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처분장·사고저항성 핵연료(ATF) 기준시점 적용 놓고 막판 고심
연구용 URL 적극 활용, 처분장 운영 시점 2060년→2050년 단축 가능

UAE 바라카원전 1호기 전경.
UAE 바라카원전 1호기 전경.

이르면 다음 달 공개될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전이 어떤 조건으로 포함될지 관심이 쏠린다. 유럽연합(EU)이 요구하는 조건보다 뒤떨어지면 원전 수출 전선에 불똥이 튄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의 운영 시점을 10년 앞당겨 EU와 똑같은 기준을 갖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EU가 정한 안전기준을 국내 실정에 맞게 적용한다'는 원칙에 따라 관계 부처 협의를 진행 중이다.

정부가 고심하는 대목은 처분장의 운영과 사고저항성 핵연료(ATF)의 적용 시점이다. 2050년까지 처분장 운영을 위한 정부 계획을 갖추고 2025년부터 ATF를 적용해야 원전을 친환경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EU택소노미 최종안이 지난달 확정됐기 때문이다.

ATF는 국내 상용화 일정이 늦어지더라도 해외 제작사로부터 수입하면 되므로 우려만큼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EU택소노미와 마찬가지로 2025년부터 ATF 적용을 K택소노미에 명시하고, 추후 국산 ATF를 일선 원전에 공급하면 된다는 논리다.

한 전문가는 "국산 ATF는 2030년대 초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이라며 "그전까지는 프랑스 프라마톰이나 미국 웨스팅하우스 등 ATF 개발 선두주자의 핵연료를 공급받으면 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이에 시선은 처분장의 운영 시점으로 향하고 있다. 2050년을 요구한 EU와 가장 큰 시차를 보이는 게 바로 처분장 운영 시점이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제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에 따르면 부지선정에 착수한 후 37년 이내에 처분장을 확보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내년 부지선정에 착수하면 2060년에 이르러야 처분장을 운영할 수 있다.

이와 관련 한 전문가는 "국내 실정에 맞게 EU 기준을 적용한다는 방침도 기본계획과의 정합성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다만 EU보다 후퇴한 조건을 내걸면 국내 환경단체의 반발을 비롯해 원전 수출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유럽 원전 사업의 특성상 EU택소노미보다 뒤떨어지는 조건의 K택소노미를 채택하면 현지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일례로 폴란드는 전체 사업비의 최대 49%에 해당하는 재원(약 19조원)을 사업자가 조달해올 것을 요구한다. 유럽 투자자에 손길을 내밀 수밖에 없는 한국으로서는 처분장 운영 시점을 앞당겨 EU택소노미와 똑같은 기준을 갖춘다면 현지 자금에 대한 접근성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

실제 본지가 기본계획을 분석한 결과 처분장 운영 시점을 앞당길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결은 부지확보와 처분장 운영,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등 고준위 방폐물 관리 주요사업을 병행 추진하는 데에 있다.

기본계획은 부지선정 착수 후 37년 이내에 처분장을 확보하는 것으로 작성돼 있다. 하지만 복수의 전문가는 이 일정에는 연구용 URL 건설과 운영이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연구용 URL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일정을 수립하다 보니 전체적인 처분장 확보 일정이 늦춰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연구용 URL은 처분장 건설 및 운영허가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단계"라며 "내년부터 처분장과 연구용 URL 부지선정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면 연구용 URL에서 처분장 인허가에 필요한 데이터를 원활히 생산해 처분장 최종 인허가 시점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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