요 시기를 이달 둘째 주로 전망한 바 있다. 올여름은 평년보다 더 더워 최대전력 수요가 91.7~95.7GW에 달하면서 지난해(9110만㎾·7월 27일 기준)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됐다. 공급예비력 역시 5년간 가장 낮고 공급예비율도 5.4~10.0%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8월 둘째 주에는 더위가 극심해지는 데다 공장 등 대규모 사업장들이 여름휴가를 마친 후 복귀를 앞두고 있어 산업부의 예상치보다 전력수요가 더 높을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8월 둘째 주 전력 피크 기간 전력수요 최고치를 경신해 비상경보가 발령될 우려도 나왔다.

◆전력수급 고비 예고됐지만…폭우로 비상상황은 면해

많은 비가 내린 지난 8일 우산을 쓴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을 지나고 있는 모습.
많은 비가 내린 지난 8일 우산을 쓴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을 지나고 있다.

8월 둘째 주에 전력수급 '비상'이 예상됐지만 이 기간 전국적으로 강한 비가 이어지면서 전력수급의 비상상황은 면한 것으로 보인다.

폭우로 인한 기온하락으로 8일부터 11일까지 전력예비율은 10%대 이상이 유지됐다. 이에 당초 우려됐던 블랙아웃 가능성도 낮아졌다.

전력당국의 한 관계자는 "당초 예상과 달리 8월 둘째 주에 집중호우가 이어지면서 기온이 하락해 전력 수요도 감소했다"면서 "이에 전력위기 상황까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록적인 폭우로 전력수급난은 피했지만 아직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역대 최악의 정전사례로 꼽히는 2011년 9.15 순환정전은 8월이 아닌 9월 추석을 앞두고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예년과 같이 8월 중순에 전력피크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이 시기의 수급상황에만 집중했다. 정부가 예상한 2011년 여름 최대전력 수요는 7477만㎾, 예비전력량은 420만㎾로 예비율은 5.4%였다.

정부가 예상한 전력피크 시점이 지나자 발전소들은 더 높은 전력피크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8월 말부터 발전소 계획정비에 돌입했다. 그러나 9월 15일 오후 2시 이날 최대 전력수요(6400만㎾)를 320만㎾ 이상 초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예비 전력이 343만㎾까지 떨어졌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전력당국은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순환단전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앞으로 일상화한 폭염과 탄소 중립을 등의 상황으로 전력 수요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전력난에 대한 우려는 거의 매년 제기되고 있다. 해마다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다. 우리나라 발전량은 1961년 이후 외환 위기가 발생했던 1998년과 2019, 2020년 세 차례를 뻬고는 매년 증가했다. 앞으로는 기후변화와 4차산업 가속화에 따라 전력수요는 더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윤석열 정부 에너지 정책 과연 믿을만한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원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장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원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장면.

앞선 문재인 정권 당시 탈원전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전력수급의 위기를 더욱 확대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윤석열 정부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다시 원전을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윤 정부는 국정과제에서부터 탈원전 정책 폐기 등을 명시하고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수단으로 원전을 적극 활용한다고 밝혀왔다.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 아래 신규 원전 건설 재개 등을 추진해 2030년에는 총 설비 용량 28.9GW의 원전 28기 운영을 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석탄발전을 중단하거나 최소화하는 등 축소를 추진 중인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만한 기저발전이 추가로 구축돼야 하지만 지금 당장 원전 비중을 확대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는 모습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신한울 3·4호기는 현재 착공이 재개 돼도 2030년께나 완공이 될 전망이다. 2025년까지는 신한울 1·2호기, 신고리 5·6호기의 원전 4기 외엔 추가적인 공급능력 확보가 어렵다는 얘기다. 여기에 설계 수명 연장을 통한 노후 원전 계속 운전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가가 필요한 사안이라 즉각적인 가동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더욱이 LNG(액화천연가스)복합 발전도 현실적으로 더 늘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시간과 계절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무한정 늘리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신규 석탄발전 가동 등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에너지믹스 설정해야

인천 영흥화력발전소 전경
인천 영흥화력발전소 전경

전문가들은 정부가 에너지 안보를 확립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에너지믹스를 고민하는 한편 수요감축 등 에너지 효율화 방안에 대해 더 큰 고민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의 전력수급 상황을 현실적으로 고려해 원전, 석탄, LNG, 신재생 등 각 발전원의 장단점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에너지믹스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석탄발전이 기저발전으로서 톡톡한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라면서 "석탄발전이 하루아침에 나쁜 전원으로 취급받고 사라지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LNG 발전을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최근 LNG 가격 급등과 수급 어려움 등의 큰 변수들이 있다"면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는 조기폐쇄를 하더라도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신규 석탄발전들은 필요에 따라 가동시켜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현실적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수요 측면의 대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공급 측면만 치중할 경우 점차 그 한계를 드러낼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수요 부분에서 해법을 찾아 보자는 것이다.

업계의 또 다른 전문가는 "사실 1년에 중 전력수급이 크게 떨어지는 날은 며칠 되지 않기 때문에 발전소만 늘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면서 "전력 수요가 많은 피크타임에 산업계의 전력 수요를 줄일 수 있는 DR(수요 반응) 시장을 적극 활성화 한다면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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